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간 뜨인돌 그림책 63
안데르스 홀메르 지음, 이현아 해설 / 뜨인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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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첫 글없는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그도 아마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은 아픈 경험이 있나 봅니다. 첫 장을 펼치면 왼쪽 귀퉁이에 페이비에게라는 문구가 보여요. 페이비는 혹시 이 작가가 갑자기 멀리 떠나보낸 소중한 사람였을까요?

글없는 그림책은 그림을 정말 꼼꼼히 반복해서 보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그린 책 속 아이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장면부터는 너무 비현실적이고 갑자기 차원이 바뀐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같아 고개를 갸우뚱해졌죠. 그런데 이현아작가님의 해설을 읽고 다시 그림들을 샅샅이 눈 속에 넣으며 읽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구요.

이 아이는 엄마가 가볍지 않은 병에 걸리고 그로 인해 영원한 이별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엄마를 등지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방으로 들어가서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스며든 장난감, 인형, 사진 같을 것을 보며 엄마의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기만 했을 거 같아요.


울다 지쳐 잠이 들고 그리곤 불안하고도 얕은 꿈을 꾸었을 것 같아요. 그 소중한 기억들을 머금은 소품들이 살아나서 어디론가 움직이며 떠나고 아이도 그들과 멀리 멀리 달나라 가까이 여행을 했을 것 같아요,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엄마를 계속 생각하면서요,,. 평소에 아이는 놀이공원, 과학 실험, 비행선 등을 좋아했을까요..?


저도 얼마 전 사랑하는 아버지를 여의었어요. 아버진 98세의 나이로 이 땅의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참 치열하게도 사셨고, 강한 분이셨지만 따뜻하시기도 한 어른이였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줄만 알았던 아버지께서 90을 넘기시면서부터는 한없이 약해지시고 무너지시는 모습이셨어요.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받아들이기도 쉽지는 않더라고요.

삶과 만남을 받아들아는 것처럼 죽음과 이별을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린 책 속 아이처럼 아버지를 뒤로하고 등을 돌리고 창문을 통해 날아가듯이 아버지를 외면하고픈 시간들도 많았습니다.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다른 길로 빠져버린 적도 있었지요. 아이가 한바탕 꿈속에서 엄마와 멀어져 달나라가까이 날아가버린 것처럼 저도 괜히 친구들 만나고 어디론가 가버리기도 했지요.


그래도 아버지는 제가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손을 잡아 드리고 손톱을 깎아 드리고 책을 읽어 드릴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요.


저는 아버지의 유품을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남긴 겨울 목도리 손수건 등을 두르고 쓰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진, 보시던 책들, 아버지의 수십년 간의 일기도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 물건들은 내가 모르던 물건들이 아닙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 함께하던 소품들이지요. 그래서 소중하고 그 어떤 물건들보다도 아낍니다.



아이도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과 추억을 간직한 소품들을 통해 지금 자신이 엄마와 해야 할 무언가가 무엇일런지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림책은 숨은그림 찾기 하듯이 조금은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또 눈에 힘을 주었다 풀기를 반복하면서 앞장과 뒷장을 번갈아 보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아하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그래서 정말 내가 이 그림들을 읽어냈구나 하는 기쁨도 얻을 수 있는 책일 것입니다. 처음엔 작가만의 유니크한 경험을 토대로 한 조금은 보편적이지 않은 그림책 책일 구도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 것 같습니다. 그 누구라도 이 그림책을 통해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이 깃든 소품들을 통해 내가 지금 어디로 가야하는 지 무엇을 해야하는 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품들에 쌓여있을 먼지들은 닦아내고 아버지의 편지와 일기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렵니다.

-사랑이 깃든 일(것)은 영원한다-

Only one life, that soon is passed,

Only what’s done with love will 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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