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공생을 꿈꾸다
요로 다케시 지음, 황소연 옮김 / 전나무숲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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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까진 곤충을 사랑하고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곤충학자나 일부 사람들만 취미로 곤충채집을 하는줄 알았지, 요로 다케시처럼 인생의 1순위가 곤충인 '곤충쟁이'들이 이토록 많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곤충을 잡아서 어디에 써먹느냐는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세상엔 다양한 물품을 집착이라 표현할 정도로 모으는 사람들이 많은데 설마 곤충이 거기에 껴 있을줄은 몰랐다. 게다가 책을 읽어보면 일본내엔 곤충쟁이들이 많다는걸 알수있는데, 동남아 등 다른 나라에 원정까지 가 자신이 원하던 곤충을 채집까지 한단다. 갖고 싶고 보고싶은 곤충을 얻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그들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곤충에 관심없거나 싫어하는)은 이해가 잘 안될 것이다. 나 부터도 곤충쟁이들의 삶이 그저 신기하고, 요즘 말하는 화성인 처럼 보인다.

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많은 저서를 쓰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존경받는 요로 다케시는 '곤충쟁이'의 대표적 인물이다. 어린시절부터 풍부한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살며 다양한 곤충들을 만났고 채집하는 즐거움은 노인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곤충 이야기엔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 할 그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로 그는 곤충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런 곤충쟁이의 마음을 사람들은 이해해주지 않는다. 산과 들로 돌아다닐 시간에 능률적인 일을 하는게 이득이지 않느냐는 질문을 그는 무수히도 받았다. 그럴때마다 곤충채집을 하면서 얻은 기쁨을 설명해주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의구심은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들에게 곤충은 보이지 않는 세상속에 살았고, 요로 다케시에겐 유일하고 행복한 세상을 대변해주는 것이었으니까. 

저자는 곤충채집에 나서면 모든 사고방식과 행동이 '기능'모드로 바뀐다고 한다. 그 기능주의가 세상의 형식과 가끔 맞지 않을 때가 있어 이해를 구하지 못할때도 있지만, 곤충쟁이에겐 우선 순위가 지극히 명료하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1순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무엇이 가장 으뜸인지 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 순간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수가 없다. 지극히 곤충쟁이의 시선에서 설명하는 거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닌것 같다.  

곤충 때문에 승진에는 관심이 없는 형사의 이야기가 바로 요로 다케시가 말한 기능 모드일 것이다. 그에겐 1순위가 곤충 이었고, 자연스레 승진과 돈 명예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몇십년 동안 말단형사로 남아있었는데 그 자신은 너무도 만족해했다. 높은 진급으로 승진되면 돈과 명예는 주어지겠지만 곤충을 잡으러 갈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마 주변 사람들은 "고작 곤충 때문에?"라는 반응을 보였을게 틀림없다. 하지만 무언가에 열정을 갖고 행복을 느낄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는 세상에서 그런 형사의 모습이 조금 멋지게도 보였다.   

요로 다케시가 일본 사람들은 모두 '인내회' 회원이라고 하는데, 그건 일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걸 포기하고 인내하며 살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은 곤충을 잡으러 다니는 그에게 부럽다고 이야기한다. 그럴때마다 "그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잖아요." 라고 물으면 언제나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으니까 좋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꼭 곤충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모든걸 훌훌 털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나 진짜로 원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부러움을 표시한다. 자신도 그들처럼 될수 있음에도(생각보다 어렵지 않음에도) 미리부터 포기하고 시도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인내회 회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요로 다케시도 오랜 세월동안 곤충 채집을 하지 못했다. 바쁜 일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몇십년동안 너무도 변해버린 자연 환경에 있었다. 고도 경제 성장은 아름다운 자연을 불도저로 파괴했고,수많은 생물들을 멸종 시켰다. 강과 바다는 흙으로 메꿔지고 나무는 잘려나갔다. 자연을 뒤엎지 않으면 마치 인간이 살아갈수 없다는 듯 국토를 짓밟았다. 그런 시대속에서 그가 어린시절 만난 예쁘고 희귀한 곤충들은 사라졌고, 처참하게 파괴된 추억의 장소를 대면할수 없었던 그는 곤충채집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살아갈 시간이 무한하지 않음을 아는 그는 남은 생애를 그토록 사랑하는 곤충과 함께 하기 위해 다시 채집망을 집어들었다. 곤충은 마음먹은대로 잡히지 않고 시기,날씨,장소와 채집가의 건강상태에 따라 변한다. 그리고 계절 읽기도 중요해서 시기를 놓치면 한 마리도 구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시간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렇게 곤충과 만나며 자연스레 환경에 대한 걱정으로 넘어가게 된다. 지금 채집한 곤충이 마지막 표본이 되지 않고 후손들이 볼수 있으려면 더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해야 함을 그는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특히 경제발전 때문에 많은 수의 곤충들이 멸종되는 상황에서 표본을 남기는건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해야만 한다. 열대우림이 파괴되는걸 막을수 없다면 우림에 어떤 생물이 살고있었는지를 알려주는 표본을 보존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경제발전이 절실한 나라에게 자연보존 이라는 잣대를 내밀며 무조건적으로 해달라고 하는것은 불가능하고 올바른 대안이 아니다. 사람들을 위한 길이 만들어지며 요로 다케시 같은 관광객들이 밀림을 볼수 있듯, 자연친화와 개발 행위는 균형있게 해야하는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면에서 표본 보존은 미래를 위해 해야할 일이었다. 그래서 요로 다케시는 자신 뿐 아니라 수많은 곤충쟁이들이 평생 만든 표본을 전시할수 있는 공간을 찾았고, 마침내 곤충관을 짓기에 이른다. "워낙 곤충을 많이 살생했으니 곤충과 함께 죽었으면 한다"는 그의 말이 인상깊고 곤충쟁이 다운 말 같다.

그는 환경전문가도 아니고, 이 책에서 파괴되는 자연과 경제발전의 조화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곤충과 자연을 사랑하는 한사람으로서 느꼈던 것을 토로하며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인간은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그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한다. 인간보다 지구에 오래 살았던 생물들이 짧은 시간안에 멸종되는게 과연 정상인걸까? 자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면 그 피해는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자연재해,광우병 파동 등을 통해 알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피해는 어쩌면 작은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니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면서 살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누구나 파괴되는 자연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막상 방법을 몰라 실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연과의 공생을 꿈꾸는 그의 바램은 큰 울림을 지닌다. (책에 실린 글이 대부분 10여년 전 꺼라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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