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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평점 :
[불편하기로 작정한 책]
저마다의 기억은 각자의 욕망에 의해 편집된 '그럴듯한 이야기', 즉 판타지에 불과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기 보다 어쩌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심리적 기제가 우리의 기억을 조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억의 저편과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다. 아무리 '다정다감' 한 방식을 택하더라도 불편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드러난 욕망의 민낯이 그리 반갑지는 않으니. 기억의 보수냐 진보냐, 내적 갈등 끝에 또 다른 판타지를 양산할 뿐이다.
뭐 이리 뜬금없는 말을 늘어놓는가 할 거다. 뜸을 들이는 거다. 단지 저자에 대한 선입견과 특유의 글투에 의해 이 책이 저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읽기가 거북할 수 있다. 그러기로 작정한 책이니. 허나 읽을만한 책이다.
[비난을 각오하며]
육아 전선에 뛰어든 이후, 365일 함께 하던 TV와는 멀어진 터라 '황교익'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다.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이 책을 읽은 후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 석 자를 입력하고서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당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국민 지식인 대우를 받다가 지금은 궤변가 취급을 당하고 있는 그다.
작정하고 쓴 저자의 글에 너무나도 쉽게 현혹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다. 이 책에 대한 나의 평은 여론과 그 뜻을 같이 하지 않을 거다. 그저 사적인 견해를 밝히는 자리니까. 그것이 나의 판타지이니까. 어찌하든 각자의 욕망대로 이 책을 기억할 테니까.
[한국 음식에 관한 판타지]
이 책은 음식에 대한 개인의 추억과 한국의 역사를 말한다.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 이야기를 한껏 쏟아낸 듯하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이렇게 비평한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별로 없는 책이다. 괜히 읽었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상하고 고민만 깊어졌을 수도 있다. 기존의 한국 음식 담론과는 그 결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331쪽) 다르긴 하다.
달랑 음식만이 아닌 음식을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등 온갖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읽는 이들은 버거울 수 있다. 그리고 논리 고비를 몇 단계 넘겨야만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기에 자칫하면 자극적인 글투에만 정신이 팔려 핵심을 놓칠 수도 있다. 게다가 계몽스러운 글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먹히기는커녕 '꼰대'에 대한 기억이 강제 소환되어 반감만 증폭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충격 요법적인 효과는 있다고 본다.
우리의 밥상에까지 간섭하는 검은손에 진저리를 치며 더 이상 한국 사회를 신뢰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지만 멍하니 있다가 바보 취급 당하지는 않을 거다. 연예계 뉴스로 대중의 눈을 가리는 수법이 먹히지 않게 된 것처럼.
[맛칼럼니스트의 역할]
저자는 대중의 관성화된 미각을 흔들며 한국인이 먹는 음식에 대하여 쓴소리를 해댄다. 단순한 아집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들을 제시한다. 저자의 주장이 논란거리가 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저자의 주장이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다. 반대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찬성하는 입장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은가. 그저 다양한 의견 중의 하나인 거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나온다면 고수하던 입장을 바꾸면 그만이다.
더군다나 그 누구도 객관적인 현실을 기록하지 못한다. 주관적인, 즉 개인의 욕망이 투영될 수밖에 없기에 '거기서 거기'인 글들이다. 그저 칼럼을 칼럼으로, 판타지를 판타지로 바라보며 즐기면 된다. 핵심은 우리의 식탁에 올려지는 음식에 관한 비판적 사고다. 책을 읽으면서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면 저자는 성공한 거다.
[배움에 대한 욕망]
하나의 음식에 서로 다른 추억이 깃들어 있듯 책도 그러하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서로 다른 옛 기억을 소환하며 읽는다. 책 속의 저자는 내 기억 속 한 철학 교수님과 닮아 있다. 경상도 말투가 한몫 거들며 날카로운 직언을 퍼부으셨던 교수님이다. 교수님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으니 다들 인정하면서도 뒤에서 욕을... 그래도 얻은 것이 가장 많은 수업이었다. 그의 거친 모습만 보았다면 이리 추억하지는 못했을 거다. 거친 모습 뒤에 여린 구석도 있고, 가르침에 대한 열정과 학생에 대한 애정을 엿보았기에 그 교수님과 닮은 이 책의 저자가 나는 왠지 모르게 정이 간다. 소크라테스(Socrates)가 오버랩(overlap) 되기도 하고. 이제는 맛집을 찾듯 저자의 책을 찾아보지 않을까 싶다. 그에게 아직 배울만한 것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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