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 - 사진이 있는 에세이
이강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 는 담백한 된장국을 연상시킨다.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으로부터 삶의 자세를 배우는 그녀를 통해 나도 모르게 들꽃에 눈이 갔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녀의 '노래'가 세련되거나 현란한 기교는 없을지 몰라도 그 안엔 삶을 사랑할 수있는 자의 편안함이 녹아 있다. 그래서 읽는 나도 편안하며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엄하고 무뚝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약주를 드셔야만 보여주셨던 아버지의 서투른 애정이,그렇게 무뚝뚝한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어머니 사랑 또한 지금처럼 유난스럽지 않았다.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내가 아이들과 직장 때문에 어머니께 소홀히 하여도 서운하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신다. 그것이 이치라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내 몸 상하는 것을 염려하시고 기도하신다.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던 그 맛이 엄마를 닮았다는 것을 된장독이 비워지고 나서야 알았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을 작가는 조용히 들려준다. 그 말이 따끔한 충고보다 더 가슴을 파고든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나의 최신형 스마트폰은 두 딸의 사진이 점령하고 있다. 온갖 포즈를 취하며 함박 웃음을 띤 채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백 장이 넘는 사진 속엔 여행지, 새로운 먹거리, 새로운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최신 스마트폰은 못 하는게 없다. 그런데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부모님의 사진을 내 디지털 기계에 옮긴다 하여도 그 느낌은 다르다.

우리 삶도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억지로 끼어 맞추면 그 모양은 비슷해보여도 의미는 다를 것이다.  자신의 색깔을 찾고 페이스를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 아닐까.

자연의 깊이를 닮으려 하고 자신의 촌스러운 이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작가처럼.

 그래서 난 파스타처럼 강렬하지 않아도 자연의 맛을 지닌 담백한 된장국이 더 좋다.

내 인생의 변화를 꿈꾸어 본다면 지금 내게 맞는 또 다른 삶은 무얼까 하고 가끔 생각해 보기도 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젠 비워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 p51

엄마와 딸 사이는 꼭 표현하지 않아도 저절로 통하는 무엇이 있다고 믿었다. 대책 없는 그 믿음은 어디서 나왔는지, 엄마에게는 언제나 친절하지 않았고 짜증이 반쯤 섞여 있었다. p107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던 그 맛이 엄마를 닮았다는 것을 된장독이 비워지고 나서야 알았다. p110

산이 아버지라면 강은 어머니다. 산과 강은 조화를 이루며 긴 세월을 지켜왔다. 잔잔한 봄비를 맞을 때에도, 비바람 태풍 앞에서도, 가을과 겨울을 오가는 질풍 속에서도 함께 호흡하며 말없이 지켜준 그들, 거기에 발맞춰 여기 나 한 그루 나무로 서 있다. 이 기나긴 여로에 나는 무엇으로 남고 무엇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p152

외로움 때문에 몸을 떠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외로움을 느껴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덧부인 시인의 글을 이제야 가슴으로 접수한다.p154

그 예쁜 이름들 사이에 끼어 있는 `이강순`이라는 이름 석 자,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본다. 순간 반짝, 빛이 났다. `순`자 그거 하나로 개성 넘치는 이름이 됐고 세련된 38명의 이름은 갑자기 촌스러운 이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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