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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나카지마 교코 지음, 승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내 심경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사서 읽게 된 듯 싶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집은 기대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환절기다 싶으면 한 놈, 두 놈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온 식구들이 다 감기다. 다 데리고 병원이라도 한 번 갈라치면 뻥 조금 보태서 '민족의 대이동' 수준이다.
객관적으로 힘들다. 정신 없다. 맞다.
그런데 사람이 참 희안한게 행복하면, 즐거우면, 똑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별로 힘이 안 든다는 사실... 웃으면서 넘어간다.
이 소설의 가족들도 다 아픔이 있다. 힘들다. 냉정하게 보면 상처입고, 망하고, 왕따 당하고, 집 밖에도 못 나가는 지질이 궁상 루저들이다.
작가는 관습적으로 성급하게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실제 우리네 삶처럼 그냥그냥 그럭저럭 덮어놓고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바운더리가 있다는 사실로 희망은 살아나는 느낌이다. 조금씩 일어날 힘이 생긴다.
문제있는 가족들이 모였지만, 극적으로 서둘러 꼬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접근이 실제 우리네 삶과 닮았다. 더 생생하다.
다른 분들도 리뷰에서 밝히듯, 이야기를 너무 서둘러 마무리하는 느낌은 받았다.
좀 더 긴 호흡으로 다시 이야기를 풀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
아래는 읽다가 표시했던 부분
169쪽.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올 시간이라는 생각에 문득 창밖을 내다보다가 눈이 부신 듯한 표정으로 2층을 올려다보던 가야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가쓰로는 명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여 시선을 피하려고 했으나, 활달한 그녀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입을 크게 벌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을 얼굴 옆까지 들어 올리고 만 가쓰로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172쪽.
이제까지는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소란을 떨고 과자 업체가 선전을 해도 가쓰로에게는 북한 국방위원장의 생일 이틀 전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던 그날이, 그 일 이후로는 가쓰로의 역사에 혁명기념일처럼 선명하게 각인되고 말았다.
그나저나 '출판사 책 소개'는 정말 휘황찬란하다. 출판사 소개글만 보면 아주 노벨문학상이라도 타야 할 것만 같다.
한정된 재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귀찮더라도 좀 더 두 눈 부릅뜨고 살펴봐야겠다는 교훈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