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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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빠지는가



부정행위에 대한 기존 경제학적 관점 : SMORC (simple model of rational crime) -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그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을 거친 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한다


경제학의 기본 전제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에 충실한 설명


VS


반면 저자는 '인간은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저지른다는 명제를 다양한 심리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증명한다. 



* 그런데 잠깐, 이미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 - 나를 포함한 인간은 비합리적이다-을 32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으로 책으로 써가면서, 게다가 그 무수한 실험들을 분석까지 해서 결론을 도출했다니... 뭐랄까 학문의 세계가 약간은 딴 나라 얘기같다고나 할까... 허무하다고나 할까...



저자의 이론적 배경은 fudge factor 퍼지요인 이론이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동기에 따라 부정행위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리적인 동기에 따라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길 바란다.


즉, 사람들은 두 가지 동기부여를 받아 어떤 행동을 한다. 한편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정직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로 봐주길 바란다.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어한다.(자아 동기부여ego motivation)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속여서 이득을 얻고자 하며 그것이 가능한 한 크길 바란다.(재정적 동기부여financial motivation)


이 두가지 상반된 동기부여는 명백하게 서로 모순된다. 이 때 바로 인간의 놀라운 인지적 유연성 cognitive flexibility이 발휘된다. 인지적 유연성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적어도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르며 이득을 얻는 동시에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된다.


* 짧은 내 지식으로는 '인지 부조화'랑 비슷한 얘기인 것 같다. 왜 그 오래 줄서서 맛집에 들어갔는데 막상 음식이 형편없었더라도 대다수는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합리화해서 맛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말이다.



이런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부정행위에 영향을 미칠 만한 요소들을 실험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검증해나간다.


사실 이 책에서 이 과정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저자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거기서 실험을 설계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나가는 과정을 쉽고도 흥미진진하게 정리했다




<이익충돌 : 경제적 동기가 우리를 눈멀게 할 때> 장에서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전략을 소개하는 부분이 나온다. 


제약회사 로고가 박힌 볼펜, 수첩, 머그잔 등등 또는 병원 직원들에게 피자 쏘는 것 등


이런 사소한 선물이 현실에서 의사들이 처방전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그 제약회사의 의약품을 더 많이 추천하도록 작용한다. 의사들은 자신에게 선물을 준 제약회사에게 어떤 식으로든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행동심리학적 접근이 개인적인 업무에도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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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미있고도 약간 충격적인 것은 부정행위가 사회적으로 전염된다는 것,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은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판단될 경우 부정행위가 증가한다는 결과


"자신의 부정행위로 자신과 다른 사람이 모두 이득을 얻을 때 사람들은 이기적인 동기와 이타적인 동기가 혼합된 상태에서 행동하는데, 이때는 자신이 저지를 더 높은 수준의 부정행위를 합리화히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부정행위를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일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자신이 순수하게 이타적인 차원에서 하는 부정행위를 합리화하기가 훨씬 쉽고, 따라서 도덕적인 금기의 벽은 더 쉽게 무너진다. 순수하게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어떤 정직하지 못한 일을 할 경우 우리는 마치 자신이 의적 로빈 훗이 된 것처럼 착각한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볼 때 개인적인 이득을 추구하지 않고 이념적인 차원에서 정치 단체와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덕적인 원칙을 파기하는 데 심리적으로 저항감을 더 적게 느낀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 행위가 대의를 위한 것이고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분석에 깊이 공감한다. 얼마 전 있었던 통진당 사태도 이와 같은 맥락이 작용했으리라. 우리나라 좌파나 노동운동가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대의명분이 정의로우니 절차적 하자 따위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바로 이런 현상의 기저에 깔린 심리적 메커니즘을 저자가 제대로 집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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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행위는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이를 규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지적처럼 "먼저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이유를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효율적인 처방들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법을 입안하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들이 꼭 좀 읽어봤으면 한다. 나 역시 이쪽 관련 분야에 있긴 하지만, 정말 얼치기 법안이 급하게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사람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무언가 부정행위를 규제하고 제어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법안이라면 더더군다나 왜 사람들이 부정행위를 하는지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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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현실에서 어떤 요인들이 작동하고 어떤 요인들이 무관한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상황이 의사결정이나 행동경제학 연구에서 끊임없이 목격되고 있다. 두루뭉술하게 말한다면 인간 행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상당수는 사람들이 하는 의사결정을 추동하는 진짜 요인들을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고 결론짓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정직함은 사람들이 드러내는 비합리적인 성향의 대표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사례다. 

...

우리는 부정직함의 마술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

그러나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실제로 유발하는 실체가 무엇인지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고 결점을 바로잡을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것이 사회과학의 진정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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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편견일 수는 있으나, 서구인들의 이 디테일한 분석적 사고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저자가 쓴 내용은 이미 나 역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것을 쪼개고 쪼개서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어떤 문제에 대한 실체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과 열정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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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후반부를 읽으면서 공교롭게도 같이 읽은 책이 <인문학은 밥이다>의 '심리학' 파트. 


"지나치게 실증주의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심리학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 심리학은 정신을 다루는 과학이다. 그 대상이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정신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수준의 실증적 결과를 도출하려는 경향은 다양한 결과 중에서 결론이 맞는 것들만 추린 후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 역시 아무래도 학술논문이 아닌 만큼 과정과 데이터가 대부분 생략되어 있고 결과만 제시하고 있어 저자의 입맛에 맞는 결과만을 취사선택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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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저쨌거나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온 나라가 침통한 이 시점에 왜 우리나라는 이 모양일까, 왜 우리나라에는 부정행위가 만연해 있을까 등등 우리나라만 이상하다고 너무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라면, 비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들이 사는 곳 어디에나 부정행위는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기본 성정이 그렇다는 것과 이를 적절히 규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사회정의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시스템을 적절히 구축하기 위해서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이 나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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