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순진무구한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내는 악마인 왕자 라는 캐릭터는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얄밉고 짜증나는 인물이었다. 본래 어른의 말투와 행동을 하는 어린 아이 캐릭터를 싫어하는데, 왕자는 자신이 어린 소년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이용했기 때문에 더 싫었다. 악 으로 똘똘 뭉친데다 자신의 이점을 잘 활용해 주변인들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이 무지막지한 작은 악마는 시종일관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게다가 세상의 운이란 운은 다 몰빵을 했는지 정체가 들켜버릴 만한 위기 상황이 돼도 어떻게든 빠져나가니 얄미울 수 밖에 없다. 세상의 불행은 다 짊어진 듯한 나나오 와는 딴판이었다. 만나는 어른들마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돼?"라는 질문을 던져 놓고 어떤 대답을 들어도 조소를 내뿜고, 자기가 어른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왕자의 마지막이 부디 최악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두꺼운 책을 다 읽었다. 책 읽으면서 혼자 열내는 내 모습이 좀 웃기긴 했지만, 진짜 내 눈앞에 있으면 머리통이라도 쥐어박고 싶을만큼 얄미운 캐릭터이다.

 

달리는 신칸센 안엔 제각각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타고 있었다. 그것도 살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는데 일단 14살 중학생인 왕자는 어린 아이를 옥상에서 밀어버렸는데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사이코패스이다. 차라리 겉모습이 불량했더라면 나았을텐데, 누가 봐도 착하고 예의바른 중학생으로 보니 그 시커먼 속내를 알아차리는 어른이 없다. 왕자에 의해 소중한 자식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아버지 기무라는 신칸센에 올랐다. 그는 전직 킬러로 왕자를 죽이기 위해 소음기를 단 총을 지녔지만 정말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왕자가 이렇게 악질이라는 것도 몰랐을 테고, 알았다해도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왕자는 훈계가 통하는 아이도 아닌데다 머리도 좋고 운도 좋으니 그가 상대하기엔 버거웠다. 더구나 기무라는 현재 알코올 중독자로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으니 왕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왕자에게 기무라는 시시하고 재미없고 비웃기 좋은 어른인 셈이다.

 

이름 대신 레몬과 밀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두 킬러도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그들의 임무는 납치된 미네기시의 아들을 구하고 돈이 든 트렁크를 무사히 전달하는 것이었는데, 이 간단한 일이 레몬의 부주의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다. 멀쩡하던 아들이 돌연 사망하고 트렁크마저 사라졌으니 범인을 찾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게 생긴 것이다. 다행히도 신칸센이 달리는 와중이니 범인은 이 기차안에 있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또 다른 킬러인 나나오가 개입하고 왕자마저 흥미를 보이면서 간단해 보이는 일이 자꾸만 고이게 된다. 그 중에서도 불운의 아이콘이지만 불행한 일은 잘 안당하는 이상한 캐릭터인 나나오의 활약이 단연 빛난다. 레몬의 토마스 기차 예찬론까지 쭉 이어지며 신칸센에서의 소동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레몬과 밀감, 그리고 나나오는 어떻게 연관이 되고 의뢰받은 일을 잘 수습할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한편 왕자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책을 덮을수가 없었다. 이 얄밉고 이기적인 꼬마가 된통 당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며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중간중간 지루해서 고비를 맞기도 했지만 왕자의 최후를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며 봤고 나름 만족스러운 결말을 얻었다. 추천글에서 아사히 신문이 '한번 손에 들면 놓을 수가 없다.'고 평했는데 나도 같은 경우이다. 재미보다 왕자 캐릭터 때문에 그런거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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