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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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 이어 두 번째 소설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문을 말하지만 구병모 작가는 장문을 고수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한 페이지에 한두 문장이거나, 길게는 두 페이지에 걸쳐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단문은 단조롭고 간결 명료한 반면, 장문은 유려하지만 비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때론 핵심이 흐려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놀라운 건, 만연체임에도 글의 흐름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소설 속 현장감이 생생하게 이미지로 느껴지고 문장의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소설집 <단 하나의 문장>에는 여덟 단편이 실려있다.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사연 없는 사람>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은 작가의 고민을 심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는 익명으로 활동하는 작가 P 씨의 소설 한 편이 발단이 되어 결국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소설 속 악인이 외국인 노동자이거나 미화된 장애인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독자들이 발끈했다. 현실을 무시한 편협한 사고라는 것이다. 이후 P 씨가 내는 소설은 사사건건 극성 독자들의 도마에 오르게 되고 결국 작가의 길을 접게 된다.

독자 입장에서 소설과 현실을 어디까지 동일시할 것인가. 작가는 단순히 소설적 재미를 위해 쓸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입지를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나. 한 번쯤 생각해 볼 부분이다.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은 작가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다.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타인에 의해 고정된 이미지의 불편함과 이를 넘어서려는 소설가 0씨의 고민이다.

사람들은 소설가 0씨의 작품을 두고 늘 '곰삭았다'라는 표현을 한다. 곰삭았다, 이는 생각할수록 묘한 뉘앙스를 준다. 깊거나 노련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때로는 고리타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0씨는 곰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고자 작품세계를 다양하게 변주하지만, 늘 꼬리표처럼 곰은 따라다닌다. 급기야 곰과 관련된 단어만 들어도 혐오 내지 기피증까지 느끼게 된다.

'생각을 멈출 수 없다면 그것을 잡아 소유하라, 소유하지 못하면 부숴라.' 0씨는 곰에서 자유롭고자 직접 곰을 잡으러 산속으로 들어간다. 오죽했으면 곰이 그 곰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지난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사고를 비튼 <웨이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를 고민해보게 하는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가상의 미래에 스스로 진화하는 글 쓰는 로봇의 자아성찰을 담은 <오토페이에시스>.

이번 소설집 역시 구병모 작가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 현실과 통한다. 몇몇 단편은 놀랍다 못해 얄미우리만큼 상황과 심리묘사가 뛰어난다.

이처럼 무한한 상상력도 좋고, 때론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적당히 허물어 내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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