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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평점 :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문턱을 넘는 순간 오래전에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프리초프 카프라가 쓴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다. 거의 50년 전에 출간된 이 책 역시 당시의 물리학자와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면서 고전물리학의 관점들이 폐기되고 동양적 관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2023년 연말에 역시 카프라와 마찬가지로 이론 물리학자인 로벨리가 쓴 이 책을 만났다. 양자역학이 문을 연 100년의 기간 동안 50년(1975년) 만에 동양사상의 많은 부분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왔고, 그 후 50년(2023년)의 시간이 지나 불교의 "공(空)"과 "연기설(緣起說)"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이론이 나왔다. 저자가 주장하는 "관계론적 그물망"은 불교의 "연기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며, 물질의 속성인 "입자인 동시에 파동"은 "공" 다시 말해 "공즉시색, 색즉시공"과 너무나 닮아있다.

카프라가 쓴 책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관심을 갖고 읽어본 뒤 잊고 살았던 세상의 본질에 관한 탐구가 로벨리의 책을 통해 다시 이어졌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천천히 곱씹어가면서 읽은 며칠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뿌연 안개에 약간은 초점이 돌아오고 또 생각이 열리는 느낌을 갖게 해준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서평을 쓰기도 전에 네이버 e북카페에 올해 만난 최고의 책이라고 추천의 글부터 올렸던 것이다. 50년의 간격을 두고서 세상에 나온 두 책이 조금 더 이해가 깊어지고(여전히 알아가는 과정이 진행 중인 양자 물리학), 좀 더 대중적이고 쉬운 글로 다가오는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양자 물리학의 세계에 헌신하고 있는 미천한 기계공(저자의 표현을 빌자면)인 로벨리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양자 간섭현상(양자 컴퓨터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해 주고, 또한 얽힘에 대한 설명에서는 한 쌍으로 맺어진 양자만이 아니라 그 관찰자인 제3의 대상도 속성의 발현에 관여하기에 둘이 추는 춤이 아니라 셋이 추는 춤이라는 비유를 들어서 풀이를 해낸다. 이론물리학자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지는 못했어도 현상에 대한 설명과 철학적 종교적 사상을 엮은(얽힘과 비슷한) 설명을 통해 일반인인 내가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우리 우주의 첫 순간>과 함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도 내 곁에서 두고두고 함께 익어갈 책이다. 언젠가 다가갔으나 단단히 막혀서 돌아선 뒤 생활 속에 파묻혀 잊고 있었던 실존과 세상의 본질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 벽에 금이 가고 살짝은 넓어진 느낌이 든다. 언제나 좋은 책을 만나는 인연은 참으로 소중하고 기분 좋게 쏟아붓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 이 서평은 디지털감성 e북카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