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 타케이테아시 만화전집
히로아키 사무라 지음, 김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출중한 시대극 만화였던 <무한의 주인>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일본의 만화가, 사무라 히로아키. 


이번에 읽은 만화책 <이사>는 사무라 히로아키의 한 권짜리 만화입니다. 


장편 시대극이었던 <무한의 주인>과는 여러모로 색다른 느낌을 주는 만화입니다. 일단 사극이 아니라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를 다룬다는 점이 그렇고, 긴 플롯이 아닌 짧게짧게 끊어지는 소소한 일상적 스토리들을 담고 있다는 것 또한 차이점이죠. 그래서 <무한의 주인>으로만 사무라 히로아키의 작품을 접하셨던 분들은 이 만화에서 그의 색다른 느낌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을지도요.







사실 사무라 히로아키는 <무한의 주인>을 오래 연재하면서 중간중간, 혹은 연재가 끝난 이후 이사, 시스터 제너레이터, 브래드할리의 마차, 할시온 런치 등의 단편집을 꾸준히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단행본 2권을 넘지 않는 단편을 모든 것들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며, 시대는 대부분 현대를 배경으로 하죠. 일상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유일한 장편인 <무한의 주인>이 사무라 히로아키 작품 중에서 이질적인 작품일 수도 있겠네요. 




사무라는 상기에 서술한 많은 단편들에서 현대의 생활상을 배경으로 독특한 유머코드와 세련되고 참신한 스토리텔링, 연출을 구사해냅니다. 본인이 재미있게 즐기며 그린다는 느낌을 보여주는 책들. 


무협지에 가까운 사극 <무한의 주인>에서 보여준 시대극적인 진지한 재미와는 또 다르게, 그것보다 조금 더 가볍고 해학적이며 조금 더 풍자적입니다. 시대극에서 맘껏 못 펼쳤던 온갖 드립이 난무하죠.






오늘 얘기하는 <이사>의 경우는 특히 그렇습니다.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종의 단편집. 3개의 이야기라고 해도 1편이 분량의 3/4를 차지하고, 마지막 편은 작가의 자전적 일화를 그린 1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만화라서 이걸 단편이라고 하기엔 좀 미묘하지만.


첫번째 단편의 제목이자 이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사'는 일종의 러브코미디? 라고 할 수 있는 단편. 작가 특유의 자조적, 풍자적 개그가 부분부분 빛나기는 하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건 개그가 아닌 스토리 그 자체. 전체적으로 코믹하고도 진지한 분위기가 흐르는데, 종종 터져나오는 가벼운 개그도 작품 전반적인 진중함을 흩뜨리지는 않으며 유려한 전개와 마무리를 보입니다. 보편적 감성으로 어렵지 않은 접근과 공감을 이끌어내죠. 다만 감성 자체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고 있으나 작가의 연출과 감성이 상당히 독특한 면이 있는데...



다른 두 개의 단편은 러브코미디는 아닙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짧고 굵직하고 어떻게 보면 가볍기도 한 이야기. 여튼 작가의 정신세계와 그 재치를 한껏 보여주는 단편이 바로 이 두번째 단편입니다. 한 여류 만화가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역로를 토대로 한, 눈물의 일기를 보여주는 이 시나리오에서는 대사 자체에서도 그 유별난 센스가 묻어나곤 합니다. 




화풍에 대해 말하자면, 사무라 히로아키 특유의 그림체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소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연필로 그린 듯한 느낌을 주는 거친 느낌이죠. 펜의 느낌 자체가 상당히 거칠고 선을 여러 번 겹쳐긋는 화풍이라서 다소 뻑뻑한 느낌. 인생극장스러운 그림체라고 할까요?

뭐 개인적으로 이 건조하고 투박한 느낌이 싫지만은 않습니다만. (오히려 거친 붓으로 휙 스친 것 같은 이 건조함을 좋아합니다)


아, 이 책 <이사>도 그렇고, 사무라 히로아키의 단편들에서 보이는 작은 단점이 있는데, 바로 가독성. 특히 이 책 <이사>에서는 대사를 조그맣게 여기저기 배치해놔서 몰입이 잘 안 되기도 합니다. 작품 전체적으로 대사가 약간 난잡하고 번잡스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뻣뻣하고 깔끔하지 않은 그림 때문에 더 지저분해 보이는 감도 있고요.



여튼 작가는 특유의 센스를 버무린 활기차고도 남루한 일상물을 꿋꿋이 전개해나갑니다. 보면 괜시리 웃음이 나기도 하고. 작가의 사회에 대한 약간 비뚤어진 시선과 시종일관 유쾌한 애드립, 특출난 풍자와 해학, 그리고 약간 정신나간 센스를 만끽할 수 있는 만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