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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 12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에는 서두르는 것 말고도 더 많은 것이 있다."
- 마하트마 간디
<아즈망가 대왕>으로 유명한 아즈마 키요히코 작가의 작품. 일상물 만화의 대표격이자, 그 장르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만화입니다. 2003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아직 연재가 진행 중이며, 2014년 현재 12권까지 출간되었습니다.
"오늘이 가장 즐거운 날"
1권의 캐치카피이기도 한 '오늘이 가장 즐거운 날'이라는 글귀는 요츠바라는 캐릭터를 한 마디로 표현한 문장이자, 이 만화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5살 여자아이 요츠바의 천진난만함에 책을 읽는 사람 모두 무방비하게 쓰러집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그 나이대의 상상력과 창의력, 때묻지 않은 수수함을 그대로 투영하는 요츠바는 일상에서 받아들이는 모든 일들을 그 자체로 즐길 줄 아는 아이죠. 아빠와 함께 사는 5살짜리 꼬맹이 요츠바와, 그 옆집 아줌마 아저씨와 그 집의 세 자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엮어내는 소소하면서도 떠들썩하고 마냥 즐거운 일상물입니다.
매 스토리마다 부담없이 술술 읽히며 또한 매 화마다 마냥 '재미있습니다'. 한 화 한 화 볼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지는 훈훈한 재미를 주기도 하고,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기도 합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이 서로 즐겁게 참 재미있게도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읽는 사람 또한 이 요츠바랑! 세계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포착한 특별한 매일매일
일상물이라는 장르는 일견 쉽고 단순해 보일 것 같으면서도, 마냥 그렇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재미요소를 찾아내고, 큼지막한 플롯 없이 단발적인 사건, 또는 인물들의 단발적인 대화나 행동만으로 재미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꾸준히 재미를 주기가 쉽지 않은 장르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꾸준하면서도 폭발적인 재미를 계속 끌어내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안정적인 작화를 베이스로, 등장인물들의 코믹하고도 매끄러운 대화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글솜씨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들의 그러한 일상적인 대화나 행동에서 매번 소소한 재미를 찾아내고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주인공 요츠바의 캐릭터리티를 너무나 잘 만들어냈기에 이런 재미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단순한 만화 속 캐릭터를 넘어서, 전형적인 어린애다운 성격이면서도 평면적이고 단선적이지 않은 입체적 성격을 구현해 현실의 아이보다 더 현실에 있을법한 아이를 만들어 내었죠. 어린이들은 가끔 영악하고, 그리고 가끔 무지막지하게 순수해서 어디에든지 쉽게 달려들죠. 이 만화는 그런 어린이들의 특성을 무섭도록 잘 살려 보여줍니다.
또한 다른 등장인물들, 특히 초등학생 여자애들인 에나와 미우라의 경우도 마치 현실에 그대로 존재할법한 성격의 캐릭터를 그대로 구현해냈습니다. 조금 예를 들어보자면, 에나는 인형을 좋아하는 등 전형적인 여자아이스럽고 얌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날생선을 손질할 때도 태연하고 두꺼비를 보고도 놀라지도 않고 귀엽다고 하는 등 의외로 겁없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죠.
반면 미우라는 외모에서도 보이듯 남성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소녀풍의 스커트나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에나와 달리 작품 내에서 항상 바지를 입고 치마를 입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고요. 말투도 에나보다는 약간 거칠고 행동도 털털합니다. 하지만 또 의외로 겁이 많아요. 생선을 손질할 때도 에나는 맨손으로 척척 해치우는데 미우라는 숨어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두꺼비와 벌레를 봐도 놀라지도 않는 에나와 달리 미우라는 기겁해서 도망치기 일쑤죠.
이러한 캐릭터들 성격의 입체성과 비확정성이, 일상 속에서 진행되는 여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미우라의 경우 다른 인물과 달리 요츠바를 아이 취급하지 않고 자기 또래처럼, 혹은 어른을 대하듯 대한다는 겁니다.(자기도 초등학생이면서 말이죠) 물론 요츠바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성격에서 비롯된 것일 테죠. 어린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될지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에나가 요츠바의 상상과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 요츠바의 시선에 맞추어 놀아준다면, 미우라는 그런 것들을 부정하고 요츠바에게 조금 더 진지하게 답하고, 요츠바의 눈높이에 맞춰주지 않고 세상을 설명하죠.(그래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일 뿐, 요츠바를 좋아하고 같이 잘 놀아줍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요츠바를 마냥 귀여워하고요. 옆집의 세 자매 중 큰언니인 아사기는 가끔 짓궂습니다. 요츠바와 항상 놀아주면서 은근히 자주 놀려먹기도 하죠.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상 속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이처럼 각 인물은 하나의 상황에서도 다양한 행동을 하며 각기 다른 말을 하고, 다각도의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보죠. 이런 점이 그 상황 자체를 흥미롭게 구성하고, 더 나아가 만화 자체를 흥미롭게 하는 셈입니다.
다른 장르보다 특히, 일상물을 전개해갈 떄는 작중 인물의 캐릭터리티를 얼마나 완성도있게 구성하느냐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이 작품 <요츠바랑!>에서는, 특출난 캐릭터성이 만화를 먹여살리죠. 주인공 요츠바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까지 각 인물마다 외적,성격적 매력이 뚜렷해, 요츠바와 이것저것 얽히는 다른 등장인물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요츠바를 중심으로 엮이는 여러 인물들이 일상 속에서 투닥투닥 재밌게 노는 모습에서 절로 연신 웃음을 짓게 됩니다.
처음에 캐릭터를 충분히 구상하고 완성시켜놓으면 이야기는 캐릭터에 의해 저절로 굴러간다고 창작자들은 가끔 말하고는 하는데, 이 만화가 딱 그렇습니다. 훌륭하게 짜여진 매력적 캐릭터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작가가 쓴 이야기라기보다, 생동하는 작품 속 인물들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가진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작품을 저절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만화인 셈입니다.

할로윈이라고 요츠바에게 과자를 주는 세 자매(아사기, 후카, 에나)의 엄마.

아빠 친구한테 물총쏘기
작화 부분에 있어서, 인물을 그리는 솜씨 또한 뛰어납니다. 만화라는 형식에 준하는 데포르메된 그림이지만, 인체비례를 충실히 적용한 둥글둥글한 그림에는 인물그림으로서의 위화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죠. 그리고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인물 각각의 표정변화를 생생하게도 그려냅니다. 아니... 반대로 생각해보면, 작가의 인물들 표정 묘사를 통해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이 형성되고 구별되고 각인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표정으로 인물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인물 작화에 있어서, 세밀하지는 않지만 매우 안정적인 그림을 뽐냅니다. 둥글둥글한 선을 사용하면서도 인물들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어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대단합니다. 일상물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적합한 그림체를 구사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 작품이 특히나 재미있고 인상적인 것은, 누구나 어렸을 때 한번쯤 해봤을 법한 의미없는 행동들을 그대로 그려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멀쩡한 길 놔두고 화단으로 걷기.

앞사람 그림자만 밟고 가기

웃옷에 바지 넣기

횡단보도 건널 때 흰 금만 밟고 가기.
위의 그림들처럼, 작가는 어릴 적에 무심코 하고 놀았던 이런 놀이들을 그대로 표현해 참으로 자연스럽게도 옮겨 놓습니다. 애들은 길을 가면서도 세상의 모든 것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알아서 즐겁게 놀잖아요. 어린아이에 대한 작가의 이토록 세심한 관찰력에 전 감탄했습니다.
작가는 우리 모두의 유년기 그 자체를 쑥 꺼내 우리 눈앞에 내놓습니다. 우리가 기억 못할수도 있는 어릴 적의 그 단상을 그대로요. 때문에 이 작품은 볼때마다 새롭고 너무나 즐겁습니다.
배경 : 그 어떤 만화보다도
지금까지 읽었던 만화 중에서 '배경이 가장 잘 그려진 만화' 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단연 이 작품을 꼽을 겁니다.
만화에서의 배경이란 가끔 중요하지 않은 것, 혹은 없어도 되는 것으로까지 치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츠바랑!>을 진정한 '만화'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 요소는 바로 만화의 배경입니다. 이제까지 읽었던 모든 만화 중, 이 작품보다 배경을 잘 표현하는 만화는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이 책을 읽는 내가 실제로 이 공간 안에 있는 것처럼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만화는 참 대단합니다.
만화에서 배경이 왜 필요할까요.
만화의 주인은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입니다. 보통 그 캐릭터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그리고 보통은 인간이죠. 그런 인간들의 대화와 행동과 서로간의 관계를 보면서 우리는 만화의 흐름과 내용을 알아갑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만화의 내용을 움직이는 캐릭터(혹은 인물)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캐릭터를 중요한 정보로써 받아들임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만화의 칸 안에 있는 배경을 인식하면서 보게 됩니다.
만화를 읽으면서 인물보다 배경을 주의깊게 보는 사람은 없겠죠. 그러나 우리는 인물에 집중하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 인물 뒤에 있는 배경을 보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인식하여 그 배경을 통해 그 만화 속의 세상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것입니다. 만화를 전개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과 같습니다. 작가가 구상한, 현실과 매우 닮아있지만 현실과는 별개의 세계를 말이죠. 이러한 '세계의 구축'에서 만화의 배경은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만화라는 매체에서 배경이라는 요소는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배경이 없다면 작가가 생각한 만화 속에 세상을 독자에게 전달하기란 매우 어렵겠죠.
우리는 만화를 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그 만화 세계 속의 풍경, 환경, 시대.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세계의 분위기와 사상까지. 요츠바랑! 은 그 세계를 실제로 정밀하게 구축했으며, 특히 배경을 통해 우리에게 강력하고 생생한 느낌을 줍니다. 세세한 배경을 통해 우리에게 그 세계의 모든 분위기를 설명하고, 시각만으로 독자에게 하여금 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죠.
좋은 만화란, 읽으면서 그 이야기 속에 몰입되어 '실제로 그 곳에 있는 느낌' 이 들게끔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만화는 정말 좋은 만화라고 느꼈습니다. 서술했던 '배경의 힘' 덕분에 우리는 만화에서 더욱 현실감을 느끼게 되고, 만화의 세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에게 실재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가인 아즈마 키요히코는 배경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만화내에서 잘 활용할수 있을지, 그리고 적용할 때에도 구도나 상황에 따라 많은 고심을 하고 배경을 그립니다. 배경과 풍경에 대한 작가의 고심과 정성이 느껴지는 만화라는 느낌이 들죠. 만화를 유심히 보면 만화 컷의 흐름과 컷의 앵글이 독자에게 편하게 맞추어져 있고, 만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최고의 효과를 줄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만화 전반의 정밀한 배경 뿐 아니라, 상황에 맞게 가끔 등장하는 롱샷(주로 풍경)들은 만화라는 매체에서 보여낼 수 있는 것 이상의 감동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넓게 펼쳐지는 풍경 컷.
배경이란 것은 단순히 마을의 모습. 길가의 나무들과 우리가 보는 경치.. 이런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각종 소품들을 통해 인물의 생각과 성격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요츠바의 집에 있는 각종 어린이용품들, 장난감들, 가전용품들... 등등 모든 배경들을 통해 만화 속의 세계가 점점 구체적으로, 현실과 맞닿는 쪽으로 설정되는 것입니다.

아빠와 함께 낮잠

할로윈 때 받은 과자
이런 자잘한 소품들이 인물들의 삶의 모습과 일상생활, 그리고 성격과 행동방향까지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죠. 이 작품에서의 배경이란 단순한 환경이나 주변 풍경이 아닌, 인물과 삶을 파악하고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소품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권수가 늘어갈수록 배경이 점점 정교해져요. 1권과 12권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배경의 정밀도가 다르죠.
참고로, 이 작품에서 배경을 그릴 때는 실제로 있는 풍경의 사진이나 그림을 이용해 그것을 참고하여 펜으로 일일이 그리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풍경사진을 깔아놓고 트레이싱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츠바랑!>은 만화에서 오로지 흑백의 펜선만으로 배경을 그려내는데, 그러한 펜으로 그려진 세세한 배경은 만화의 캐릭터와 동떨어지지 않은 세계를 구축합니다.

핫케이크를 굽고 아빠에게 칭찬받는 요츠바
이 작품은 참으로 순수하고 투명합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보다는 성인들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른처럼 굳이 순수를 동경할 필요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