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부터 이어진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은 1950년대를 지나며 부패와 무능, 정책 실패로 인해 불만 여론이 꽤나 많은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1958년 말, 카스트로 형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은 마에스트라 상륙 이후부터 치열한 전투 끝에 정부군을 격퇴하고 그들의 요충지인 산타클라라를 점령했다. 그리고는 얼마 뒤 아바나에 입성하고 바티스타가 쫓겨나며 피델 카스트로 정권이 세워졌다.
카스트로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개혁을 내세웠는데 실제로 1959년 5월부터 토지개혁을 위한 대량의 토지매입 및 빈농을 대상으로 한 분배가 시작된다. 이러한 급진적인 토지개혁 실시에는 체 게바라와 오스카르 피노스 같은 자들의 입김이 컸었다. 거기다가 토지개혁법은 외국인에 의한 토지 소유 및 소작을 금지하고 그들의 재산을 국유화 했었는데 당연히 쿠바 경제에 지분이 크던 미국 정부는 쿠바와의 거래 중단이라는 압박을 가했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대신에 새로운 파트너이자 미국의 적국인 소련과 연간 100만톤 가량의 설탕 및 기타 농산물 매입 및 경제 개발 지원금을 받아내기로 하는 합의를 맺으며 더욱 강경하게 나왔다. 결국 1961년 4월, 미국 CIA의 지원 아래 미국 내 쿠바인 망명자들은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피그스만 침공을 감행 했지만 오히려 전멸 당하고 말았으며 그 후 쿠바는 스스로 사회주의 국가임을 선언했다.
한편 피그스만 침공은 안 그래도 반미로 기울어가던 카스트로의 성향이 더 강경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맥락에서 쿠바는 소련과 접촉하여 미사일 기지를 쿠바에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못가 1961년 10월 14일 기지 건설은 발각되었고 당연히 여기에 분노한 미국 케네디 행정부는 NSC를 소집하고 해상봉쇄를 감행, 미군 합참의장의 주도로 군사경계태세를 데프콘3로 설정하는 한편 쿠바에 대한 무력침공 계획까지 수립되었다.
예상보다 단호한 케네디 행정부의 입장에 놀란 소련의 흐루시초프는 결국 한 발 물러섰고 이로써 소련은 10월 28일에 쿠바로부터 소련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결정하며 쿠바 미사일 사태는 종식되었다. 그런데 협상이 마무리 되기 이틀전인 10월 26일, 아직 상황을 잘 파악 못하고 있던 카스트로는 소련 대사관에서 흐루시초프에게 줄 편지를 작성하고 소련 대사에게 전달했고 이를 읽은 소련 대사는 카스트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 당신은 소련이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발사하도록 흐루시초프 동지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자 카스트로도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 그렇습니다. 만약 그들이 쿠바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지구상에서 전멸시켜버려야 합니다! "
이를 들은 소련 대사는 상당히 충격 받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전달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곧 편지는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흐루시초프에게 전달되었고 흐루시초프는 대책회의 도중 이 편지를 받고 경악한 말투로 이렇게 외쳤다.
" 이건 미친 짓이다. 카스트로는 죽기로 작정하고, 쿠바인들과 우리를 함께 무덤으로 끌고 가기를 원한다! "
10월 28일, 흐루시초프는 카스트로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는 이 답장에서 이미 미국으로부터 쿠바 불침공을 약속받았기 때문에 제발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당부했으며 흐루시초프는 구세주의 심경으로 혁명을 순교로 승화시켜려는 카스트로를 제정신이 아닌 놈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카스트로는 진지하게 저런 망상을 했는가 하면 그건 소련이 제공한 핵무기의 목적인 침략의 발생시 미국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쿠바가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겪어온 굴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쿠바는 현실적으로 미국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었다.
그래서 카스트로는 쿠바인들과 소련인들이 함께 '마지막 날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무기를 들고' 미국에 저항해야 한다는 1억 총옥쇄론과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 실제로 카스트로는 소련 대사를 불러다가 쿠바 상공을 비행하는 미 정찰기를 사격하자고 주장하거나 모스크바 측에 더 강한 군사적인 대응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흐루시초프가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한 것은 미국과의 체제 경쟁을 위한 수단 중 하나였으며 먼저 발사할 의도도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즉 방어적 무기로서 배치했다는 의미다. 그러니 흐루시초프가 카스트로의 말 같지도 않는 망상을 바로 일축시켜버린 것이라고 봐고 봐도 무방하다.
출처:
- 최정순, <쿠바혁명과 그 변천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논문, 1990, p8~12, p30~31, p37~39
- 이창위,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 궁리, 2019, p192~201
- 리처드 파이프스, <공산주의의 역사>, 을유문화사, 2001, p20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