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최근 배우 김혜자씨가 아름다운 이야기라며 시나리오에 반해 '마더' 이후에 5년만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 2014년 12월 개봉예정)"의 원작 소설이다. 

 

직선적인 줄거리, 단출한 등장인물, 친절한 복선, 현실감있는 개연성 그리고 짧고 담백한 문장은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한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다소 엉뚱하고 희극적인 제목마저도 내용 그대로이다. 

 

만약 적당히 당겨진 고무줄 같은 긴장감Tension이 유지되는 것을 '재미'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재미있는 작품이다. 개를 훔쳐 사례금을 받아내기 위한 계획수립으로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독자는 졸지에 공범이 되어 버린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집을 떠나버리고 남은 가족은 집세를 내지 못해 말 그대로 거리로 나앉게 되어 자동차에서 주거하게 된 초등학생 소녀의 이야기다. 순진하게도 500달러만 있으면 셋집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개를 훔쳤다가 돌려줌으로써 사례금으로 500달러를 벌려고 한다는 발칙한 내용이다.


성장소설이라지만 주인공 조지나와 그 가족이 처한 상황이나 배경은 처절하고 처참하다. 조지나의 처지가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채 현실과 너무도 똑같이 그려져있다. 그래서 가슴마저 시리다. 

 

- 그런데 갑자기 루앤이 끼어들어 자기도 그 영화를 엄청 재밌게 봤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아무말 없이 스파게티 가락만 계속 돌렸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점점 커졌다. 이대로 두둥실 날아올라 천장을 뚫고 새파란 하늘로 떠오를 수 있다면.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애들과 함께일 수 없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모두들 팔목에 하나씩 두른 팔찌도 나에겐 없다. 이 아이들이 쇼핑몰을 구경하며 팔찌 등을 사는 동안, 나는 월그린 할인매장 화장실에서 내 속옷을 빨고 있었다. (101쪽)



성장소설이나 동화라고 해서 알록달록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세상을 묘사해도 왜곡된 시선을 강요하게 된다는 누군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현실에서는 좌절도, 괴로움도, 슬픔도 있음을 알려 줄 필요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현실의 암울한 면만을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 두 방향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또 다른 면에서는 불쌍한 조지나의 처지에 대한 연민 내지 동정으로 흘러버려 자칫 감상感傷에 머무를 수도 있었겠지만 꿋꿋한 조지나의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하며 이야기를 따라 가게 된다.

 

분명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가히 '잔혹한 리얼리티'라 할만한 현실 모사模寫때문에 나는 차마 아름답다고 말하기가 조금은 망설여진다. 등장인물들이 처참하게 피튀기며 죽어가는 소설이 아니라 뚜렷한 현실감각으로 풍부한 개연성을 담아 그려낸  이 작품이야말로 '잔혹한 리얼리티'라고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작품에 대한 공감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쳐진 것일수도, 작가의 의도를 오해한 것일수도 있겠다.

 

 

나는 두 눈을 세차게 끔뻑인 다음 발끝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리 비참해도 남들에게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하지만 내 운동화 끝은 거의 헤져 있었고, 그 틈으로 늘어진 파란색 양말 끝이 보일락 말락 내비쳤다. (55쪽)

 



겨우 초등학생이지만 조지나는 힘들고 괴로워 몸부림치면서도 좌절하지는 않는다. 자책하지도, 자학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이 소설이 갖는 장점이며 의미이다. 괴롭고 슬프기 때문에 처참한 현재 상황을 하루 빨리 벗어날 목표를 세워서 실행한다. 조지나는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언정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재빨리 포기하거나 인정한다. 또는 외면 해 버림으로써 스스로를 버텨나간다. 성장소설이라지만 불혹을 넘긴 내게도 느껴지는 것이 많다. 

 

 

 

- 내가 지나갈 때마다, 애들이 내 이름을 들먹이며 킥킥대고 쑥덕쑥덕 하는 걸 들은 것도 같다. '흥, 누가 신경이나 쓴대?' 정말이었다. 나는 그 애들에게 관심을 끈지 오래였다. 심지어 루앤도 관심대상에서 지워버렸다. 요즈음의 나는, 차 안에서 살게 되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을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곤 했다.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서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나를 비웃는 것일 테지. 가령, 나는 멜리사 개빈이 반쯤 먹다 버린 그라놀라 바를 쓰레기통에서 꺼내 윌리용 음식봉지에 담았다. 제이크 샘슨이 나더러 거지라고 놀렸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133쪽)



갑자기 나타난 수상한 등장인물 무키아저씨. 작가는 무키아저씨를 통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조지나와 독자에게 따뜻한 조언을 하고 있다. 


- "하지만, 그런 일을 왜 공짜로 해주는데요?" "왜냐면 말이다, 때로는 나한테 돈이 필요한 것보다 그런 일을 해결하는 게 더 급하거든." 헛소리야, 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은 입 밖에 꺼내진 않았다. 어쨌든 그에게 돈이 아예 없는 것 같진 않았다. 무키 아저씨는 야구 모자를 벗고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말이야, 이 아저씨한테는 신조라는 게 있어. 그게 뭔지 알려주랴?" 나는 흥,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한 법이라는 거다. 너한테도 신조가 있냐?" "아뇨." (207쪽)



어처구니 없는 가난때문에 부숴진 가정이라는 처참한 상황을 설정해 두고 작가가 말하려는 주제가 무키 아저씨의 신조로 표현된 것이다. 


나는 약 15년전부터 주변 지인들에게 PC스펙과 견적을 상담 해주거나 직접 용산에서 부품을 구해 조립해서 설치하고 네트워크 구성까지 해 주고 있다. 무키 아저씨처럼 무보수는 물론 오히려 내돈으로 경비지출을 해오다가 3년전부터는 고맙다며 기름값이라도 억지로 주면 그 손이 민망할까봐 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제는(11월27일) 내가 전날 설치해준 PC의 셋팅을 다시 해야 했다. 시간관계상 PC를 회수해서 용산에 세팅을 맡기면서 퀵서비스 착불로 보내게 했는데 항의전화를 받았다. 왜 착불로 보냈냐고. 반복되는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여 소위 '갑질'을 하는 경우다. 이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한 법'이라는 무키 아저씨의 신조는 이런 현실을 유연하게 극복해야 한다는 충고다. 어떤 경우라도 신조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니까. 

 

 

작가는 특별한 미사여구나 늘어지는 문체를 빌어오지 않고도  상황에 따른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려내고 있다. 누구나 그 시절을 지나왔으면서도 어른이 되면 잊게 되는 감성을 작가만은 잊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조지나가 500달러에 셋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그것을 동기삼아 개를 훔칠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가 어린아이답게 순수하다. 그리고 어렵게 훔친 개, 윌리와 정을 나누는 것 역시도 흐믓하다.

 

한편으로는 조지나가 개를 잃어 슬픔에 빠진 카멜라아줌마에게 접근하여 사례금이 적힌 전단지를 만들게 하고, 사례금은 500달러를 써야 한다고 제안하며, 카멜라아줌마가 그 500달러를 누군가에게 빌리도록 압박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전혀 아이답지 않은 언행에 오싹하기도 하다. 

 

인간의 욕심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는 것이 보편적 사실이라지만 그것이 순수한 어린아이에게 투영되니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작가의 뚜렷한 현실감각과 작품 전반에 흐르는 풍부한 개연성이 돋보인다고 할까? 불편하지만 이미 조지나와 공범이 되어버린 독자는 그 상황에서라면 이 발칙한 초등학생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공감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미리 말하자면 해피엔딩이다. 

공범이었지만 독자가 원하는 결말을 향해 조지나는 그 순수함을 되찾게 되고, 거처없던 가족은 드디어 셋집을 구한다. 

 

보통 해피엔딩에선 더 이상 독자가 등장인물을 걱정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해결 해 주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해피엔딩마저  디테일이 살아있는 리얼리티이다. 

 

집을 구했지만 조지나가 그토록 원하는 바를 모두 갖춘 집이 아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전전세를 들어가는 것이다. 엄마 친구의 친구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이미 세들어 살고 있는 집인데 아이를 돌봐주고 집세를 보탤 사람을 찾다가 조지나 가족과 조건이 맞아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엔딩마저 디테일이 살아있다. 그렇기때문에 독자는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조지나의 희망을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비틀즈의 음악들이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오래된 동요처럼 기본 코드 두세개로 작곡됐다는 것이다. 이런 비틀즈의 음악처럼 이 작품은 아주 단순하고 직선적인 줄거리가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명료한 주제의식이 반영된 훌륭한 작품이다.

 

이제 이 작품이 곧 영화로 개봉된다니 한국식 '개절도'의 해석을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생길 것이다. 

제작진의 삼고초려 끝에 어렵게 출연 결정을 한  배우 김혜자씨가 개를 잃어버린 카멜라 아줌마로 분한다고 한다. 나머지 출연진을 살펴보니 아역 탈렌트 이레, 배우 최민수, 강혜정, 이천희씨이다. 원작의 등장인물이 단촐하다보니 배역이 눈에 보인다. 트레일러를 보면 기본 줄거리 외 나머지는 완전히 새롭게 각색된 듯 하다.

 

이 출연진들이 영화 홍보를 위해 SBS런닝맨에서도 뛴다니 더욱 기대가 된다. 트레일러를 보니 어쩐지 런닝맨과 영화 속 분위기가 비슷할 것 같다.


아름답고 훌륭한 소설 한편이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으로 확대되니 원작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색다른 묘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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