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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배리 로페즈는 나의 어머님과 같은 해(1945년)에 태어났다. 세계적인 경제적 풍요로움의 증가와 폭발적인 개발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이다. 그는 미국 동부에서 태어나 3살인 1948년 로스앤젤레스 외곽 샌퍼낸도밸리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랜드캐년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태평양에서 헤엄치며 성장했다. 주류인 백인 남성으로 미국 사회에서 인종적인 고통은 아니었으나, 성적인 학대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극복하면서 55년간 환경 및 생태계 보호와 사회 운동을 다룬 작가로 살면서 겪고, 느끼고, 생각했던 내용들이 차곡차곡 담겨있는 이 책과의 만남이 즐거웠다. 나와 많은 부분 경험의 유사함과 감정적 공감대가 있음을 확인했고, 현재 국내외를 막론한 사회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걱정과 문제의식이 저자가 '공포의 시대'라고 부르는 선언에서도 하나의 울림이 되었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인 '하늘'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무섭도록 풍부한 물'에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발전(?) 혹은 개발(!) 과정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가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의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애서 부터 시작하여 거의 불모의 사막지대에서 관개농업시대를 지나 물의 공급이 확대 되면서 이루어진 산업화 및 도시화의 100년여에 걸친 이야기다. 그리고 이 긴 이야기는 단 하나의 문장인 "물이 풍부해지면서 사람도 풍부해졌다."는 글로 압축되어 있다. 45~88쪽에 이르는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로스앤젤레스는 물을 끌고 와서 인공적으로 녹화와 도시화를 했다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이 마치 옆 동네의 일처럼 좀 더 실감나게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 '무섭도록 풍부한 물'에 기록된 변천사는 내가 서울의 동쪽 한강 이남인 변두리에서 무섭게 발전(?)한 지역인 강동구 천호동에서 성장하고 또 지금도 살고 있으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과 너무나 유사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가족이 처음 천호동으로 이사 왔을 때 다리는 광진교가 유일했으며, 해마다 장마 때면 온 천지가 진흙 밭이 되었고, 한강의 얼음 얼어 터지는 소리와 강기슭에서 쪽대로 수초를 훑어 물고기와 미꾸라지들을 잡으며 놀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한데 지금 잠실부터 하남시 경계까지 놓인 다리는 7개이며 또 하나가 개통을 앞두고 있다.(한강 밑으로 5,8호선 터널 2개도 있음) 한강공원이 된 한강의 기슭은 편리하면서도 본래의 자연을 기억하고 있는 내게는 이질적이다.
히스토릭루트66(미국 동부에서 서부를 잇는 국도66호선)의 일부 구간을 동서로 오가면서 성장한 저자가 자연 가까이에서 성장하다가 도시화로 점점 멀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나는 강동구의 올망졸망했던 구릉과 골짜기, 개구리 울음 소리 가득하던 논들이 있던 "개구리섬", 미나리를 키우던 물쿠렁이 있었던 "미나리깡",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한강 기슭을 향해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대화'의 장에 쓰인 저자의 반대 선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차라리 좀 더 불편하고 때로 어떤 것을 포기하더라도, 우리는 지구와 다른 생명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저지르는 부당한 행위들을 중단하고 거부해야 한다. 또한 부패하고 비윤리적인 권력과 금력에 조력하는 것(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교묘하게 합리화 되는)이 고착화 되어, 결국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못 하는 인간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공멸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인류세"가 끝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앞으로 내 생이 허락된 시간 동안 보다 많이 절약하고, 탄소발자국을 줄이면서, 두 발로 걷거나 페달을 밟으며 접하는 자연과의 선명한 만남과 교류를 최대한 가슴과 기억에 담아갈 것이다. 이 책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함께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 이 서평은 디지털감성 e북카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