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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 메이저리그 124승의 신화
민훈기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야구는 결코 기록의 스포츠가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진땀나는 승부의 순간, 9회말 2사후 만루홈런에 환호하는 1할 타자가 있는 반면 고개를 떨구는 에이스 투수도 있다. 한 쪽 다리의 깁스를 풀고 타석에 서서 기어이 홈런을 만들어내는 홈런왕이 있는가 하면, 전 타석에 홈런을 맞고도 똑같은 구질로 승부하는 투수, 15이닝동안 혼자서 181구를 꽂아대는 불가사의한 투수도 있다. 그런 선수들이 펼치는 명승부의 장면 뒤에는 그들이 인내해온 긴 세월들의 한숨과 피와 땀이 배어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것은 우리 삶의 기록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승자도 패자도, 무적의 전설과 비운의 스타도 함께 추억해야 마땅하다.
이 책은 14년간 스포츠조선의 해외 상주특파원으로 메이저리그를 전담했던 민훈기 XTM 해설위원이 들려주는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도전기다. 아시아 선수 가운데 최초로 메이저리그 124승을 이뤄낸 박찬호의 경기 내용과 흐름, 그의 미국 생활 등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박찬호가 LA다저스와 계약할 당시만 해도 현지에서는 명문 구단 다저스가 왜 어린 동양 투수와 거액의 계약을 했는지 호기심 반, 의아심 반의 반응을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지만, 18일 만에 더블A로 강등된다. 좌절감에 포기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는 남다른 의지와 목표 의식으로 그 시기를 견뎌냈다. 이후 박찬호는 1996년 4월 7일에 시카고를 상대로 거둔 첫 승리를 시작으로 15년간 총 124번의 승리를 거둔다.
박찬호는 컵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승을 따냈을 때 “내겐 역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제 시작이다. 내 목표가 10단계라면 2단계 정도 올라선 기분”이라고 말했다. 첫승에 마음이 들떠서 기뻐하기보다 앞으로 더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성실함의 표현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박찬호의 승리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수많은 고비와 역경과 부상과 부진을 딛고 일어서서 124승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고난과 좌절을 극복해낸 인간 박찬호의 모습도 숨김없이 담았다. LA다저스에서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입단한 뒤에 계속되는 부상으로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이른바 ‘먹튀’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부상과 부진을 반복하면서도 그는 단 한 순간도 야구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두가 끝났다고 질타할 때도 쉬지 않고 묵묵히 공을 던졌던 것이다.
마이너리그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았던 2007년 시즌을 마치고 2008년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저자에게 박찬호는 “나름대로 마음처럼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 나를 굉장히 자극하고 그것이 나를 노력하게 한다”며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박찬호는 2010년 플로리다 말린스와 치른 마지막 메이저리그 경기에 구원투수로 등판해 3이닝 동안 무안타, 무볼넷, 6삼진의 완벽한 피칭으로 124승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꼭 훌륭한 메이저리거가 되겠다”는 다저스 입단 때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로 남아 우리 모두에게 야구는 물론 인생에서 꿈과 희망과 목표에 대한 이정표를 보여준 박찬호. 이 책은 승리자인 동시에 온전하게 패배할 줄 아는 자의 기록이기도 하다. 동시에 박찬호의 길고 위대한 도전에 함께했던 우리 모두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서 참된 승리와 패배를 수용할 줄 아는 멋진 인생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