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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5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아! 돈. 인간을 부패와 중독에 빠뜨리고, 영혼을 메마르게 하고, 무한한 권력 속에서 덧없는 인간의 양심보다 더 높이 추앙받는 돈, 피와 눈물보다 더 높이 군림하는 돈, 돈이라는 제왕, 돈이라는 신!'
세상 온갖 추악함의 근원이자, 기쁨과 행복을 주기도 하는 돈. 돈의 두 얼굴이다.
에밀 졸라(1840-1902)의 <돈>은 1860년대 프랑스 증권 세계를 묘사한 소설이다. 돈의 욕망에 휩싸인 사람들을 통해 돈이 인간을 어떻게 파멸로 이끌어가는가, 돈을 향한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인가. 이런 돈의 속성과 결부된 인간 본성을 그려내고 있다.
그 시절 증권거래소 풍경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마치 경매시장 같다. 주식 중개인이 전표를 들고 객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사자'와 '팔자' 주문을 받는다.
줄거리를 간략 요약하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었으나 파산한 '사카르'는 정치권력의 도움을 받아 은행을 설립한다. 그는 능수능란한 사업수단으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사카르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로지 돈이 주는 쾌락과 권력을 즐기기 위해서다. 과거 돈에 팔려 결혼을 한 사카르는 아내를 아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돈 앞에 윤리도덕 따위는 사치다. 한마디로 돈을 가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팔아치울 수 있는 남자다.
뼛속 깊이 유대인을 증오하는 사카르는 금융계 라이벌인 억만장자 유대인 은행가 '군데르만'과 경쟁을 벌인다. 사카르는 온갖 불법적인 행태를 동원하여 주가를 조작하고, 주식은 비정상적으로 상승세를 탄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몰려든다. 주식투자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신분 구분이 없다. 귀족부터 하층 노동자까지 모두 돈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사카르가 쌓아올린 주식은 거품 덩어리였다. 어느 날 측근의 배신으로 주가는 대폭락하고 휴지조각이 된다.
평생 모은 재산을 단 한순간에 날리고 빛 더미에 올라앉게 된 수많은 사람들. 욕망의 끝은허망했다. 황금 탑은 그렇게 무너졌다.
소설 속에서 유대인을 혐오하는 장면은 다소 뜻밖이다. '조국도 국왕도 없는 저주받은 종족, 여러 나라에서 법을 지키는 척하지만 실은 기생충처럼 살아가며, 거미줄의 중앙에 자리 잡은 거미처럼 모든 나라에서 자리를 잡고서 먹이를 지켜보고 만인의 피를 빨고...
"유대인을 부패 사업 격랑에 던져보면 알지. 그들은 금세 살아 돌아와. 이익이라는 등짐을 진채 말이야. 그것은 종족적 재능이며 여러 나라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이유 그 자체지"
예로부터 유대인 신분 차별은 직업선택에서 제약을 받아왔다. 그들이 선택한 차선의 직업 중 금융업 등에서 비롯된 막강한 재력은 오늘날 미국을 비롯, 세계 정. 재계를 지배하고 있다.
<나는 고발한다-1898>에서 에밀 졸라는 작가 생명을 걸고 무고한 유대인 '드레퓌스 사건' 의 진실을 밝혔다. 그러나 <돈-1891)에서 보여준 유대인 폄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당시 프랑스 사회에 팽배한 반유대주의를 소설 속에서 간접적으로 묘사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자연주의, 또는 비판적 리얼리즘 작가로 불리는 졸라의 작가관은 소설가의 본질적 자질은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감각'이라고 했다.
작가의 삶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할 수 있겠으나, 작품 이해에 있어서는 부차적으로 봐야 한다. 소설은 소설로 봐야 하는 것처럼.
국내 번역된 작품들 <목로주점> <인간 짐승> <테레즈 라캥>등을 보면 현실의 정확한 묘사, 부르주아의 억압, 노동자의 비참한 삶, 인간 본성에 내재된 선과 악을 놀랍도록 상세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졸라 특유의 감각적 필체이자 매력이다.
<돈>은 루공마카르 총서 20권 중 18권이다. 마카르 총서는 프랑스 제2제정시대 정치, 경제, 문화 등 총체적 시대상을 담고 있다.
이 시리즈에 대해 졸라는 '내 생애 중에서 25년을 앗아갔다'라고 말했다.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설정해서 작품을 끌어갈 수 있는 작가 능력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