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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평점 :

김근우라는 작가는 처음 들어봤다. 사람들이 이 저자의 전작 <바람의 마도사>,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가 재미있다고 하여 이 책도 읽어볼 용기가 생겼던 거다. 재미있겠나 하며 기대를 안 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라? 이 소설 은근히 중독성 있었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이 곳은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야기는 시종일관 헛소리마냥 구구절절 흘러간다.
야구를 하다가 재능이 없음을 실감하고 바로 포기한 후 지방의 삼류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주인공. 거기서 운명의 지도자(?) 강교수를 만나게 된다. 주인공보다 더 헛소리를 잘 지껄이는 이 교수는 이사장 마누라 아들이라는 명목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는듯 보이지만 이 교수가 또 은근 인간 존재의 문제에 대해 툭툭 던지는 말이 가관이다.
강교수의 조카 강혜진. 주인공이 살면서 처음으로 만난 여자친구이다. 어느 날 이유도 없이 차버린 그 여자. 심한 골초에다가 자꾸 책을 읽으라고 강요를 해서 그랬던가?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지자고 한 이후 "넌 언젠가 떠날 사람인 것 같아."라며 앞날을 예언했던 그 여자가 계속 생각은 났더랬다.
어니스트 섀클턴 박사. 남극을 탐험한 유명한 탐험가와 이름이 같지만 남극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천재 맹인이다. 시각장애인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는 1950년대 영국 사회에서 각종 서러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서 경제학 박사가 되었다.
섀클턴 박사의 성장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이다. 너무나 드라마틱한 박사와 너무나 드라마틱하지 않은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남극을 탐험하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죽은 섀클턴 탐험가의 목소리에 이끌려 한국에 오게 된 박사는 첫눈에 함께 탐험할 주인공을 알아보았다.
박사와 주인공의 남극 탐험은 너무나 험난했지만 또 그만큼 그들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지금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 두 인물의 남극 탐험은 그냥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던 것이다.
이길 수 있다면 싸울 필요도 없지만 이길 수 없다면 꼭 싸워야 한다고. 이 망할 놈의 세상은 너무나 살기 힘든데 또 행복한건 어쩌라는 거냐고. 역설적인 대사들로 뭔가 가슴 뭉클하게 만든 주인공과 박사의 인생은 내게 지금 여기, 내가 있을 곳이 맞는가, 또한 이길 수 없다고 포기한 건 아닌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