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 지음, 문희경 옮김 / 테오리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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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와 아들 루퍼스의 마지막 밤은, 앞일을 모르기 때문에 더 진한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아들과 찰리채플린 영화를 보러간 아버지의 기분은 꽤나 즐거워 보였고, 아들 역시 이 시간을 상세히 기억할만큼 잊지 못할 밤이었다. 영화 속 찰리채플린의 익살스러운 행동과 표정이 어땠는지를, 관객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와 분위기가 눈에 잡힐듯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마치 영화 '시네마천국'의 극장안 풍경을 보는 듯 했다. 전에 본 영화임에도 아버지는 즐거워했고 집에 가기엔 아쉬웠는지 술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아마 십년뒤엔 아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해보았으리라. 

하지만 그 밤이 아들 루퍼스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더 이상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린아이가 이해하기는 얼마나 힘들까. 이제 간판의 글도 읽을 수 있고, 어려운 단어의 뜻도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아버지께 자랑할 것이, 함께 경험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찰리채플린의 영화를 보러 극장에도 함께 가야하는데, 더 이상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은 아들 루퍼스가 바라 본 아버지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어머니 메리에겐 남편의, 제이의 부모에겐 자식의, 랠프에겐 형의 부재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도 알려준다. 가족의 죽음이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격정적으로 때론 먹먹함으로 그려내는데 준비할 시간이 있는 죽음이 아니라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건이라 더 혼란스러워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을 조금씩 이해해가지만 커지는 그리움에 어쩔줄 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혼란을 본다. 

제이의 죽음이 가족에게 던져주는 파장이 가슴을 울리고 공감을 하게 되는 건, 누구나 겪었고 또 겪어야 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던 한 평범한 가족에게 닥친 비극이 그들에겐 더 이상 평범하지 않는 시간을 겪게 하고, 우리 또한 '가족의 죽음'을 이들과 비슷하게 감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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