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분할 이후, 한동안 폴란드의 민족운동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1963년 봉기의 실패로 적잖은 부유층 귀족들이 타격을 입으면서 민족운동 세력에는 자세를 낮추고 재기할 수 있는 상황을 모색하는 부류들이 남았다. 그러던 와중 1870년대와 1880년대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 폴란드 민족운동의 무대는 귀족의 저택에서 성장한 도시로 옮겨갔다.


이 당시 대부분의 청년 남녀들에게는 민족해방과 사회혁명 목표 사이에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민족운동 세력에 새로 유입된 청년들은 현상유지나 과거 복고를 원하는 자들과는 손을 잡지 않는 반면 애국주의에는 공감하며 사회해방의 이데올로기를 위한 처방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1795년에 파괴된 국가와 전혀 다른 독립국 폴란드를 원했다.


이런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곧 폴란드 사회당(Polska Partia Socjalistyczna, PPS)이라는 정당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사회당은 폴란드 인텔리겐치아들 사이에서 19세기식 혁명적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사상을 가졌고 당 강령은 "폴란드 노동계급의 정치조직으로서 자본주의의 멍에로부터 해방을 쟁취하려는 사회당은 무엇보다도 현재의 정치적 노예제를 타파하고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정권을 획득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 투쟁하는 사회당의 목표는 '독립 민주공화국'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목표를 밝히고 있다.


또한 사회당의 주장에 따르면 독립은 오로지 민중의 지지로만 얻을 수 있었고 사회혁명은 민족해방을 포함되어야 한다는게 핵심이었다. 이와 반대로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끄는 폴란드 왕국 사회민주당은 어떤 형태의 민족주의도 거부했다.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국제적 사회주의 혁명 뿐이며 러시아 사회당 및 독일 사회민주당과도 긴밀하게 연대를 유지하며 자본주의의 연결고리를 공동으로 끊어내고 모든 인민의 삶을 해방시키려는 이상주의 희망을 실어갔다. 당연히 민족주의적인 사회당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편으론 사회당 및 폴란드 왕국 사회민주당과는 차별화되는 또 다른 사회주의 세력으로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범 유대인 노동자 동맹(Bund)가 있었다. 원래 사회당은 창당 직후부터 내부제으로 유대인 분과를 두고 있었는데 사회당 측은 유대계 노동자들이 폴란드어를 사용하는게 타당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는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못했고 1897년에 가서는 사회당으로부터 벗어난 독자적인 조직이 된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