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
월터 브루그만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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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월터브루그만이 구약성경의 출애굽 내러티브, 시내산(또는 신명기) 내러티브, 그리고 이사야, 좀더 엄밀하게 말해서 제2-3이사야의 내러티브를 통해서 과거로부터 지속적으로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온 제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저항할 것을 요청하는 책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고, 그로인한 경제적 위기가 예측되었으며, 조지 플로이드 과잉진압 사태가 촉발된 상황에서 저자는 기독교가 말하는 소망을 발견하고자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길은 일명 광야의 내러티브라고 불리는 것이다.(그리고 백신 수급이 어려운 남아공에서 새롭게 생겨난 변이 바이러스의 새로운 등장은 저자가 말하는 제국 이데올로기의 취약성과 한계를 더욱더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다.) 바로의 시스템, 사실상 자본주의의 고대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시스템이 주는 확실성에서부터 벗어나서 광야에서 체계적이진 않으나 풍성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는 것, 성경은 바로 그 길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바로의 시스템을 벗어나는 길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광야가 주는 불안, “과연 이 길이 맞는 것일까?” - 모두를 위한 삶 떠남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저자는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바로의 시스템과 하나님의 역사을 다음과 같은 도식에서 정리한다.

 

바로의 시스템

결핍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 - 독점 시스템의 개발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 하위계층의 고통

 

하나님의 역사

풍성한 제공의 능력 독점 시스템의 거부(일용할 양식으로서의 만나) - 경쟁과 억압, 착취의 제거 - 이웃사랑

 

이후 이스라엘의 행보가 보여주듯 하나님의 역사안에서 그들은 바로의 시스템에서 체득한 두려움의 습관들을 보인다. 저자는 이로부터 단호히 떠날 것을 요구한다.

 

 

2. 시내산 언약에서 현재의 언약으로 나만을 위한 삶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가?

 

저자에 따르면 신명기는 출애굽과 시내산 내러티브를 성문화하고 기억하는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에게 있어 신명기의 대부분은 출애굽과 시내산의 기억 혹은 계시사건을 내러티브(이야기)가 아니라 계명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전달하는 책이다. 신명기는 계명이라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는 내러티브의 전통을 이어간다.

 

문제는 오경이라고 불리는 책들 가운데 있는 정결전통이다. 기존 내러티브 속에 삽입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결전통의 문제는 연합보다는 사람의 자질을 구분한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저자가 말하는 시내산 내러티브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그 구분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힘, 지혜, 부에 의해 결정된다. 저자는 예레미야와 신약을 통해서 성경의 중심내러티브는 힘, , 지혜에 반대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부연하면, 기독교의 진리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세상의 약함과 고통이 만나는 지점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세상의 약함과 고통이 하나님의 거룩성과 만나는 순간, 하나님의 거룩성은 세상과 인간을 변혁시키시는 적극적인 힘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기독교가 가진 소망이요, 변혁적 비전의 유일한 가능성인 것이다.

이 내용을 저자는 3장에서 이사야서를 통해서 보여준다.

 

 

3. 복음의 공공선, “이미 망가진 세상이 변할 수 있을까?” - 크리스천은 상실과 슬픔을 지나 소망을 딛고 행동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논의해온 내용을 토대로 공공선이 제거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공선이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지 이사야를 통해서 제시하려 한다.

 

이사야 40-55장은 제 2이사야라고 불리며 바벨론 포로기의 유다백성을 대상으로 쓰여졌고, 이사야 56-66장은 제 3이사야로 불리며 포로귀환 후에 쓰여졌다. 저자는 예루살렘 멸망 후에 완전히 제국의 시스템으로 편입된 유다를 보여준다. 그들은 이제 제국의 시스템 아래에서 생활해야한다.

 

2이사야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선포하며, 그들 가운데서 소망을 희망을 선포한다. 그들의 포로생활과 하나님의 거룩성이 만나 새로운 소망을 가져온 것이다. 비록 그들중에 일부만이 그 소망에 자신의 삶을 걸고 시스템을 떠났지만,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2이사야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소망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포로귀환 공동체에 전해진 말씀인 제 3이사야는 여전히 소망을 말하나, 그곳에서 이웃사랑의 실천을 요구한다. 즉 그들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느낀점

 

니체가 기독교를 증오했던 이유는 강함, 안정, , 지혜라는 좋은 것들을 나쁘다고 말하고, ‘약함, 가난, 불확실성(믿음의 결단), 어리석음을 좋다고 말해서 세상을 어지럽혔다는데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니체의 그러한 일갈이 기억이 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신앙이, 내가 마주한 기독교가 니체가 그토록 비토했던 약함, 가난, 어리석음, 불확실성의 종교와 신앙이 맞는가?” 저자는 교회로부터 바로의 시스템, 정결전통이 가진 사랑없는 분리적 태도, 소망없는 무기력함에서 떠날 것을 요구한다. 즉 니체가 비토했던 그 기독교로 돌아가라는 말일 것이다.

광야의 신앙이 사라지고, 그로부터 하늘을 바라보는 법을 잊어버린 기독교는 시스템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브루그만의 이 책은 다시한번 우리의 신앙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추천

사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추천. 신앙이 무기력하고, 메마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기독교가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우리는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목숨을 구한 일에만 주목한다. 공동체를 희생해서 소수의 부와 권력을 위해 시장을 조작함으로써 노예제도가 나타났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 P40

풍성함의 내러티브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불안하고 부족한 시스템을 과감히 떠나는 사람들은 이웃들 속에서 역사를 쓰는 사람이 된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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