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어떻게 계획되었는가 살림지식총서 156
염복규 지음 / 살림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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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공간이 하루아침에 지금의 모습이 된 건 아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오지랖인가?? ^^

암튼 식민지 시대로부터 도시공간이 계획되는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지금의 서울을 이해하고, 우리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 도시계획 속 '공익'의 폭력성은 식민지 경험에서 출발


광명천지에 왜 아직도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왜 국가는 도시개발, 도시미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관대한지, 혹은 무관심한지.

그 오랜 뿌리가 바로 일제시대에 닿아 있었다.


'공익'을 위해서는 사익도 제한 받을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헌법에 명시될 만큼 사익제한을 조심하라는 뜻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뇌된 교육의 영향인지, '공익'이 절대선이라는 국가주의적인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잡았었나 보다. 사익 추구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파쇼적인 생각이 내 안에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인지하게 되었다.


헌법 제37조가 이렇게 끝난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공익', '공공성'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국가적 폭력이 자행되어 왔는가를 돌이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 도시계획, 도시정비의 이름으로 거행된 국가사업에 감히 그 누가 반대할 수 있었을까. 지주계급도 피해를 보았지만(당연히 이득도 있었을터), 결국 사회 하층민(토막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일제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그 방식 그대로 지금도 도시개발이 진행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어려운 사람들,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피해를 본다.


하필 왜 한남동에 고급빌라와 외국대사관저 등이 있는지 궁금했었다.

책에 따르면, 그 시작이 바로 경성시가지계획이다. 한남지구를 관료 등 일본인 상층부를 위한 고급주택지구로 지정했다.


이처럼 내가 살고 있는 현재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은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오랜 역사를 철저하게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판단해야지 나와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서울'이 조금은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으리라.











<책 중에서>



 사적 토지개량사업의 국가적 동원이라는 시가지계획령 본래의 정신에서 연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원'의 반대급부는 일정한 경제적 잉여의 보장이었지만, 식민권력의 입장에서 그것은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아니었다.

 오히려 토지 소유자들의 불만에 대해 식민권력은 '공익주의'라는 깃발을 들고 반격을 가했다. ... "꼭 지가만을 수익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익우선의 감정이다. 자신이 납부하는 부담금에 의해 도시민 전체가 얻게 될 교통상, 위생상, 도시의 번영상 얻을 수 있는 수익을 공익적 견지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한 경성부 토목과장의 답변





 공권력에 의한 철거와 저항의 사례들 가운데 1938년 12월 종암정의 경우는 도시계획의 시행과 빈민 주거 박탈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낮에 남자들이 근처 구획정리 공사장에 일하러 나가고 부녀자들만 집에 있는 틈을 타서 경성부에서 보낸 인부 1여 명이 토막 2백여 호를 일시에 철거... 사건 다음날 토막민들은 ... 격렬하게 항의했다. ... 우리는 1930년대라는 시간적 한계를 넘어 그 후 오랫동안 계속된,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빈민 주거 박탈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토막민들의 저항은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 모든 철거는 '적법과 불법'의 구도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시가지계획의 시행은 어떤 이유에서든 빈민 주거를 박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자본주의 도시계획의 필연적인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본래 시가지계획의 경제적 동력은 국가권력의 목적에 따라 사유지를 동원하는 대신 개발이익의 일부를 토지 소유자들에게 '분배'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단 이 시기뿐 아니라 자본주의 도시계획의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보면 도로망 부설이건, 구획정리건 모든 사업의 시행 방식은 개발이익 자체의 창출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개발이익의 창출을 대신한 것은 '공익주의'라는 벌거벗은 동원의 깃발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연한 자신의 몫인 '사익'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한 토지 소유자들은 시가지계획사업의 진척에 비협조적이었다.





 '주거 대책'이라는 차원에서 경성시가지계획은 초기 돈암지구와 같은 성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와 더불어 빈민 주거 문제의 해결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전시라는 객관적 상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쟁 동원 정책의 '역설적' 결과로 환기된 '사회적 공공성'의 개념이 끝내 '사유제'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1930년대 도시계획의 핵심적 부분이었던 경성시가지계획은 분명 여러 가지 물리적 결과를 남겼다. 서울은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로 확장되었으며, 체계적으로 도로망이 구축되었고, 공장지와 주택지가 새롭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도로공사나 구획정리사업이 중단된 토지들은 해방과 더불어 모든 통제가 정지되면서 토지 이용이나 소유관계에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빨려들어갔고, 훗날 도시계획이 재개되었을 때 여전히 법적, 경제적 부담으로 남았다. 대부분의 구획정리 사업은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청량지구나 신당지구의 경우에는 1986년에 와서야 환지처분, 촉탁등기 등 구획정리를 마무리 짓는 법적 조치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당시 경성시가지계획에서는 도시계획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들이 발생했으며, 경성 주민들은 그 '첫 경험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경험한 것은 이해관계의 대립과 충돌, 합의와 조정이라는 도시계획의 지역정치가 아니라 도시계획의 방향 설정, 시행과정에서의 소유권 제한이나 비용 징수 문제, 빈민층의 주거 박탈 등 언제든지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문제들을 '국익'의 이름으로 '봉쇄'하는 관행이었다.

식민지 경험은 반성의 여지없이 지배담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개발독재와 고도성장의 시대를 거치며 우리가 쌓아올린 근대화의 바벨탑은 이렇게 식민지 경험에 바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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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홍보 실무 특강 - 홍보팀에 첫발을 들인 사람이 꼭 읽어야 할
함성원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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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은 아무것도 모를 뿐더러, 고객 서비스, 고객 감동 같은 마인드도 없던 내가 홍보 업무에 합류하여 어리버리 시키는 대로 일을 했었다.

 

이 책을 통해 그간 닥치는 대로 하던 업무들이 설명이 되기 시작했다.

 

PR 초심자가 참고삼아 읽어 볼 만한 책이다.

 

 

 

* 물론 현실은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온갖 변수들로 가득 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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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크 - 첫 2초의 힘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무열 옮김, 황상민 감수 / 21세기북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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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는 모든 가능성과 변수를 고려하고, 정보를 모으고 모아서 깊이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라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실수를 줄이고 내가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말콤은 이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우리는 깊이 생각하여 행동하는 것보다 눈깜짝할 사이에(인식하지도 못한 찰나에) 무수한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 그런 순간적 판단이 매우 합리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인식조차 못하는 그런 순간적 판단이 항상 잘나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한다. ex) 펩시vs코카콜라 테스트, 경찰관의 오판 사격


그럼 말콤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건가.


내 생각에 저자는 '우리 인간이 상당히 합리적이며, 깊은 추론과 논리적 사고를 전개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상식이 100% 옳은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순간적인 판단, 직관적 사고가 때로는 우리를 궁지에서 구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판단이 오류에 빠질 위험은 있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서 그 위험성을 상쇄시킨다면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많다는 얘기이다.





아주 재미있는 여러가지 사례를 거론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는 솜씨가 꽤나 세련되다.


- 환자에게 고소당하는 의사 : 환자와 의사 간의 대화내용을 잠깐만 들어봐도 고소를 당할지 그렇지 않은지를 쉽사리 판단할 수 있다. (의학자 웬디 레빈슨 연구: 두 그룹 사이에 환자에게 주는 정보의 양과 질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두 그룹의 차이는 순전히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였다.)


- 대학원 진학 시험GRE에서 흑인대학생에게 인종을 사전에 물음. 점수가 절반으로 저하. (심리학자 클로드 스틸, 조슈아 아론슨)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 착각이었음을 암시... 하루의 대부분을 자동조종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셈이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의식보다 외부의 영향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 자동적 선입견과 관련 재미있는 퀴즈

한 남자와 그 아들이 심각한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응급실로 급송된다. 도착하는 순간, 당직 의사가 아이를 보고 숨이 넘어갈 듯 소리친다. "이 아이는 내 아들입니다!" 의사는 과연 누굴까?


--> 힌트) 의사가 항상 남자인 것은 아니다.


- 폴 에크만. FACS 얼굴작동 부호화시스템

  = 미드 'lie to me'가 이 분에게서 영감을 받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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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힌...열방에서 김민호 목사님이 무시하셔서 나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득렬 목사님이 읽어보라고 하셔서 들춰보았다.


의외로 성령님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님과의 동행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내가 본 이 책의 핵심단어는 '인격' '항복'


성령님은 '인격적'이다는 말을 늘상 해왔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고민해 보질 않았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무채색이었던 하나님(성령님)이 색이 칠해지는 느낌이다. 

보다 친근하게 다가오시는 성령님


또 그동안 성령충만을 무수히 구했지만, 정작 그게 무엇인지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점.

성령충만은 항복하는 것이다. 

비유가 좀 그렇지만,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에 완전 장악된 것이다. 

성령충만도 성령님이 완전히 나를 장악하도록 나를 내어드리고 항복하는 것.

좀 더 실제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명령하셨다는 '지상명령'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하라는 것이 포인트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더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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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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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의 삶과 그가 고민해 온 논리학에 대해서 만화로 풀어나간 아주 기발한 책이다.


3가지 다른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면서 진행되는 옴니버스 구조? 이다. 3가지 다른 이야기 축이 교묘하게 서로 이어져서 발전하고 교류하고 서로 잇대어 있다. 샵 in 샵 형태랄까. 또는 내용에서 주요 논란거리인 자기언급 구조가 이 책에 그대로 구현되었다.


그래서일까 무척 어렵고 골치 아픈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책은 술술 잘 읽힌다.(깊이와 내공이 없어서 아무 생각이 없는 나의 무식함 때문일지도..ㅠ)


이야기 구성과 내용전개 방식은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러나 주제가 너무 어렵다. 수학과 논리학, 철학에 대한 기본 지식과 이해가 없다보니... 언급되는 단어의 개념조차 모르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좀 더 현대철학의 논리전개에 대한 이해가 이뤄진 다음에 다시 한번 보면 좋을 것 같다.


나의 무식함과 근원적 성찰이 없음이 아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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