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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 당신에겐 한 문장이 있습니까?
정철 지음 / 김영사 / 2024년 10월
평점 :
내가 만난 카피라이터의 책들은 하나같이 다 감각적이었다. 가벼운 몸짓으로 날렵하게 날아들어, 노련하게 빈틈을 찾아 날카로운 통찰을 유쾌하게 꽂아 넣는 솜씨! 묘한 쾌감을 주는 그들의 책은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도 그렇다.
서문마저 시와 같고 여유가 넘친다.
한 문장.
두 문장.
세 문장.
문장을 하나씩 늘려가며 글을 쓴다. 아직 완성은 아니다. 연필을 내려놓는다. 지우개를 든다. 지우개로 글을 마저 쓴다.
세 문장.
두 문장.
한 문장.
내가 쓴 문장을 내 손으로 지운다. 지운다. 지운다. 더는 지울 것이 없다. 지우개똥 곁에 살아남은 문장 하나가 보인다.
이것이 책을 쓰며 내가 한 일의 전부다.
나는, 누가 훔쳐갈 것도 아닌데 꼭꼭 숨어서 이 일을 즐겼다.
기똥차다.
애써 쓴 문장을 지우고 지우고 지운다. 지우개똥이라니. 뜨거워진 지우개의 정련을 견디고 남은 결정체, 반짝이지 않을 수 없는 문장들이다.
짧고 쉽게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은 안다. 짧다고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짧아서 번 시간을 생각으로 덧칠해 가슴에 새긴다. 이 문장을 따라해볼까, 어떻게 다르게 바꿀까. 저자가 지우고 지워 만든 여백에 내 글을 더해본다. 그러라고 지우셨나.
딴짓하듯 시선을 창밖으로 옮긴 횟수는 그간 읽은 책들 중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누가 보면 재미없는 책인 줄 오해하려나.
그래도 글을 자주 쓰는 편이라 글쓰기에 관한 문장들이 특히 기억에 남아 모아보았다. 쓰는 모든 분들께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선을 뒤집으면 선생이 된다
갈치나 넙치 같은 생선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것을 뒤집어 다시 보라. 뒤집는 순간 보이지 않던 귀한 것이 보인다.
내가 글을 써야 하는지, 글을 써도 되는지 고민이 깊은 사람은 '연필'을 뒤집어 보라.
-154 면
글을 쓰는 건 쉽지만
글을 쉽게 쓰는 건 어렵다
이 글이 쉽다면
내가 어려운 일을 해 낸 것이고,
이 글이 어렵다면 내가 한 말이 맞는 거다.
- 38면
동사가 연상되지 않는 명사는
곧 명사 신분을 잃는다
해는 뜨다. 꽃은 피다. 새는 날다. 물은 흐르다. 모두 다 자신만의 동사가 있는 튼튼한 명사들이다. '나'라는 명사도 튼튼해지려면 연상되는 동사 하나는 있어 줘야 하지 않을까.
-289면
베토벤도 삶의 9할을
백지 앞에 앉아 있었다
운명은 백지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깨끗한 백지다. 베토벤도 교향곡 5번 운명을 쓰기 전까지는 백지 앞에 앉아 있었다. 지금 내 앞에도 백지가 놓여 있다. 그곳에 내 손으로 오선지도 긋고 음표도 그려 넣으면 제법 괜찮은 운명 하나를 써 낼 수 있다. 내 운명은 베토벤이 대신 써 줄 수 없다.
- 273면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은 이렇게 진지하게 재미있다. 풉, 웃음이 터지게 한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급히 손을 놀려 공책에 옮겨 적게 한다. 인덱스를 이미 너무 많이 붙여 붙이지 말까 고민하게 한다.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은
도서관을 선물하지 않는다
이 책에 너무 많은 밑줄을 긋지 마라.
물론 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하지만 참아라. 밑줄이 많으면 밑줄은 없다. 강조가 많으면 강조는 없다.
- 248면
맞는 말씀입니다!
계속 발췌하고 싶은데 꾹 참아보겠다.
오늘 여기에 옮기지 못한 옮기고 싶은 문장들은 독자들께서 직접 확인하고 즐기시기를 강추합니다. 잠들기 전, 웃음을 머금고 기분 좋게 꿈꾸기 좋은 책,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은 책,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길이 없다 싶을 때도 미소 지으며 성큼성큼 인생을 건널 수 있도록 동글동글 윤이 나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추천합니다.
세상에 없는 것은
있을 필요가 없으니
없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귀한 진실 하나.
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
- 26면
*** 출판사 김영사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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