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은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시작으로 1차세계대전이 시작된 해였다. 그러자 피우수트스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무력 뿐이다. 폴란드의 독립 문제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패배하고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에 항복할 때만 확실하게 해결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임무이다"라고 선언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말은 예언이 된다.
1차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많은 폴란드인들은 독립을 되찾기 위해 싸웠다. 특히 러시아 제국은 타도 1순위이었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내부에 폴란드인 부대 3개 여단을 만들어 러시아 제국을 향해 싸웠다. 이들 중 기병대는 1915년 6월, 우크라이나 남부 로키트나에서 러시아 제국군에게 과감히 돌격해 커다란 승리를 쟁취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활약을 눈여겨본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폴란드 부대들을 동부전선에 배치해줬다.
1916년 11월 5일, 폴란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원 아래 부분적으로나마 독립했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폴란드 국가평의회 군사 책임자 자리에 올랐고 이로써 폴란드인 부대들은 주권국가의 군대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폴란드의 독립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는 듯 했지만 독일 정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폴란드의 장래 보증은 꺼려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자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영국, 프랑스와 접촉하며 러시아하고만 싸운다고 밝힌다고 하며 독일 및 오스트리아와 슬슬 거리를 두려는 행보를 보였다. 이에 독일은 충성 서약을 거부하는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와 폴란드인 장교단을 감옥에 투옥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폴란드인들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에 대한 지지는 날이 갈 수록 높아졌고 폴란드인 장교단은 애국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연합국 측도 폴란드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독립 약속을 했다. 1914년 전투가 시작된지 2주가 지난 무렵에 러시아 당국도 승리한다면 폴란드의 독립을 허용해줄 것을 약속했으며 1917년 여름 프랑스군은 서부전선에서 싸울 폴란드인 연대를 구성하기도 했는데 이때 폴란드계 미국인들이 많이 합류했다고 한다. 1917년 차르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러시아 혁명정부도 폴란드의 독립을 약속했고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도 독립국 폴란드의 수립을 지지했다.
결국 1918년 11월, 독일이 항복하면서 갇혀있던 폴란드인 장교단은 석방되었고 폴란드는 드디어 독립할 수 있었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도 독립 영웅으로 환영을 받으며 바르샤바에 돌아왔고 며칠 뒤 국가수반 겸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이로써 폴란드는 삼국분할 이후로 처음으로 독립을 되찾았지만 그로스폴렌과 폼메른, 슐레지엔 지역 같이 독일과의 영토 분쟁이 발생하는 지역도 나타났고 남부에서는 우크라이나인들과 충돌, 동부에서는 소련과의 갈등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