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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은 꿈꾼다
하라다 히카 지음, 최윤영 옮김 / 모모 / 2025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지갑은 꿈꾼다』를 접했을 때, 띠지에 적힌 "학자금 대출의 노예에서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까지 『낮술』 작가 하라다 히카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고, 나는 이 책이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생각보다 묵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고, 가볍게 읽힐 줄 알았던 책은 오히려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이야기는 10만엔짜리 루이비통 지갑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하즈키 미즈호는 2년 동안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오랫동안 꿈꿔온 루이비통 지갑을 마침내 손에 넣는다(심지어 M.H라는 이니셜도 새겨서!) 하지만 경제관념이 부족하다 못해 없는 남편의 카드 리볼빙 사건으로 인해 그토록 애써 마련한 지갑은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채 중고마켓에 내놓게 된다. 미즈호가 내놓은 루이비통 지갑을 중고로 구매한 미즈노 후미오는 술집 아르바이트와 FX 다단계 판매 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중학교 동창인 노다 유이치로에게 속아 루이비통 지갑과 계약금을 모두 잃게 된다. 노다 유이치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우연히 주식 투자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다는 남자를 보고 주식 투자에 손대기 시작한다. 회사 일도 제쳐놓고 투자에 빠져들었지만, 결국 주가 조작 세력의 희생양이 되고 빚더미에 앉게 된다. 회사도 그만둔 유이치로는 동창들을 만나 사기 행각을 벌이게 된다. 풍수와 운세를 소재로 작가 활동을 하던 헤비타와 마미(필명: 젠자이 나쓰미)는 '싸구려 지갑을 쓰는 남자는 평생 독신에 돈을 못번다', '구혼활동하는 여자는 핑크색 지갑을 써라' 같은 글로 인기를 얻는다. 각종 세미나와 강연을 돌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공허하고 불안했다. 차기작을 준비하던 중 편집자에게 독자들을 위험한 방법을 유도하는 글은 그만두라는 지적을 받고 홧김에 벼룩시장에서 루이비통 지갑을 산다. 히라하라 마이코와 사이타 아야는 학자금 상환 문제로 힘겨워한다. 어느 날 아야가 학자금 상환 비법을 알려준다는 사이트를 발견하지만 불법임을 알고 두 사람은 겁에 질려 도망치다 헤비타와 마미를 만나게 된다. 이들은 에세이 취재 대가로 학자금 상환 개선 방법을 지도받지만, 코로나로 인해 투자 상황이 달라지면서 마이코와 아야는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읽다 보면, 사실 하즈키 미즈호가 하와이에서 산 루이비통 지갑이 오히려 불운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루이비통 지갑은 단순한 물건을 넘어 '돈을 둘러싼 어떠한 상황'을 상징하고,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낸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즈노 후미오와 노다 유이치로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그리고 히라하라 마이코와 사이타 아야는 서로 의지하다가도 결국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옮긴이(최윤영)의 말에서 "돈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마주하는 우리의 선택과 태도가 인생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 속의 인물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고, 그 선택이 그들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그때와 글이 많이 달라졌네요 ···." 조심스레 묻자 그녀는 수줍은 듯이 웃었다. 인터뷰하는 내내 처음으로 보는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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