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호 박사의 뇌과학 공부 - 감각, 지각, 기억, 꿈, 그리고 자아와 세계에 관하여
박문호 지음 / 김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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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전문가임이 분명하고 이 책에 방대한 데이터가 들어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책 자체는 건조하고 불친절하다. 마치 백과사전에서 뇌 파트만 따로 떼어 놓은 듯한 것이 이 책이다. 혹은 마치 의대생들이 보는 해부학 서적 같은 느낌을 준다. 유럽을 여행하며 만난 가이드가 "여기는 콜로세움입니다, 저기는 개선문입니다."라고 말할 뿐 콜로세움이 어떤 곳이었고 개선문이 왜 중요한지는 전혀 이야기 해주지 않는 것과 같다. 


10개의 "핵심 프레임"만 외우면 뇌과학의 정수를 알 수 있다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 붙어있지만, 장담하건데 일반인이 이 책만 읽고 10개의 핵심 프레임을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장 강의에서 참여자들이 10개의 핵심 프레임을 암기해서 그려냈다는 점을 대단하게 자랑하고 있지만... 글세? 몇 달 동안 그림 몇개를 암기해서 그렸다고 그것이 얼마나 실제적인 지식으로 이어졌을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혹은 현장 강의를 활자로 옮기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저자는 모든 학문은 언어학이며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 뇌과학을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 책이 과연 이런 약속대로 쓰였는지는 의문이다. 초반부터 쏟아지는 개념들은 그 양만으로도 길을 잃게 만들게 충분한데 더 큰 문제는 그 개념들의 상당수가 책 중후반에 가서야 다시 등장하기 때문에 당장 쓸데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외국어를 포함한 언어 자체를 이런 식으로 배우지 않는다. 당장 사용하지 않는 어휘는 금방 기억에서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언어학의 접근법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책 자체는 "영어 사전" 같은 책이다. 과연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영어 사전을 처음부터 읽어내려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이 존재한들, 과연 그것이 효율적인 외국어 학습법일까?


물론 어떤 학문의 분야는 건조하게 암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솔직한 접근을 택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흥미와 지식 전달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좀 더 능란하게 접근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상 이미 뇌과학 분야에는 이처럼 두 가지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책들이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정보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는 양서임이 분명하지만, (비전문가의) 뇌과학 공부라는 측면에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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