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인들은 캅카스 지역의 민족인 나흐족의 일파 중 하나인 부족이다. 이들은 예전에 노흐치라고 불렸는데 13세기에 캅카스 지역에 침입해온 몽골계 킵차크 한국에 저항을 했지만 결국에는 많은 피해를 입고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이 시기에 노흐치들의 저항은 훗날 체첸인들의 저항적인 민족성이 형성되는 것의 기원이 될 만큼 중요한 것이다.
한편 16~17세기 이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이슬람권의 맹주로서 영토를 넓히면서 캅카스 지역도 오스만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는데 이때부터 노흐치들도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한편 러시아는 예카테리나 2세 집권기 동안인 1772년에 오스만과의 전쟁을 통해 캅카스 지역으로 본격적으로 남하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캅카스 지역에 요새를 짓고 병참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러시아와 노흐치의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 모스크바 공국 시절이던 이반 4세 시기에도 러시아는 그로즈니에 요새를 건설하고 코사크인 부대를 배치시켰지만 코사크인들은 러시아 남부 주민들인지라 노흐치와 크게 이질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병참선 구축은 노흐치들에게 충분히 러시아가 침략적인 의도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바로 그때 셰이흐 만수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울 지역의 지도자였던 셰이흐 만수르는 이슬람교 신자로서 "침입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지하드를 수행하기 전에 이슬람 율법을 준수하자"는 메세지를 전파하며 마을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걸 몰랐는지 1785년 러시아군은 피에리 대령이 이끄는 부대를 마을로 진입시켰는데 만수르는 대충 예상을 하고 이미 주민들을 마을 밖으로 대피시킨 후였다.
텅 마을에 진입한 러시아군은 마을을 약탈한 후 후퇴했는데 이로써 만수르는 러시아 제국의 의도를 확실하게 파악했다. 그래서 곧 바로 지하드를 선언하고 퇴각 중인 러시아군을 순자강 인근에서 기습하여 몇백명이 넘는 병사들을 사살했는데 이 전투는 체첸과 러시아의 대립이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으며 이때부터 체첸이라는 말이 러시아에서 쓰이기 시작한다.
1813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러시아는 다시 캅카스 지역에서 더 남진해 아제르바이잔까지 장악했다. 그리고는 1816년에 예르몰로프 장군을 캅카스 지역에 파견해 안정화 시킬려고 했다. 그는 블라디카프카즈를 거점으로 순자강을 따라서 새로운 요새선을 구축하여 그로즈니 지역의 방어태세를 보강하였는데 그 과정에 체첸 주민들을 쫓아내는 행태를 벌였다.
당연히 체첸인들은 1820년대부터 다시 러시아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예르몰로프 장군은 강압적인 진압 조치로 맞대응했다. 결국 체첸 저항세력은 산악지대로 밀려나게 되었고 러시아군은 공포감을 조성하려고 했다. 하지만 저런 대응은 너무 당연하게도 오히려 억압받는 체첸인을 비롯한 캅카스 주민들의 단결력만 키워줬고 니콜라이 1세의 캅카스 지역에 대한 통치방식은 더욱 더 강경해졌다.
이때 러시아군은 기습과 매복을 사전에 방지한답시고 마을들을 초토화 시키며 토벌전에 나서게 되었지만 주민들은 여기에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맘 샤밀이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예전 셰이흐 만수르의 저항이 실패했던 것을 반면교사 삼아 전면적인 전투보단 소모전과 게릴라전 위주로 러시아군을 지치게 하는 전략으로 맞섰는데 이는 무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1859년 샤밀은 러시아군에게 붙잡히고 유배 당하면서 이 저항도 실패했다.
1850년에는 쿤타 하지라는 인물이 수피즘을 전파하고 다녔는데 여기에 많은 주민들이 동조했다. 그러자 러시아 제국 정부는 이들이 셰이흐 만수르나 이맘 샤밀처럼 무장투쟁을 조장할 것을 우려했는지 곧 바로 그를 구금시켜버렸다. 이에 하지의 추종자 약 3천명은 항의하는 집회를 가졌는데 그 과정에 러시아군은 그들이 단도를 착용한 것을 공격으로 간주해 총기를 발포했다. 이로인해 쿤타 하지의 추종자 그룹은 사실상 와해 되었고 그들의 토지는 러시아 제국 정부에 의해 몰수 당했다.
그 후로도 체첸인들은 비록 독립이라는 꿈이 좌절되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이어가면서 산악지대에서 반(反) 러시아 무장투쟁을 지속해갔다. 이에 러시아 제국 정부는 가장 저항이 끈질기던 소수민족인인 체첸을 제대로 손 봐주기 위해 강제 이주를 비롯한 민족말살 정책을 펼쳤다.
출처:
- 이종원, <탈러 분리 독립의 선봉 체첸공화국>, 2016, p11~13
- 잔갑기, <제1차 체첸전쟁에서 작전술 요소가 국면별 승패에 미친 영향 연구>, 건양대 일반대학원 군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p11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