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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없는 나라
양 얼처 나무.크리스틴 매튜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 드라마 본즈를 보다가 모쒀족에 대한 언급이 잠시 나와서 생각 난 김에 읽은지는 꽤 지났지만 리뷰를 써 본다.
모쒀족은 인류학상 여러의미로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모계사회의 살아있는 표본이랄까.
오늘날 인터넷상에서 발에 채이도록 찾아 볼 수 있는 남녀 평등의 논란들. 남자는 군대를 가네 여자는 아이를 낳네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논리들인데 왜들 그리 치고 박고 싸우는지.
솔직히 이 책의 제목이 그런 논란과열에 부을 기름이 될 만한 여지가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다.
모쒀족은 아버지가 없다=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한다=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그러므로 우리도 이 제도를 도입하여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 가정적 지위를 높여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내 개인적인 감상은 "헐.." 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는 초반부터 그러한 가정을 짊어지는 부담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무의 어머니는 외할머니로부터의 모계존속을 거부하고,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말하자면 분가랄까) 자신만의 가정을 꾸린다. 그런 '분가'는 모쒀족 사이에서 아주 획기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무도 모계존속을 거부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고향을 떠난다.(내용은 고향 얘기가 반, 고향을 떠나 가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반 정도이다.)
아버지가 없다는 말은 조금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모쒀족에게는 아버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가장은 어머니이므로, 아이들이 10명이 되어도 10명의 아버지가 모두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있어서 그들은 아버지라는 개념이기 보다는 어머니의 "남자들"이다. 이 책의 서술방식도 그러하다. 어머니가 사랑한 아름다운 남자가 어쩌고...해서 언니가 태어났네 자기가 태어났네. 말하자면 이 사회에서의 가족의 개념은 '어머니와 형제들' 정도 되겠다.
모쒀족 여성은 성인식을 거치면서 남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다. 모쒀족의 어머니들도 그런 방을 가졌으며, 거기서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 더 이상 남성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문 밖에 남자의 짐을 걸어 놓음으로써 나타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대목이 제일 가슴이 찡했다.
모계사회에서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집안의 가장이고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한다. 아버지가 모두 다른 아이들을. 그래서 누군가 한 아이의 아버지를 계속해서 머물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생태학적으로, 남성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의 자손들은 배제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여성의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 자신의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자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남자였다고 해도...
어쩌면 이것이 모계사회가 희생하고 있는 일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히 여성의 상대적 지위는 높지만, 그에 비례해서 여성이 사회적 지위를 갖는 대신 개인적인 행복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것은 마치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이 아닌가. 그야말로 처자식을 위해 자신의 꿈이나 로맨스를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정착해 버리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어느정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한다면 성적인 평등성과 가족이라는 개념의 재정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어 있지만 그것도 50년을 넘지는 않았다. 60년대 후반까지도 거의 공식적으로 첩을 둘 수 있었다고들 하니..
아무튼 오랫동안 여성은 정절을 강요받아왔고 사회적 불합리를 감당해야 했다. 지금 존재하는 간통법이 생긴 이유가 과연 여성들이 바람피는 남편을 고소하려고 했던 데에서 발전한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 법이 생겼을 때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볼때, 남성들이 본처에게 누명을 씌워서 쫓아내려고 했던 데에서 발전한 법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쫓겨나거나 강제이혼당한 여성들은 집안망신이라는 이유로 처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손가락질 받으며 심한 경우는 스스로 목숨도 끊어야 했다. 모계사회에서는 그럴 일은 없었겠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으려나.
지금이야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러한 의식은 사람들 속에 남아 있다. 이혼하거나 편부모 가정인 아이들이 "결손가정"으로 구분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가정에 집착한다. 부모님과 아이들로 구성된 가정만이 화목한 가정이라는 딱지를 달 자격이 있는 것이다. 특히 새로 이사 온 옆집 가족이 엄마와 딸 둘뿐이라는 사실을 확인 하자마자 동네 아줌마들은 쯧쯧쯧하고 혀를 찬다. 만일 그 집의 엄마가 남자친구와 있는 것이 목격이라도 됐다면? 당장 반상회를 열어 그 모녀를 아파트에서 쫓아내도 할 말이 없어야 하는 거다. 어머니가 가장이라는 이유 만으로 차별당하는게 과연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이상한 건 또 남자가 혼자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걸 보면 동네 아줌마들은 존경의 눈빛을 팡팡 보낸다는 거다. 모계 사회에선 이럴 일은 없겠지, 라는 생각이 또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을 읽고도 이런 사회적 불합리 등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겪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시는 책 따위 사 읽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은 우리가 쉬이 접할 수 없는 인류학적 집단을 마치 옆에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우리보다 월등히 나은 문화도 아니고, 저급한 문화도 아니며, 단지 같은 평행선상에 존재하는 다른 사회일 뿐이다. 이 책을 읽고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은 살 생각도 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