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치 - 쓰다 버려지는 삶을 거부한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쓰다 ㅣ 이매진의 시선 28
소희 지음 / 이매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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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버려지는 것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없다.
인간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쓰다 버려지는 존재라는 것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아사히글라스지회의 투쟁을 보아왔고 존경하기에 빨리 읽고 싶은 것에 비해 리뷰를 쓰기 너무 힘들었다.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세종호텔지부의 투쟁과 너무 비교되서 괴로왔다.

정리해고 당한 후 어느 날 상급단체인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들꽃, 공단에 피다’를 보고 빠르게 읽은 후 세종호텔지부도 조합원들의 히스토리로 책을 내보자고 제안했었다. 동의하는 해고자가 별로 없었다.
세종호텔지부 해고자들은 비밀주의자들이다.
코로나가 끝난 한참 후에도 마스크를 벗은 사람은 고진수,허지희 밖에 없었다.
내가 해고된 사실을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자매등 가족이 몰랐으면 하는 조합원이 여럿 있었다.
마스크조차 못 벗는 조합원들에게 책은 불가능한 얘기였다.
이해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까지 복직투쟁의 비밀활동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투쟁자체를 포기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책, 안되요!
몸짓패, 싫어요!
CMS요청, 난 그런 거 못해요!
못하고 안한다는 조합원들의 거절은 내게 상처로 쌓여갔다
심할 때는 마음의 병이 되었다.
누구는 날 때부터 투쟁하려고 태어났나?
CMS용지를 들이미는 일은 나도 부끄럽다.
마이크 잡고 발언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데 발언시키면 탈퇴할 꺼라는 농담은 더 이상 농담도 아니다.
몸짓패를 만들어 연습도 했으나 패짱도 멤버도 지금은 없다.
연대가서 앞자리 앉는 일은 쉬운가?
다른 산별의 현장에 뒤에서 조용히 박수만 치고 싶지만 세종호텔지부가 왔다는 걸 알리려면 맨 앞줄 가서 위원장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수밖에 없다.

나라고 나대고 싶은가?
그래야 연대간 게 알려지니 어쩔 수 없다. 그런 용기도 필요하다
같이 사진도 찍고 SNS에도 올려야 연대 마일리지가 쌓인다,
원래 내 성격은 한쪽에 접어두어야 했고 그것을 성장이라 부르는 동지도 있다.
그런 것들이 나와 해고자들이 함께 성장하면 좋았겠으나 매번 미친듯이 뛰어다니다가 가끔은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지치고 가끔은 실제 부러지거나 꼬매느라 강제휴식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파치를 읽는 내내 부러웠다.
지회장은 비정규직 투쟁을 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 뛰어들고
조합원들은 지회장이 있어도 없어도 스스로 투쟁을 결정하는 모습은 우리가 지난 5년동안 갖추지 못한 소양이다.
세종호텔지부는 공대위의 투쟁을 제안받고 함께 논의해서 투쟁을 결정하는 날이 많았다.
지부가 자주적으로 투쟁을 결정한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아사히의 성숙하고 자율적인 투쟁이 참 존경스러웠다.

그나마 연대했던 투쟁이 함께 승리의 크고 작은 맛을 보며
연대로 우리 투쟁도 함께 힘을 낼 수 있다는 정도의 감이 생긴 게 우리의 성장이 아닌가 싶다.
물론 지금은 연대의 현장에서 고진수지부장이 구속되어버리는 변수가 생기기도 했으나 연대한 투쟁들이 하나씩 승리해 나가다 보면 세종호텔지부에 더 많은 힘들이 모이는 그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아사히가 불법파견을 사법부에서 인정받고 정규직으로 복직하는 전설을 만들었다면
세종호텔지부는 사법부에서 인정받지 못한 부당한 정리해고를 깨부수고 복직하는 전설이 될 것이다,
그만두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라고 믿는다.
언젠가 세종호텔지부만의 파치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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