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의 첫 번째 거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오래된 건물과 너무 나이 먹어 지지대가 필요하고, 수액을 맞아야 하는 늙은 나무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화자는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제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물들과 나무입니다.
게다가 등장하는 건물들에는 각주가 달려 있는데, 이 건물들이 작가의 상상의 표현이 아니라 모두 이땅에 현존하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실제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어요.

* 인천우체국은 1923년에 일본식 명칭 '인천우편국'으로 세워졌어요. 광복 후 1949년에 일제 잔재 청산 의미로 인천우체국으로 바꾸었고, 인천중동우체국으로 활용하다가 건물 위험 진단으로 2019년 5월 우편 업무를 종료하였습니다.
** 답동성당은 1897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1937년에 완공되었어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예요.
*** 애경사는 1912년 인천에 지어진 비누 공장이에요.
우정이, 답동이, 애경이...........
작가는 건물들에 이렇게나 정겹고, 애틋한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그리고 이웃에 새로 지어진 양옥 미선이. 미선이는 태어나 처음 듣게 된 늙은 건물들의 대화를 통해, 쓸모없어져 부수어지는 일만은 피해야 겠다는 단단한 결심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만난 가족들과 잘 지내기 위해 집안에 생명체들과 집 밖 동물들에게는 엄하게 굴게 되죠. 미선이네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거미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동네 건물들이 키워냈다며 자랑스러워 하는 졸찬이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미선이의 생각이 서서히 변하게 됩니다. 후회를 남기고 첫번째 가족을 떠나보낸 미선이는 간절히 자신이 품고, 또 자신을 어루만져줄 새로운 가족을 고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미선이 앞에 세 식구가 오게 됩니다. 엄마와 꼬마아가씨 재로는 전에 살던 식구들과 달리 거미의 출현에도 놀라지 않고 거미이름이 무언지 고민하고, 아빠는 대단한 건축가를 찾았다고 말해요. 게다가 아빠는 집에 들어온 나방을 손에 가두었다가 밖으로 날려보내기도 하죠. 확실히 이들의 행동은 전에 살던 가족들과 다릅니다. 그리고 재로는 언어장애 때문에 학교에서 폭력을 경험하고 있죠. 이런 가운데 집 미선이와 재로 그리고 거미식구들, 길고양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감정적으로 가까워져 갑니다.
"미선이는 놀란 거미들과 서로 마주 보았어요. 집은 자기를 안아 준 재로를 품에 꼭 안았지요"
재로의 상처, 미선이의 위로
미선이의 고통, 재로의 포옹
재로는 묵묵히 곁을 지키며 생명들을 보살피는 미선이와 함께 지내면서 점점 더 자신감과 용기를 키워갑니다. 그리고 자기를 괴롭히는 반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게 되죠. 그리고는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어린 꼬마들 모두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재로는 미선이의 벽돌색 하나 하나 칠해가며 몇 해를 성장해 나갑니다. 그 사이 미선이를 둘러싼 동네의 건물들은 끊임없이 변해가지요. 재로네 역시 이제 이 집을 떠나야 할 때가 오고, 미선이는 그렇게 계속 새로운 가족들과 만나게 됩니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걸 창조하는 걸 좋아하는 인간들의 속성. 이 책에 등장하는 오랜 건물들과 자연은 인간들의 이런 행동이 어떤 것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 하나 과거의 흔적이 사라지는 동네 풍경을 보여주고, 역사 속 시간과 그 당시 사람들의 체취와 말소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을 이야기하고, 또 추억 때문에 철거현장에서 저항하는 청년의 모습을 담담히 보여주면서요.
건축물을 생명체로 보기는 힘들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건물 안과 밖에서 생활하면서 건축물과 영향을 서로 주고 받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우리 유년의 기억들 속에는 책에서처럼 커다란 나무와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의 또 다른 스토리가 살아있을 거에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똑같은 모양새의 건물들 속에서 생활하며 특색없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가지게 되고, 훗날에 자신이 기억하는 장소를 다시 밟아보지 못할 것도 같습니다.
작가는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집 미선이를 통해 이런 안타까움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커서, 다시, 올게 라는 약속을 지킨 재로와 미선이는 다시 재회하지만, 우리 미래에도 이런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이 올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