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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소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3
미하일 조셴코 지음, 백용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빨간색 매니큐어를 손톱에 칠하는 일은 쉬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단정한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평일에는 진한 색의 매니큐어를 칠할 수 없다. 주말만을 위해서 빨간색 손톱을 칠하기는 망설여진다. 특히, 빨간색이나 검은색의 매니큐어는 지우기가 쉽지 않다. 손톱과 살 사이에 흔적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서 귀찮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싶을 때도 있다.
현재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혹시 놀기 좋아하는 여자로 비추어질까 싶어 망설이게 된다. 색깔 하나의 선택이지만, 왠지 새빨간 색은 드세 보이고, 다가오기 힘든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역시 여성스러운 파스텔톤이나 튀지 않는 연한 갈색쯤이 좋지 않을까 싶다.
자, 벌써 두 가지의 장애물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위의 두 가지의 장애 따위는 가볍게 패스하고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를 일부러 의식하고 빨간색을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
빨간색 매니큐어를 정말이지 칠하고 싶어서 칠한 것이 아니라
1. 나는 규정지어진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않아.
2. 나는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해도 상관없는 연애 상태야.
라는 의도에서 빨간 매니큐어를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에.
칠하는 중간에 싫증이 났다. 그래서 역시. 바르고 십분도 되지 않아 아세톤으로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외의 복병. 오른손 넷째손가락에 칼로 베인 상처가 있었는데 아세톤의 알코올 성분이 닿자 너무 따가워서 제대로 매니큐어를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그런 나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서, 매니큐어의 색깔을 선택하고, 칠하고, 지우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코 유치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 감정의 표현에는 때로 예상할 수 없는 복병이 나타나기도 한다. 매니큐어의 색깔은 예쁘지만 나의 손 색깔과는 맞지 않다거나, 생각지도 못한 손의 상처 때문에 제대로 칠하거나 지우지 못할 수도 있다.
인생은 한가지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소한 내 기분에 따라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할 수도 있고 초록색, 까만색 매니큐어를 칠할 수도 있고 라벤더, 핑크, 골드 플래닛 등의 색깔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칠한 다음에는 색이 벗겨질 때까지 그대로 놓아둘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지워버릴 수도 있다.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아세톤도 있고, 화장솜도 있다. 내 손이고, 내 의지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는 수백 수천 가지의 매니큐어 색깔이 있으니까.
자, 이쯤에서 첫번째 문장으로 돌아가자.
빨간색 매니큐어를 손톱에 칠하는 일은 쉬운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사실 정답은 없다.
인생이 누군가에게는 쉽고, 누군가에게는 어렵듯 빨간색 매니큐어를 손톱에 칠하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쉽고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이겠지. 그리고 그게 또 뭐, 별건가? 생각해보자. 매니큐어 칠하는 게 뭐, 별건가? 그냥 바르고, 지우고. 그러는 거지. 심각할 것 없다. 인생을 사는 게 다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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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조셴코가 쓴 <감상소설>을 읽고 느끼는 기분이 딱 위와 같아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한 가지의 주제로 엮이죠.
'인생이란 힘들구나.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별거 있나? 그냥 사는 거지, 뭐!'
인생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거나, 나 혼자만 모든 짐을 다 짊어진 것만 같은 우울한 청춘들에게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