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 우리에겐 애쓰지 않고도 사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김유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이 반짝이던 순간을 잊고 살았다니,

잃어버린 꿈을 찾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디던 작가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문득 ‘그림’이라

는 취미를 꺼내 들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과거’의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작가가 그랬듯이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싫어했는지 생각하다보면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나올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실력이 늘어간 것과 동시에 그의 일상이 더 다채로워졌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알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시간을 다스릴 줄 알게 됐다.

나도 친구들과 ‘취미미술 학원’을 다녔었다. 그래서 작가가 그 공간에서 느꼈을 위로와 몰입의 시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냥 우연히, 아무 계기 없이 ‘취미’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다니게 된 미술학원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의 시간이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기분이 좋거나 혹은 좋지 않을 때나 미술을 하는 시간만큼은 이젤에 놓인 그림에 집중했다.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친구들과 서로 그림에 대한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던 시간이다. 선 긋기부터 시작해서 인물화, 풍경화 등을 거쳐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 기분이다.

이제는 학원에서 나와 혼자 그리는 시간을 갖고 있다. 물론 작가처럼 ‘꾸준함’을 갖고 있지는 않다. 영화를 보고 그리고 싶은 장면이 생기거나, 그냥 그리고 싶을 때 부담 없이 그린다. 책을 읽고 나니까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그리고,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던 때가 그립기도 하고.

"취미나 놀이를 하는 어른들은 늙지 않는다.

대화하고 사고하는 방식이 확실히 다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가장 자신 있던 시절의 모습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

사실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완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는 말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며, 5년 간 미술을 병행했다는 것에서부터 어떤 ‘꾸준함’이 느껴진다. 작가는 지속하는 것의 힘듦을 토로하면서도, 그 지속이 다시 힘이 된다고 말한다. 역시나 새로운 것을, 더군다나 꾸준히 한다는 것은 멋진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멋진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꾸준함은 그 자체로 멋진 일이다.

"나는 이제 생의 한가운데에 들어왔다.

대단한 일이 있을 것 같았던 미래는, 별다를 것 없는 오늘이었다.

덕분에 삶의 끝자락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나이 먹음이 무색하지 않게, 삶이 주는 크고 작은 파도 안에서

헤엄치는 법은 배워둔 듯하다. 니나처럼, 때로는 니나의 언니처럼

방법은 다르지만 그림 그리듯 삶을 가꿀 줄은 알게 되었다. "

삶이 주는 크고 작은 파도 안에서 헤엄치는 법, 작가가 살면서 터득한 지혜다. 별다를 것 없는 내일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도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를 두 번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직장에서의 8시간은 퇴근 후 놀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월급이라는 대가를 받으니 불평은 삼가기로 했다.

나의 일과는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야 끝이 난다.

밤 10시가 되어 화실에서 나오면 3번째 하루가 시작되었다. "

직장 생활 후, 새롭게 시작 되는 삶에서는 쫓기듯 치열하지 않았다. 불 켜진 화실을 보면 순수하게 발길이 닿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떤 자발적인 열정이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하고 싶다’라는 자발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 지난 5년간의 시간은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나를 구하기 위한 탈출기였다.

언제나 즐거워야 하는 20대가 지나고 자신만만한 30대가 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에 당황하고 방황했다. 뭘 좀 아는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시선과 타고난 게으름 사이에서 무던히 헤맸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런 내가 그림을 통해서 나다움을 발견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은 것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는 작가의 말이 벌써부터 공감된다. 그렇지 않다는 걸 미리 예습한다. 작가는 반복되는 일상에 당황하고 방황했지만, 이내 ‘그림’을 통해 나다움을 찾아갔다.

책을 읽고 더 확실해졌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그게 무엇이 됐든,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만나서 사람들이 조금 더 일상에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잘 놀 줄 아는 어른이 늙지 않는다는 말이 조금은 믿어진다. 모두가 밥 벌어 먹고 사는 일상 말고도, 나 자신과 놀아주는 일상을 만들기를. 나도 오늘 집에 돌아가면, 그림을 좀 그려야겠다.

"우리에겐 애쓰지 않고도 사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