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 금학도 - 이외수 오감소설 '신비'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속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게 창조한 시공간에 독자가 정서적으로 녹아들어 간다면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증가하고 그 몰입 자체가 재미있는 꿈을 꾼듯 한 독특한 경험으로 남게 된다.


보통 잘 짜여진 이야기 하나만 있어도 독자의 몰입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이것이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이며 최근에 회자되는 '스토리 텔링'의 장점일 것이다.

 

이것이 소설이 다른 문학보다 작가의 의도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게 한다. 


최근에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없거나 의도를 알 수 없이 단지 이야기만 빠르게 전개되는 소설도 있다. 하지만 이외수작가의 작품들은 독자의 몰입도를 극대화 시켜 작가의 의도와 내용을 효과적으로 심어준다.

 

벽오금학도는 이외수작가의 대표적 장편소설이다. 마치 오래 전 미국드라마였던 '환상특급'을 보는 듯한 이야기와 시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속에 자연 본연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그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를 주장하고 있다. 또 6.25부터 80년대까지 암울했던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며 이루어진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네 할아버지께서는 세상만물 중에서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미물이라고 하더라도 스승 아닌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아주 작은 먼지 한 점조차도 우주의 절대적 요소 중의 하나라고 말씀하셨어.(중략)그리고 되도록이면 자기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낮추어서 바라보아야 하느니라.(중략)마음보다 머리를 더 많이 써서 하는 공부인 것 같더라만 마음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머릿속에 산더미처럼 들어차 있는 지식인들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학교에 가서 신학문을 배우더라도 너는 부디 마음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본문 91쪽)

 

작가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글들과 최근 발표된 소설집 '완전변태'에 이르기까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풍요롭게, 인성 풍부하게'라는 일관된 작가의 주제이며 찰학이다. 

 

"갑자기 새마을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나더니 초가집들이 차츰 사라져버리고 천박하게 페인트칠을 한 슬레이트 지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중략)전국에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대학은 다시 문을 닫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것이 생겨났고 국민은 이제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수 있는 주권을 상실했다.(중략)그러나 새로운 대통령은 언론을 통폐합시킴으로써 몇 개의 방송국과 신문사가 현판을 내렸다. 그리고 언론기본법이 공포되었다.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시작했고 유비통신流蜚通信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식자識者들은 언론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본문182쪽)

 

지금도 끊임없이 비판의 칼날을 멈추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7~80년대 군부독재정권으로 향한 것이다. 한국만의 기형적 민주주의를 생산한 과거 한국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스승으로부터 꿀이 달다는 정보를 전달받고 그것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상태를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꿀맛이 어떠냐."

"단맛입니다."

그러면 꿀맛을 아는 것으로 간주했다. 꿀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그렇게만 대답할 수 있으면 꿀맛을 아는 것으로 간주했다. 꿀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단지 꿀맛이 달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진정한 꿀맛을 안다고 간주될 수 있을까. 그들은 대부분 진리의 겉껍질을 잠시 매만져보고는 먹고 사는 일에 바빠지기 일쑤였다. 하루 종일 그들은 같은 일을 기계처럼 반복하면서 꿀맛 모르는 인생들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끌고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끌려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었다."(본문 298쪽)

 

세태풍자이기도 하지만 교육문제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작가만의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영하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고 전인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전쟁 이외의 마땅한 방법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끊임없이 약탈을 하고 끊임없이 증오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다. 살인과 방화, 강도와 강간, 권모와 술수, 중상과 모략 등 온갖 수단과 방법들을 동원해서 자기들끼리 서로 몰락해 가고 있었다. 분명한 퇴화였다."(본문 299쪽)

 


이 책을 사두고 읽기 전에 팟캐스트 라디오 '진중권의 문화다방'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먼저 들었다. 이외수 작가 스스로도 이 벽오금학도를 기점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완전변태'까지 작가 이외수를 규정할 수 있는 특징들이 '벽오금학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곳곳에 선보이는 이외수식 감성문체도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이따금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은행나무들이 순금빛 해의 비늘들을 눈부시게 털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실행증 환자들처럼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사양의 그림자를 끌며 탑골공원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목숨들을 가을 햇빛에 널어 말리며 지나간 날들을 회상해 보고 했다."

 

이런 감성문체나 표현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에 시종일관 반복적으로 쓰이면서 이야기 진행을 방해하는 따위의 일은 없다. 이야기 진행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요리 위에 뿌려지는 양념처럼 작용할 뿐이다.


이런 시적인 문장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외수의 글쓰기 공중부양'을 보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을 보면 단어를 하나 선택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유사한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구분하여 두툼한 단어장으로 정리하는 노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고투 속에서 단 한 줄이지만 시적이고 아름다운 표현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벽오금학도는 인간 탐구를 멈추지 않는 작가의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으며 독특한 자신만의 시공간을 창조하면서도 이야기의 전개에 소홀하지도 않는 문학작품이다.


독자를 몰입시키고 사색시키며 감동시키는 문학으로써의 재기능을 다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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