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니코 워커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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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약, 전쟁, 자전적 소설.

서로 사랑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라는 소개글을 읽었다.

대체 어떤 인생들이길래-라는 생각이 들어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은 루소 형제 감독의 영화 <체리>의 원작 소설로,

제목인 '체리'는 미국에서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소설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여자친구 에밀리의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서 시작한다.

하루의 시작을 마약투여로 시작하는 두 사람.

매우 자연스럽게 '한 대 맞고' 학교에 등교하는 에밀리와

'은행 털기'를 어렵지 않게 하는 주인공.

그들의 인생은 밑바닥이었다.

그리고 밑바닥 인생을 사는 그들의 만남은

마약이 더해졌을 뿐 지극히 평범했다.

'여러분은 가장 사랑한 사람을 만난 순간이 언제인지,

그때 정확히 어땠는지 기억할 수 있는가?

어디에 있었고 그녀가 어떤 옷을 입었고 점심 메뉴가 뭐였는지 따위가 아니라

상대의 어떤 면을 보고 '그래,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는지 말이다.'

-p. 54

학교에 다니고 에밀리와 연애를 하던 주인공은

어느날 학교를 중퇴하고 위생병으로 군대에 입대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수 많은 인생들을 만난다.

그들은 이라크로 파병되지만 제대로 된 전투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크고 작은 사고로 한둘씩 목숨을 잃고만다.

작가는 매우 담담하게 파병지에서의 생활을 열거해나간다.

수많은 이름이 나와서 읽고나서도 그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게.

나 뿐만이 아니라 주인공의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동료군인들의 죽음은 처참하고 허망했다.

큰 전투가 일어난건 아니지만

그들의 죽음은 조용히 주인공의 마음속에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곳에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위생병인 주인공도 할 수 있는거라곤 아세트아미노펜을 몇 알 처방해줄 뿐.

누군가를 제대로 치료해 줄 입장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돌아가서 통역사를 불러 나한테 약이 없으니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항생제를 받으라고 전하게 했다.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p. 175

전쟁터의 군인들은 점점 죽음에 무덤덤해졌다.

그들은 심지어 재미삼아 강아지를 총으로 쏴버리기도 했다.

모두가 미쳐있었고 모두가 상처받았다.

견디기 힘든 그 상황에서 자꾸만 마약을 찾았고 상처를 상처로 여기지 못했다.

아무생각 없이 입대한 그 곳에서 점점 현실을 깨달은걸까?

'그때 우리가 장난으로 거기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인생을 망치거나 폭탄에 맞아 죽거나

시간을 낭비할 목적으로 군대에 왔다고 생각했지,

그게 뭐가 됐든 실제로 전쟁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p. 179

그렇게 주인공은 1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한다.

하지만 제대를 해도 인생의 변화는 없었다.

군생활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된 주인공은

점점 더 마약에 매달리게 된다.

에밀리와 주인공은 그만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마약에서 이미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들은 평범해지고 싶지만 마약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 슬퍼하고

슬프니까 '한 대 맞게'되는 삶을 반복한다.

퇴역군인 연금으로 받은 등록금을 모두 마약 구매에 사용하게되고

그들은 점점 하루 벌어 하루 마약을 하게된다.

마약은 마약을 불러들였고 돈이 떨어진 그들은

몰래 집에서 마리화나를 키우며 은행을 털기에까지 이른다.

그들은 두려웠다.

마약을 맞지 못해 두려운것인지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게 두려운것인지

끝 모를 밑바닥 인생이 두려운것인지 알 수 없다.

'오랫동안 겁에 질려 살다 보면 두려움이 어떻게 왔다가 사라지는지 알게 된다.

두려움이 나를 어떻게 장악할지도.

.

.

나는 인생에서 오직 한 가지 빼고는 두려울 게 없었다. 바로 헤로인이었다.'

-p. 417

책을 읽는 내내 머리속에서 끝없이 영화화 된 장면을 상상했다.

루소 형제 감독이 어떤 연출을 할지

톰 홀랜드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어떤 모습일지 매우 기대가 된다.

영화로 한 번 보고 난 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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