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올라 마음의 붓을 들었네 - 심홍 선생님 따라 산수화 여행
이소영 지음 / 낮은산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토요일 갑자기 내리는 비에 체육을 못하고 대신 도서관에 갔다. 1학기 때와 다르게 조용히 책 읽는 아이들을 보며 혼자 즐거워하는데 사서선생님이

“작년에 선생님이 가르쳤던 1학년 아이들이 요즘도 도서관에 제일 많이 옵니다.” 하며 칭찬을 했다.

“제가 가르친 거 하나도 없는데요.” 했더니 “도서관에 데려와서 풀어놓는 게 공부랍니다.” 했다. 어릴 때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해 주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9월 한 달 미술시간은 먹을 갈고 붓을 잡고 그려보고 줄을 긋는 공부를 한다. 물론 판본체도 익힌다.

아이들이 가지고 온 붓은 거의가 중국산 짧은 그림붓이었다. 단소선생님께서 붓글씨와 산수화에 조예가 있는 분이라 미술 시간 전에 이런 저런 걸 여쭤보았더니 그림붓과 글씨 쓰는 붓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셨다. 또 수묵화를 그릴 때와 채색화를 그릴 때 쓰는 붓도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붓이 클수록 오래 긋고 많이 칠할 수 있는 것은 큰 붓일수록 모세관의 수가 많고 모세관의 길이가 길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붓은 물을 공중에 잡아두는 장치인 셈이다. 그래서 수묵화용 붓은 입자가 가늘고 비중이 작은 먹을 쓰므로 붓의 길이와 굵기가 크면 그만큼 함수력이 증가하지만 채색화용 안료는 입자도 크고 비중도 크므로 힘 있는 가는 털로 맨 짧은 붓이 좋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듣긴 하지만 결국 내가 한 번 체험해보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도무지 설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 보는 먹 갈기나 붓을 사용하는 법을 익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진지했다. 조상들이 어떤 마음으로 먹을 갈았는지 상상을 해 보았고, 영산회상도 들어보았다. 뭔가 잘 모르겠지만 느낌이 다르다는 것쯤은 아이들도 느꼈다. 아이들은 붓을 가지고 여러 가지 모양을 그렸고 어떤 화가보다 자유롭게 붓을 사용했다. 모두가 다 잘 그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때를 맞추어 옛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고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는가를 자상하게 일러주는 그림책 한 권을 찾게 되었다.

『산에 올라 마음의 붓을 들었네/이소영/낮은산』

 



 

 지난 9월 5일에 처음 찍은 책이다. 지은이는 심홍 이소영선생이고 그는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아이들을 천천히 산수화 속으로 이끌어간다.

진정한 ‘참살이’는 자연과 더불어,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지혜롭게 사는 삶이에요. 바로 옛사람들의 삶이지요. 오래된 글과 그림을 보면 옛사람들이 자연과 인간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옛그림을 보며 그 마음을 여러분도 느껴 보면 좋겠어요. 그러니 제가 책으로 보여 드릴 그림이 어떤 시대에 누가 그린 것인지부터 외우려고 하지 마세요. 그 대신 마음으로 읽어 보세요. 그림 속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본다면 어렵지 않고 재미나기까지 할 거예요.(머리말에서)

이렇게 안내를 하고는 모두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아주 자세하게 산수화를 설명하고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옛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기에서 고분 벽화 <수렵도>와 백제시대 <산경무늬 전돌>, <경흥전>을 보여 주며 우리 옛그림의 시점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어 사진으로 고원법, 평원법, 심원법을 설명하고 지리산 화엄사 모과나무 기둥과 전남 담양의 소쇄원을 통해 옛사람들이 산수화를 그린 이유를 아주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자연과 어울려 사는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과 사람이 한 풍경 속에 녹아든 산수화를 보며 행복해 했고, 산에 가지 못할 때는 대비해서 산수화를 그렫고 즐겼답니다. 이런 것을 와유라고 '누워서 즐긴다’는 뜻이지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붙여놓고 감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어요(본문 22면)

진경산수화에 대한 설명과 사계절을 물들이는 우리 색은 흰 접시에 짜낸 동양화 물감과 이름들을 설명하고 있다. 색을 설명한 다음 옛그림으로 보는 우리나라 사계절을 봄에는 매화, 여름은 버드나무, 가을은 소나무, 겨울은 대나무를 다양한 산수화로 보여준다.

<몽유도원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안평대군이 꿈에 보았다는 빈 배를 찾아보라고 한다. 또 도원 끝에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초가집들과 몇 가지 시점들이 들어있는가도 알아보라고 한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

정선의 <금성평사>는 금성의 모래펄로 200여년 전 서울 난지도 일대를 그린 그림으로 소개하고 있다. 참 고요하고 아름답다. 울창한 버드나무 사이로 돛단배가 드나드는 모습과  탁 트인 저 멀리 유장하게 흐르는 모습을 그렸다. 지금의 서울 난지도 모습과 견주어보면 아이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화가의 눈에 비친 대나무를 가까이서 본 대나무 잎, 좀 떨어져서 본 대나무, 멀리서 본 대나무 사진으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대나무를 그리는 법보다 앞서 대나무를 보는 눈을 키워주는 좋은 공부가 되겠다. 이 책이 좋은 점은 그저 보여주는 것만 아니라 내가 직접 그려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산수화는 솜씨있게 잘 그리는 것보다 마음을 담아 그리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려면 자연을 보고 느끼는 체험을 먼저 해야겠지요. 가까운 산이 있다면 직접 가서 관찰해 보세요. 그럴 수 없는 친구라면 식물을 기르며 지켜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랍니다. 화분에 물을 주면서 “무럭무럭 자라라.” 하고 말하면 더 잘 자란다고 해요. 참 신기하죠?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운 식물을 잘 관찰한다면 좋은 그림이 나올 거예요(본문 76면)

우리 곁에 있는 소나무를 가지와 줄기 그리기를 직접 그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굳이 붓이 아니라 간단한 붓 펜으로 그려보아도 좋겠다. 또 솔잎 그리기를 하고 나서 짙은 곳고 옅은 곳을 따로 칠한 뒤 여러 그루 그리기와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며 자세히 살펴서 그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워크 북으로 되어 있다. 김홍도의 <오류귀장도>와 민화 <까치호랑이>도 그려 볼 수 있다.

다섯째 부분에서는 민화의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만물상도>와 <만물초도>를 본 아이라면 나도 한 번 그려볼 수 있겠다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산수화 여행을 마치는 아이들에게 지은이는 산수화에는 자연을 아끼고 사랑한 옛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 옛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감동하는 까닭이 그것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묻고 있다. 여러분도 힘을 보태달라는 부탁도 한다.

이 그림책을 보니 반듯한 글씨쓰기에 매달려 아이들을 윽박지르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구나 싶다. 그저 가까운 학교 뜰로 나가 식물이나 돌을 자세히 보고 붓으로 그려보고 선과 색이 어우러지는 순간을 느껴보게 해야겠다. 그리고 그림 옆에 글씨를 쓴다면 아이들은 그림과 글씨가 서로 노는 모습을 느낄 수 있겠지. 

2008. 09. 23. 흙의 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