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 타케이테아시 만화전집
히로아키 사무라 지음, 김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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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중한 시대극 만화였던 <무한의 주인>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일본의 만화가, 사무라 히로아키. 


이번에 읽은 만화책 <이사>는 사무라 히로아키의 한 권짜리 만화입니다. 


장편 시대극이었던 <무한의 주인>과는 여러모로 색다른 느낌을 주는 만화입니다. 일단 사극이 아니라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를 다룬다는 점이 그렇고, 긴 플롯이 아닌 짧게짧게 끊어지는 소소한 일상적 스토리들을 담고 있다는 것 또한 차이점이죠. 그래서 <무한의 주인>으로만 사무라 히로아키의 작품을 접하셨던 분들은 이 만화에서 그의 색다른 느낌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을지도요.







사실 사무라 히로아키는 <무한의 주인>을 오래 연재하면서 중간중간, 혹은 연재가 끝난 이후 이사, 시스터 제너레이터, 브래드할리의 마차, 할시온 런치 등의 단편집을 꾸준히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단행본 2권을 넘지 않는 단편을 모든 것들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며, 시대는 대부분 현대를 배경으로 하죠. 일상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유일한 장편인 <무한의 주인>이 사무라 히로아키 작품 중에서 이질적인 작품일 수도 있겠네요. 




사무라는 상기에 서술한 많은 단편들에서 현대의 생활상을 배경으로 독특한 유머코드와 세련되고 참신한 스토리텔링, 연출을 구사해냅니다. 본인이 재미있게 즐기며 그린다는 느낌을 보여주는 책들. 


무협지에 가까운 사극 <무한의 주인>에서 보여준 시대극적인 진지한 재미와는 또 다르게, 그것보다 조금 더 가볍고 해학적이며 조금 더 풍자적입니다. 시대극에서 맘껏 못 펼쳤던 온갖 드립이 난무하죠.






오늘 얘기하는 <이사>의 경우는 특히 그렇습니다.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종의 단편집. 3개의 이야기라고 해도 1편이 분량의 3/4를 차지하고, 마지막 편은 작가의 자전적 일화를 그린 1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만화라서 이걸 단편이라고 하기엔 좀 미묘하지만.


첫번째 단편의 제목이자 이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사'는 일종의 러브코미디? 라고 할 수 있는 단편. 작가 특유의 자조적, 풍자적 개그가 부분부분 빛나기는 하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건 개그가 아닌 스토리 그 자체. 전체적으로 코믹하고도 진지한 분위기가 흐르는데, 종종 터져나오는 가벼운 개그도 작품 전반적인 진중함을 흩뜨리지는 않으며 유려한 전개와 마무리를 보입니다. 보편적 감성으로 어렵지 않은 접근과 공감을 이끌어내죠. 다만 감성 자체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고 있으나 작가의 연출과 감성이 상당히 독특한 면이 있는데...



다른 두 개의 단편은 러브코미디는 아닙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짧고 굵직하고 어떻게 보면 가볍기도 한 이야기. 여튼 작가의 정신세계와 그 재치를 한껏 보여주는 단편이 바로 이 두번째 단편입니다. 한 여류 만화가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역로를 토대로 한, 눈물의 일기를 보여주는 이 시나리오에서는 대사 자체에서도 그 유별난 센스가 묻어나곤 합니다. 




화풍에 대해 말하자면, 사무라 히로아키 특유의 그림체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소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연필로 그린 듯한 느낌을 주는 거친 느낌이죠. 펜의 느낌 자체가 상당히 거칠고 선을 여러 번 겹쳐긋는 화풍이라서 다소 뻑뻑한 느낌. 인생극장스러운 그림체라고 할까요?

뭐 개인적으로 이 건조하고 투박한 느낌이 싫지만은 않습니다만. (오히려 거친 붓으로 휙 스친 것 같은 이 건조함을 좋아합니다)


아, 이 책 <이사>도 그렇고, 사무라 히로아키의 단편들에서 보이는 작은 단점이 있는데, 바로 가독성. 특히 이 책 <이사>에서는 대사를 조그맣게 여기저기 배치해놔서 몰입이 잘 안 되기도 합니다. 작품 전체적으로 대사가 약간 난잡하고 번잡스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뻣뻣하고 깔끔하지 않은 그림 때문에 더 지저분해 보이는 감도 있고요.



여튼 작가는 특유의 센스를 버무린 활기차고도 남루한 일상물을 꿋꿋이 전개해나갑니다. 보면 괜시리 웃음이 나기도 하고. 작가의 사회에 대한 약간 비뚤어진 시선과 시종일관 유쾌한 애드립, 특출난 풍자와 해학, 그리고 약간 정신나간 센스를 만끽할 수 있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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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 프랑 1
키기츠 카츠히사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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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기츠 카츠히사 작가의 <프랑켄 프랑>을 봤습니다.   


본격 메디컬 호러. 

최근 우리나라에도 정식발매되어 전 8권으로 완결된 작품이죠.




일단 19세 딱지를 달고 있는 '고어'물 입니다. 그렇지만 슬래셔 무비처럼 살인마가 활보하며 사람들을 찢어죽이는 종류의 광기가 아닌, 일단은 '의료' 만화입니다. 하지만 유혈이 낭자하고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사이코틱한 의료 만화

수술하는 장면들을 적나라하고 박력있게 보여주면서,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겪는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해프닝들을 보여주는 것이 주 전개방식이죠. 한 화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 옴니버스 형식의 구성입니다






주인공 마다라키 프랑





<프랑켄 프랑>의 주인공인 '프랑'은 실력이 뛰어난 의사입니다. 다만 그녀는 인간이지만, 동시에 어떤 권위있는 의료계의 저명인사가 만들어낸 인조인간이기도 합니다. 프랑은 단정하게 의사 가운을 입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얼굴에는 누덕누덕 기운 자국이 보이고 양쪽 귀 부근에는 프랑켄슈타인처럼 철심을 박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프랑'이라는 이름은 당연히 프랑켄슈타인을 모티브로 한 것이겠죠) 


그녀는 독보적인 수술 실력을 가지고, 여러 의뢰와 수술을 해 나가고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색다른 접근법과 해결 방법으로 사람들을 구하려 수술을 하죠. 그리고 수술결과는 항상 엽기적이고 기괴합니다. 그리고 극히 일부의 해피엔딩을 제외한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사람들은 신체 개조를 당하거나 결국 비극을 맞게 됩니다. 






 

프랑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만 낸다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손님 자신이 원하는 수술을 해 준다는 게, 의사 프랑의 생활신조이죠.

단, 프랑은 수술 이후의 결과에 대해선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의한 결과는 자신이 책임지라는 것이죠.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녀는 사람들이 가진 욕망과 욕구를 그대로 들어주지만, 사람들의 욕망은 거진 엽기적이고 해괴망측한 수술결과로 끝나고 대부분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대부분'이라는 말을 쓴 건, 간혹 해피엔딩일 때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프랑이 생각하는 해결책과 일반인이 생각하는 해결책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죠. 그렇게 행해진 수술에 의해 벌어지는 끔찍하고 엽기적인 해프닝이 <프랑켄 프랑>의 주된 내용입니다. 


강력하고 압도적인 힘을, 약간 맛이 간 사람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사건들과 다양한 참사가 벌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웃지 못할 해프닝을 보는 재미. 프랑의 이상과 끔찍한 현실(제 3자가 보기에는)의 괴리에서 오는 아이러니컬함이 작품의 기괴한 재미를 만들어 냅니다. 


 죽은 아들을 살리려 찾아온 한 남자의 의뢰를 받은 프랑. 

그녀는 보시다시피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며 스스로 박애주의자를 자처합니다





사실 프랑이 저지르는 일들은 대부분 악의 없이 순수한 박애심에서 비롯되어 저지르는, 일종의 거대한 실수입니다. 본인은 자기 자신을 박애주의자라고 여기며, 무엇보다도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인물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보편적인 사고방식에 크게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바람직한 인간상에 가까운 인물이죠.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라는 목표에만 부합하면 그 사람의 형태나 의지는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의 몸을 벌레의 몸으로 바꾸어놓거나, 사고로 머리만 남은 사람을 머리로만 살 수 있게 하는 등 온갖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저지릅니다. 그저 인간애 하나로 모든 것을 포용하다 보니 일어난 대참사라고 볼 수 있겠죠.

프랑은 사고방식 자체가 정상에서 약간 먼 인물이고 자신만의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전부 자기 본위로 해석하고 수술로 인한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며 항상 흡족한 표정을 짓습니다. 






수술은 대체로 이런 분위기. (이 장면 이후에 본격적인 수술 장면이 나오는데, 떡하니 올려놓긴 징그러워서 잘랐습니다...)





주인공인 프랑은 압도적인 수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집도 능력으로 그녀를 찾는 이들의 소원을 모두 들어줍니다. 그러나 그 수술의 대가는 항상 예측불허하고 참담하죠. 


사실 많은 경우 그런 일을 의뢰하는 사람의 의사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프랑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이 만화는, 의술 또는 현대과학의 힘을 빌려 손쉽게 자신의 열망을 이루려는 사람들에 대한 짤막한 경고일 수도 있다고 느낍니다. 자신의 노력 없이 의술에 기대어 모든 것을 이루려는 사람들에 대한. 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성형' 문제에 대입해 생각해 보면 참 생각할 여지도 많군요.(아, 생각해보니 성형과 연관된 에피소드도 하나 있었습니다) 


또한, 한 사람이 선의와 인류애에 의해 자행한 일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 생각해볼 부분이기도 합니다. 



'성형'을 다룬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마지막 대사가 저는 참 인상깊더군요. 

"자기 결정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지" 

어쩌면 이 작품 자체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저 말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작품엔 프랑의 여동생이자 살인청부업자인 '베로니카' 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베로니카는 언니인 프랑과 성격적으로 명백히 대비되는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의 경우 인간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죽고 싶다 해도, 생명 그 자체를 살리는 것을 중요시하는  반면 베로니카는 자신이 살인을 할 때는 고통을 최대한 없애려 빨리 죽인다면서, 고통스럽게라도 굳이 인간을 살리려는 언니 프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베로니카




하지만 언제나 사람의 고통을 최소한도로 줄여주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베로니카는, 오히려 언니 프랑에게 '넌 이해할 수 없어'라거나 '베로니카 너는 조금 상냥해질 필요가 있어...'라는 훈계를 듣기까지 하죠. 


우리, 그리고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은 프랑보다는 베로니카의 가치관과 유사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생각을 투영하는 베로니카는 언니 프랑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아예 부정당하죠. 프랑의 해결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상식 선에서의 해결책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믿어온 생명윤리와 가치관을 부정당하고 뿌리까지 뒤흔드는 것이죠. 






이처럼 작품 내내, 프랑의 가치관은 우리를 괴기한 혼란과 충격에 빠트립니다. 진정한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리고 당사자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생명 자체의 존엄성이 끝까지 추구되어야 하는지.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우리를 아리송하게 하죠. 


<프랑켄 프랑>은 이처럼 우리가 믿고 있던 상식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는 촌극을 연출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가치관들을 뒤흔들고 깨부수죠.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사람과 생명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곱씹게 합니다. 








<프랑켄 프랑>은 잔인하고 자극적인 만화인 동시에, 굉장한 흡입력을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편 각 에피소드마다 스토리적 완성도가 매우 훌륭하고, 그림실력과 연출력 모두 상당한 수준이라서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훌륭하죠.


다만 매우 그로테스크한 고어만화라는 장르 때문에 취향 차이가 극명하게 갈릴 뿐...작품 자체는 만화로써 완성도 높고 충분한 재미를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매 화마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는 여러 참신한 소재와 스토리를 보면서 작가의 그 상상력과 창의성에 감탄이 나오는 만화이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최고의 상상력을 지닌 작품이죠. 



이 작품의 특이점이 하나 있다면,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주인공인 프랑과 베로니카를 비롯한 여자 등장인물들을 참 귀엽고 사랑스럽게도 그려낸다는 것입니다. 펜선도 대체로 둥글둥글한 편이고, 작품의 내용과는 별개로 초롱초롱한 눈매를 가진 여자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의 분위기와 상반된 그림체의 갭이 이 만화의 매력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렇지 않게 인체실험을 하는 예쁘장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한 번쯤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픈 작품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팔랑팔랑 넘기며 읽어도 재미있고, 각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파헤쳐가며 그 의도를 생각해 보거나 자그마한 고찰을 해 가며 읽어도 좋을 만화. 넘쳐나는 블랙코미디를 보며 웃고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다만, 그로테스크함에 면역이 없는 사람은 웬만하면 절대 보지 않기를 권합니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쉽게 읽혀질 만한 내용이 아니며, 사람에 따라 구역질날 만한 장면이 충분히 있으니까 말입니다. 19세 딱지는 괜히 붙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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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의 에마논
카지오 신지 원작, 츠루타 겐지 그림 / 미우(대원씨아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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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의 에마논>은 그 <추억의 에마논>의 후속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내용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딱히 어느 걸 먼저 봐도 상관은 없어요.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 볼 만은 했는데, 강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던 작품. 사실 전작인 <추억의 에마논>이 워낙에 완성도 높고 밀도있는 작품이라서, 그에 비하자면 이 작품은 다소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내용상으론 전 권의 분위기와 비슷한 짧은 에피소드가 하나, 그리고 그림은 많으나 글로 적기엔 짧은 가족 이야기가 하나. 전권 <추억의 에마논>에 비해 컬러페이지도 많고 좀 더 두껍지만, 막상 내용의 알맹이가 부족해서 아쉬운 책입니다.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게, 메인 플롯이 되는 내용의 비중이 너무 적다는 점이죠. 에마논이 자신의 쌍둥이 오빠를 만나 대화를 하고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가는 것이 메인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분량을 다소 적게 할당하다 보니 다 읽고 나서 약간 김이 빠집니다. 

 

 

 

 너무 술술 넘어가버려 빨리 읽어버렸는데, 뭣보다 내용 자체가 별 것 없네요. <추억의 에마논>이 쓸쓸하지만 제법 아련한 여운을 남긴 채 끝났다면, 이번 권 <방랑의 에마논>은 조금 읽다 보니 '뭐야 벌써 끝인가' 싶은 허무함과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에마논은 여전히 예쁘장하니 좋습니다만.

 

 

 

 

 

 

 그리고 그 와중에도 표지는 여전히 예쁩니다. 속표지에는 같은 포즈로 서 있는 에마논의 어린시절 모습이 겹쳐져 있네요.

 

 저는 표지가 예쁜 책에 쉽게 현혹되는 편이라, <에마논> 시리즈를 봤을 때 도저히 안 사고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굳이 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책들이 제 방 책꽂이에 나란히 꽃혀있더군요.



 

 

 


 츠루타 겐지 작가는 늘상 해오던 대로 에마논의 쓸쓸함을 그리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전권 <추억의 에마논>은 만화의 모든 컷이 시시각각 작품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대사가 많지 않아도 속이 꽉 찬 만화였는데 이번 권은 굳이 없어도 상관없는 그림이 다소 있기 때문에 페이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네요. 만화 내에 흐르는 분위기는 여전히 좋지만,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굳이 필요하지 않은 그림들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방랑의 에마논>은 전권처럼 줄곧 평화롭고도 싱숭생숭한 가운데 쓸쓸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한편으로는 밋밋한 감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잔잔하고 때때로 외로운 분위기가 한껏 녹아있는 만큼, 그런 걸 즐기려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작품이에요. 츠루타 겐지 작가의 매력적이고 농밀하기까지 한 그림들을 하나하나 즐겁게 감상하면서 읽는 것도 바람직한 독서 방법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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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에마논 1
츠루타 겐지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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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루타 겐지는 알 사람은 알만한 나름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작가인데, 그의 작품들이 여태껏 잘 소개되지 않다가 작년에 드디어 그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이 작품이 정식발매되었네요.

 

 그림을 보시면 알수 있듯이, 세세하고도 여리여리한 펜선으로 인물을 그리는데 일단 그림실력 자체도 상당하고 개성도 뚜렷해 좋은 평가를 받는 작가입니다. 또한 그림뿐 아니라 만화에서의 정적인 연출을 통해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는 작가이기도 하죠.

 

 이 만화 <추억의 에마논>은 특히, 정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냅니다. 스토리도 좋지만 츠루타 겐지의 그림, 연출면의 공로가 크죠. 

어느 정도냐면, 스토리를 제하고 그림만 감상했어도 만족스러웠을 만한 만화였습니다. 그만큼 츠루타 겐지는 그림 하나하나에 성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 표현하는 장인이며, 이 책에선 특히 그랬습니다. 인물의 눈빛, 뚱한 표정, 희미하게 변하는 입꼬리 등으로 인물의 성격을 대신 설명하는. 그게 가능한 작가입니다.

 

 


 

 인류의 30억년간의 세월의 기억을 모두 담고 있는, 에마논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가가 전개됩니다. 

 

 

 오직 두 사람간의 대화, 혹은 대사 없이 그림만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극히 잔잔한 책인데, 이상하게 감동이랄지 마음에 울림을 남기는 장면이 많습니다. 배경의 활용, 인물의 미묘한 표정만으로도 작가는 그 속에 많은 것을 깊이 담아낼 줄 압니다. 또한 대화와 적막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며 그림의 분위기만으로도 애틋함과 그리움을 모두 그려내죠. 

 

 츠루타 겐지 작가의 빈티지틱하고 수수하지만 표정과 눈빛을 담아낼 줄 아는 작화와, 묘하게 신비스러운 내용의 분위기가 환상적으로 잘 맞아떨어집니다. 기법상의 참신하거나 획기적인 연출은 딱히 없었지만, 연출력이 기본적으로 훌륭하고 아련한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유지시켜 끌고 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스토리텔링 또한 단순하지만 담백하고요. 만화의 한 컷 한 컷이 작품의 분위기를 시시각각 형성해갑니다. 모든 컷이 군더더기 없이 모두 중요하고, 이야기의 밀도가 높다는 겁니다. 

 

 오래 걸려도 30분 정도면 다 읽어내려갈 수 있는 한 권짜리 책인데도, 책을 덮으니 한 편의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 듭니다. 만화라기보단 영화대본같은 느낌이 강해요. 책의 분위기에, 그리고 에마논이라는 인물에 우리를 순식간에 빠져들게 합니다. 수십억년 동안의 시간의 기억을 담고 있는 존재라는 설정을 참으로 감수성있게도 풀어냅니다. 

 

 


 

 

 

 이 책에 대해 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단행본의 퀄리티. 책 자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느낌이 참 좋습니다. 색감도 좋고요.

 표지부터 방랑자의 냄새가 느껴지죠. 겉표지를 들춰내어 보이는 속표지도 참 예쁘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지의 보라색 '추억의 에마논' 폰트가 정말 멋져요. 단순하고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서체인데도 책 분위기에 어찌 이렇게 딱 맞는 느낌을 잘 살렸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특히 책꽂이에 꽂아 두었을 때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 고급스럽고 훨씬 빛을 발합니다. 뭐 저만 그렇게 느끼는 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왼쪽이 속표지, 오른쪽이 겉표지입니다. 다 찍지는 못했지만 뒷부분에도 속표지 그림이 따로 있습니다.


 

 

 

 

 길지 않은 한 권의 만화이기 때문에 스토리는 그닥 길지도 않고 특별히 세세하게 짜여져 있지도 않습니다. 만화에서 치밀한 스토리나 다양한 인물들이 벌이는 다이나믹한 상황의 재미를 찾으시는(추구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이 조금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만큼 스토리보다는, 그림과 분위기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책이니 말이죠.

 

 <추억의 에마논>은 짧지만 잔잔하고 담백한 만화를 찾으시는 분들께는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하얀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고, 담배를 꼬나문 불량소녀. 그녀에겐 몇 시간도, 몇십 년도 그저 찰나의 시간일 뿐입니다. 30억년간의 모든 기억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외롭고도 괴로운 길이죠. 그녀는 어떤 기억도 잊지 못하는 자신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추억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죠. 그녀를 보고 있자면 인간의 삶의 원동력은 추억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추억'을 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지 않나요?

 

 어떤 작품, 어떤 작가의 메시지는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제게는 <추억의 에마논>이 바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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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 12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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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서두르는 것 말고도 더 많은 것이 있다." 

마하트마 간디

 


 

 

 <아즈망가 대왕>으로 유명한 아즈마 키요히코 작가의 작품. 일상물 만화의 대표격이자, 그 장르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만화입니다. 2003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아직 연재가 진행 중이며, 2014년 현재 12권까지 출간되었습니다.

 

 

 

 

 

 

 "오늘이 가장 즐거운 날"

 

1권의 캐치카피이기도 한 '오늘이 가장 즐거운 날'이라는 글귀는 요츠바라는 캐릭터를 한 마디로 표현한 문장이자, 이 만화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5살 여자아이 요츠바의 천진난만함에 책을 읽는 사람 모두 무방비하게 쓰러집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그 나이대의 상상력과 창의력, 때묻지 않은 수수함을 그대로 투영하는 요츠바는 일상에서 받아들이는 모든 일들을 그 자체로 즐길 줄 아는 아이죠.  아빠와 함께 사는 5살짜리 꼬맹이 요츠바와, 그 옆집 아줌마 아저씨와 그 집의 세 자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엮어내는 소소하면서도 떠들썩하고 마냥 즐거운 일상물입니다. 

 

 매 스토리마다 부담없이 술술 읽히며 또한 매 화마다 마냥 '재미있습니다'. 한 화 한 화 볼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지는 훈훈한 재미를 주기도 하고,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기도 합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이 서로 즐겁게 참 재미있게도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읽는 사람 또한 이 요츠바랑! 세계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포착한 특별한 매일매일

 

 일상물이라는 장르는 일견 쉽고 단순해 보일 것 같으면서도, 마냥 그렇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재미요소를 찾아내고, 큼지막한 플롯 없이 단발적인 사건, 또는 인물들의 단발적인 대화나 행동만으로 재미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꾸준히 재미를 주기가 쉽지 않은 장르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꾸준하면서도 폭발적인 재미를 계속 끌어내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안정적인 작화를 베이스로, 등장인물들의 코믹하고도 매끄러운 대화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글솜씨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들의 그러한 일상적인 대화나 행동에서 매번 소소한 재미를 찾아내고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주인공 요츠바의 캐릭터리티를 너무나 잘 만들어냈기에 이런 재미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단순한 만화 속 캐릭터를 넘어서, 전형적인 어린애다운 성격이면서도 평면적이고 단선적이지 않은 입체적 성격을 구현해 현실의 아이보다 더 현실에 있을법한 아이를 만들어 내었죠. 어린이들은 가끔 영악하고, 그리고 가끔 무지막지하게 순수해서 어디에든지 쉽게 달려들죠. 이 만화는 그런 어린이들의 특성을 무섭도록 잘 살려 보여줍니다.

 


 또한 다른 등장인물들, 특히 초등학생 여자애들인 에나와 미우라의 경우도 마치 현실에 그대로 존재할법한 성격의 캐릭터를 그대로 구현해냈습니다. 조금 예를 들어보자면, 에나는 인형을 좋아하는 등 전형적인 여자아이스럽고 얌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날생선을 손질할 때도 태연하고 두꺼비를 보고도 놀라지도 않고 귀엽다고 하는 등 의외로 겁없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죠.


 반면 미우라는 외모에서도 보이듯 남성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소녀풍의 스커트나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에나와 달리 작품 내에서 항상 바지를 입고 치마를 입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고요. 말투도 에나보다는 약간 거칠고 행동도 털털합니다. 하지만 또 의외로 겁이 많아요. 생선을 손질할 때도 에나는 맨손으로 척척 해치우는데 미우라는 숨어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두꺼비와 벌레를 봐도 놀라지도 않는 에나와 달리 미우라는 기겁해서 도망치기 일쑤죠.


 이러한 캐릭터들 성격의 입체성과 비확정성이, 일상 속에서 진행되는 여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미우라의 경우 다른 인물과 달리 요츠바를 아이 취급하지 않고 자기 또래처럼, 혹은 어른을 대하듯 대한다는 겁니다.(자기도 초등학생이면서 말이죠) 물론 요츠바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성격에서 비롯된 것일 테죠. 어린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될지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에나가 요츠바의 상상과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 요츠바의 시선에 맞추어 놀아준다면, 미우라는 그런 것들을 부정하고 요츠바에게 조금 더 진지하게 답하고, 요츠바의 눈높이에 맞춰주지 않고 세상을 설명하죠.(그래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일 뿐, 요츠바를 좋아하고 같이 잘 놀아줍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요츠바를 마냥 귀여워하고요. 옆집의 세 자매 중 큰언니인 아사기는 가끔 짓궂습니다. 요츠바와 항상 놀아주면서 은근히 자주 놀려먹기도 하죠.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상 속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이처럼 각 인물은 하나의 상황에서도 다양한 행동을 하며 각기 다른 말을 하고, 다각도의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보죠. 이런 점이 그 상황 자체를 흥미롭게 구성하고, 더 나아가 만화 자체를 흥미롭게 하는 셈입니다. 

 

  

  다른 장르보다 특히, 일상물을 전개해갈 떄는 작중 인물의 캐릭터리티를 얼마나 완성도있게 구성하느냐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이 작품 <요츠바랑!>에서는, 특출난 캐릭터성이 만화를 먹여살리죠. 주인공 요츠바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까지 각 인물마다 외적,성격적 매력이 뚜렷해, 요츠바와 이것저것 얽히는 다른 등장인물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요츠바를 중심으로 엮이는 여러 인물들이 일상 속에서 투닥투닥 재밌게 노는 모습에서 절로 연신 웃음을 짓게 됩니다. 

 

 처음에 캐릭터를 충분히 구상하고 완성시켜놓으면 이야기는 캐릭터에 의해 저절로 굴러간다고 창작자들은 가끔 말하고는 하는데, 이 만화가 딱 그렇습니다. 훌륭하게 짜여진 매력적 캐릭터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작가가 쓴 이야기라기보다, 생동하는 작품 속 인물들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가진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작품을 저절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만화인 셈입니다.

 


할로윈이라고 요츠바에게 과자를 주는 세 자매(아사기, 후카, 에나)의 엄마.


 

아빠 친구한테 물총쏘기

 

 

 작화 부분에 있어서, 인물을 그리는 솜씨 또한 뛰어납니다. 만화라는 형식에 준하는 데포르메된 그림이지만, 인체비례를 충실히 적용한 둥글둥글한 그림에는 인물그림으로서의 위화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죠. 그리고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인물 각각의 표정변화를 생생하게도 그려냅니다. 아니... 반대로 생각해보면, 작가의 인물들 표정 묘사를 통해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이 형성되고 구별되고 각인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표정으로 인물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인물 작화에 있어서, 세밀하지는 않지만 매우 안정적인 그림을 뽐냅니다. 둥글둥글한 선을 사용하면서도 인물들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어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대단합니다. 일상물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적합한 그림체를 구사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 작품이 특히나 재미있고 인상적인 것은, 누구나 어렸을 때 한번쯤 해봤을 법한 의미없는 행동들을 그대로 그려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멀쩡한 길 놔두고 화단으로 걷기.

 

앞사람 그림자만 밟고 가기

 

 

 

웃옷에 바지 넣기

 

 

 

횡단보도 건널 때 흰 금만 밟고 가기.

 

 위의 그림들처럼, 작가는 어릴 적에 무심코 하고 놀았던 이런 놀이들을 그대로 표현해 참으로 자연스럽게도 옮겨 놓습니다. 애들은 길을 가면서도 세상의 모든 것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알아서 즐겁게 놀잖아요. 어린아이에 대한 작가의 이토록 세심한 관찰력에 전 감탄했습니다.

 작가는 우리 모두의 유년기 그 자체를 쑥 꺼내 우리 눈앞에 내놓습니다. 우리가 기억 못할수도 있는 어릴 적의 그 단상을 그대로요. 때문에 이 작품은 볼때마다 새롭고 너무나 즐겁습니다. 

 


 

 

 

 

 배경 : 그 어떤 만화보다도 

 

 지금까지 읽었던 만화 중에서 '배경이 가장 잘 그려진 만화' 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단연 이 작품을 꼽을 겁니다. 

 

 만화에서의 배경이란 가끔 중요하지 않은 것, 혹은 없어도 되는 것으로까지 치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츠바랑!>을 진정한 '만화'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 요소는 바로 만화의 배경입니다. 이제까지 읽었던 모든 만화 중, 이 작품보다 배경을 잘 표현하는 만화는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이 책을 읽는 내가 실제로 이 공간 안에 있는 것처럼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만화는 참 대단합니다. 

 

 

 

 

 만화에서 배경이 왜 필요할까요. 

 

 만화의 주인은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입니다. 보통 그 캐릭터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그리고 보통은 인간이죠. 그런 인간들의 대화와 행동과 서로간의 관계를 보면서 우리는 만화의 흐름과 내용을 알아갑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만화의 내용을 움직이는 캐릭터(혹은 인물)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캐릭터를 중요한 정보로써 받아들임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만화의 칸 안에 있는 배경을 인식하면서 보게 됩니다. 


 만화를 읽으면서 인물보다 배경을 주의깊게 보는 사람은 없겠죠. 그러나 우리는 인물에 집중하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 인물 뒤에 있는 배경을 보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인식하여 그 배경을 통해 그 만화 속의 세상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것입니다. 만화를 전개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과 같습니다. 작가가 구상한, 현실과 매우 닮아있지만 현실과는 별개의 세계를 말이죠. 이러한 '세계의 구축'에서 만화의 배경은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만화라는 매체에서 배경이라는 요소는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배경이 없다면 작가가 생각한 만화 속에 세상을 독자에게 전달하기란 매우 어렵겠죠.

 

 우리는 만화를 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그 만화 세계 속의 풍경, 환경, 시대.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세계의 분위기와 사상까지. 요츠바랑! 은 그 세계를 실제로 정밀하게 구축했으며, 특히 배경을 통해 우리에게 강력하고 생생한 느낌을 줍니다. 세세한 배경을 통해 우리에게 그 세계의 모든 분위기를 설명하고, 시각만으로 독자에게 하여금 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죠. 

 

 좋은 만화란, 읽으면서 그 이야기 속에 몰입되어 '실제로 그 곳에 있는 느낌' 이 들게끔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만화는 정말 좋은 만화라고 느꼈습니다. 서술했던 '배경의 힘' 덕분에 우리는 만화에서 더욱 현실감을 느끼게 되고, 만화의 세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에게 실재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가인 아즈마 키요히코는 배경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만화내에서 잘 활용할수 있을지, 그리고 적용할 때에도 구도나 상황에 따라 많은 고심을 하고 배경을 그립니다. 배경과 풍경에 대한 작가의 고심과 정성이 느껴지는 만화라는 느낌이 들죠. 만화를 유심히 보면 만화 컷의 흐름과 컷의 앵글이 독자에게 편하게 맞추어져 있고, 만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최고의 효과를 줄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만화 전반의 정밀한 배경 뿐 아니라, 상황에 맞게 가끔 등장하는 롱샷(주로 풍경)들은 만화라는 매체에서 보여낼 수 있는 것 이상의 감동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넓게 펼쳐지는 풍경 컷.

 


 

 배경이란 것은 단순히 마을의 모습. 길가의 나무들과 우리가 보는 경치.. 이런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각종 소품들을 통해 인물의 생각과 성격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요츠바의 집에 있는 각종 어린이용품들, 장난감들, 가전용품들... 등등 모든 배경들을 통해 만화 속의 세계가 점점 구체적으로, 현실과 맞닿는 쪽으로 설정되는 것입니다. 



아빠와 함께 낮잠

 

 할로윈 때 받은 과자

 

 

 이런 자잘한 소품들이 인물들의 삶의 모습과 일상생활, 그리고 성격과 행동방향까지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죠.  이 작품에서의 배경이란 단순한 환경이나 주변 풍경이 아닌, 인물과 삶을 파악하고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소품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권수가 늘어갈수록 배경이 점점 정교해져요. 1권과 12권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배경의 정밀도가 다르죠.

 

 참고로, 이 작품에서 배경을 그릴 때는 실제로 있는 풍경의 사진이나 그림을 이용해 그것을 참고하여 펜으로 일일이 그리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풍경사진을 깔아놓고 트레이싱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츠바랑!>은 만화에서 오로지 흑백의 펜선만으로 배경을 그려내는데, 그러한 펜으로 그려진 세세한 배경은 만화의 캐릭터와 동떨어지지 않은 세계를 구축합니다.

 



핫케이크를 굽고 아빠에게 칭찬받는 요츠바

 

 

 

 이 작품은 참으로 순수하고 투명합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보다는 성인들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른처럼 굳이 순수를 동경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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