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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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난데없는 책을 읽고 나니,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작품이 남았다. 비록 맛보기에 불과할 테지만 도스토옙스키에 흥미가 생긴 것은 사실이니.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의 문호다. 세계문학전집에 꼭 들어가는, '죄와 벌'을 쓴 작가라고 하면 그리 낯설지 않으려나. 그래도 난데없긴 하다. 전해 듣기로는, 적지 않은 두께에 상당한 독해력을 요구하는 소설이다 보니 이해하기 쉽지 않다던데, 그 난해한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읽으며 써 내려간 저자의 글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저자가 고백하듯 "문학 전문가도 아닌 순수한 독자로서"(284쪽) 이 글을 썼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제법 잘 쓴 글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른 후반, 저자는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탐독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왜 하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었을까? 저자는 부촌의 아이들을 과외하던 대학생 시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었다고 한다. 현실 도피하듯.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과외를 그만두는데... 자신의 일이 떳떳하게 느껴지지 않았단다. 이 또한 난데없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떳떳한 삶을 살고 싶었던 저자의 선택을 지지해 주지 않았을까. 상사와의 마찰로 회사를 박차고 나온 저자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 줄 사람을 찾듯 도스토옙스키를 찾았던 것이 아닐까. 잘했다고 자신을 토닥여줄 게 뻔하니까.

"다만, 저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 터인데, 나에게는 그것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는 시간이었고, 꽤나 효과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285쪽)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읽기'는 불안정한 시기마다 자신을 위로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저자만의 방법이었다. 소설처럼,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는 오늘날의 청장년들에게 '떳떳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하다. 저자의 소신 발언에 동의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떳떳함이 보기 좋았다.

이 책에 인용된 구절만 보더라도,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데 탁월했던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편향적으로 설정한 것도 모자라 등장인물들을 막장으로 몰아넣기까지 한다. "비록 치정도, 도박 중독도, 출생의 비밀도 아닌 흔한 퇴사에 불과했지만 그 사건엔 삶의 부조리함이 응축돼 있었고, 나는 남루해진 감정을 가눌 길이 없어서 이 모든 감정보다 훨씬 큰 분노와 좌절과 절망으로 꿈틀거리는 도스토옙스키를 읽기 시작했다."(283쪽) 저자는 그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만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구나', '나만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구나'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위로를 받았으리라.

다만, 여전히 현실도피용이 아니었나 싶다. 소설을 매개로 자신을 되돌아보기는 했으나 깊이 들여다보지는 못한 것 같다. 소설에 과도하게 몰입해서일까. 글이 겉도는 느낌이다. 자기 얘기를 남 얘기하듯 하고. 아무래도 합리화하며 서둘러 수습하려다 문제의 본질을 놓쳐버린 듯하다. 미해결된 문제는 반복되기 마련이지만 어찌 됐든, 저자는 위로가 필요했던 거니. 그저 삶에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이들이 읽기에는 괜찮지 않을까. 가볍게.

저자가 소설 속 인물들 중, 하층민임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제 일을 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물에 특히 주목한 것을 보면, 앞으로도 저자는 기생충과 같은 삶을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또다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게 되겠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당장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언젠가 난데없이 그의 책에 손이 갈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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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를 너에게
사노 요코 지음, 히로세 겐 그림, 김난주 옮김 / 샘터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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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새는 익숙한 안데르센 동화 『파랑새』를 떠오르게 한다. 새를 찾아 떠나는 『파랑새』와는 달리, 『나의 새를 너에게』에서는 새가 사람들을 찾아간다. 정확히는, 우표 속의 새가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시,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파랑새』는 극적인 반전으로 '가까이'에서 새를 찾았지만, 『나의 새를 너에게』는 인연에 의해 잃어버린 새를 찾는다. 필연과도 같이.

동화 같은 이야기의 짤막한 소설이지만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책 속에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저자는 독자의 몫으로 돌린 것 같다.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의 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나에게 온 새는, 즉 새의 의미는 '가치'다. 가치를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새와 본 적 없는 글자가 그려진 우표로 형상화한 듯하다. 그 자그마한 우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다양한 삶의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엄마 배에서 태어났을 때, 자그만 사내아이의 이마에는 우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5쪽)

우표는 '우편물에 붙이는 증표'(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다. 누군가가 보냈다는 거다. 보낸 이는 아마도 신이 아닐까. 이 사내아이처럼, 우리는 모두 가치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 그러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즉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 의사는 과학자라서 두 눈으로 본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5쪽)​

사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지 않은가. 저자는 두 눈으로 본 것만을 믿는, 특히 과학자 같은 어른들을 위해 손에 잡히는 우표 속에 새를 그려놓은 것 같다. 안타깝게도 독자인 우리는 그 우표를 볼 수가 없다. 책 어디에도 그 아름다운 우표 그림은 없다. '이데아'와도 같은,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담아야 했으니. 책 속에 그 삽화를 넣지 않은 것은 현명했다.

「 "내가 감이 떨어졌나 보군. 이렇게 조그만 것은 어렸을 때도 훔친 적이 없는데." 」 (12쪽)​​

값비싼 물건만을 훔치던 도둑이 우표를 손에 쥐었을 때, 중얼거린 말이다. 그의 가슴 주머니에 쏙 들어간 우표는 이따금 도둑의 가슴을 욱신욱신 아프게 한다. 아버지가 도둑질을 그만두고 사서가 되었듯 그도 다른 삶을 선택한다. 그렇게 가치는 우리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

「 학생은 모르는 것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은 추워서 곱은 손으로 페이지를 계속 넘겼습니다. 그러다 책 사이에서 우표 한 장을 발견했지요. 본 적 없는 글자가 쓰여 있고, 본 적 없는 새가 그려진 우표였어요. 읽을 수 없는 글자를 보며, 학생은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어.' 」 (21쪽)

이처럼 욕구가 더욱 선명해지기도 한다. 배가 고파도, 방세를 내지 못해도, 추위에 손이 곱아도 책을 읽기에 여념이 없는 그가 이상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가난한 학생의 삶이 낯설지 않다. 물론 생계를 위해 일은 하겠지만, 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도 계속 책을 읽을 것 같다. 지금도 틈만 나면 책을 읽으니.

「 하숙집 아주머니는 시장에 가려고 서두른 탓에 우표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부엌 수납장 서랍에 얼른 우표를 넣고서 그 안에 든 지갑을 꺼낸 다음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 (23쪽)

기회를 잡았음에도, 하숙집 아주머니처럼 삶이 바빠, 가치와 마주할 기회를 쉽게 놓칠 때가 있다. 그러나 술꾼의 아내로 사는 것이 어디 쉬운가. 인정없어 보일지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걸.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 "거참 대단하군. 자네, 이걸 술 세 잔과 바꾸겠나?" 뱃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러고 말고." 하숙집 남편은 그날 밤 마음껏 취할 수 있었습니다. 」 (27쪽)

누군가는 삶의 가치를 겨우 술 세잔의 쾌락과 맞바꾸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잠시 속았다며 그것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반면 누군가는 그것을 소중히 간직한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연인이 죽지 않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의 증표가 되기도 하고, 전쟁터에서 싹튼 '우정'의 증표가 되기도 하고, 단란한 가족의 '행복'의 증표가 되기도 한다.

「 '왜 이런 여자가 부자일까? 내가 훨씬 이쁜데.' (...) '예쁘기만 했지 참 멍청하네. 내가 훨씬 더 똑똑한데.' 」 (60, 61쪽)

목수의 딸처럼 외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곤 한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사람들을 평가하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긴다. 그러던 그녀에게 그 어떤 것보다 빛나는 '사랑'이 찾아온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심술궂은 행동까지 하며 소유하려고 했던 그녀는 이내 잘못을 고백한다. 사랑하므로. 그리고 그녀는 이전과는 다르게, 더 이상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사랑하므로.

「 그녀는 청년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뭐라고 쓰면 좋을지 몰랐어요.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이 우표의 새는 그 사람 거야. 이 새는 그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 해.' 」 (77쪽)

「 청년이 하얀 봉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습니다. 봉투에는 그 신비로운 우표가 붙어 있었어요. 안에 든 하얀 종이에는, '나의 새를 전부 너에게 줄게.'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 (81쪽)

그동안 수많은 새를 그리며 갈급해 하던 청년도, 부와 명예 보다 '사랑'에 올인한다. 저마다 삶의 가치가 다르고,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지만, 그중에 제일은 역시 '사랑'이지 않을까.

「 "하느님도 용서하지 않을 심술을 부렸는데, 왜 나를 용서해 주는 거야?" "나보다 내 그림을 더 좋아해 주었으니까." 그녀가 청년의 이마에 살며시 키스했습니다. "지금은 너보다 너를 더 좋아해." 청년이 말했습니다. "막 태어났을 때 같은 기분이야." 」 (82, 83쪽)

그녀의 덕분에 청년은 잃어버렸던 새를 되찾았고, 막 태어났을 때 받았던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만남처럼,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런 일이 퍼즐 조각 맞춰지듯 일어날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삶의 묘미일 테지. 그래서 삶은 아름다운 것인가.

​새처럼 여기저기를 날아다닌 우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손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저자가 보낸 새를 그냥 놓치지 않기를. 그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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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 침묵으로 리드하는 고수의 대화법
다니하라 마코토 지음, 우다혜 옮김 / 지식너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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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서 침묵이 흐르면 우리는 어떻게서든 그 침묵을 깨려 한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메우려, 음악을 틀거나 TV를 켜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우리는 침묵을 불편해한다. 혹여나 침묵에 빠질까,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침묵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애쓴다. 말재주가 없어 주로 침묵하는 나도 침묵이 편할 리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대화를 잘 하려면 '침묵'하라고 말한다.

묵언 수행을 강조하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그런 책은 아니었다. 저자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습득한 대화의 기술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글을 말하듯이 써서 그런지, 강의를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침묵을 활용한 그의 글쓰기에 설득당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침묵의 힘을 믿을 수밖에.

이 책은 '침묵 사용 설명서'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침묵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사용 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함께 사용하면 좋을 자매품까지 소개한다. 쉽고 친절한 설명에, 이해 못 할 부분이 하나도 없다. 자기계발서답지만, 여느 자기계발서와는 사뭇 다르다. 자기 자랑이 없다. 그러니 거부감 없이 저자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은 테크닉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침묵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임이 분명하지만, 상대를 조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침묵하길 권한다.

"침묵은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지만 입만 다물고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223쪽) 그래서 저자는 침묵의 효과를 높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 책에 덧붙여 놓은 것 같다. 많은 말을 한다고 해서, 입만 다물고 있는다고 해서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상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침묵을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침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이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툼은 대개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상대의 발언을 잘 들어보면 그 나름대로 납득이 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서로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상대의 발언을 중간에 자르거나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끝까지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98쪽) 이 구절을 읽으며 뜨끔했다. 얼마 전에 말다툼한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꾹 참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던 것인데. 그때의 나는 그를 이겨야만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기기는커녕 상처만 남았다. 그리고 관계를 잃었다. 조금 더 이 책을 빨리 만났더라면... 나처럼 후회하는 이가 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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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시 4 : 집 나가기 이야기 파이 시리즈
마르그리트 아부에 지음, 마티외 사팽 그림, 이희정 옮김 / 샘터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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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눈으로 아이를 보면, 아이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흔히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 '개구쟁이', '떼쟁이' 등으로 불리는 아이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엉뚱한 생각이라 여긴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를 선호할 뿐이다. 어른이 말 잘 듣고 착하면 소극적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하면서... 왜 그러는 걸까?

​세상의 틀에 맞춰진 어른들은 그 틀을 깨는 아이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새로운 생각이 세상을 바꾸지 않았던가. 세상에 길들여진 어른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그러려면, 이해 못 할 행동을 하는 아이의 속내를 들어주고, 그것이 다소 엉뚱하더라도 생각의 나래를 꺾지 않는 어른이 필요하다.

「아키시」는 어린이 만화이지만, 어른이 보기에도 좋다.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는 그래픽 노블 graphic novel이라, 완성도 높은 시트콤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어른이 이 책을 보면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하며 추억에 젖거나, "그래 그게 문제지"하며 문제의식을 갖게 되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바라보면, 이해 못 할 아이의 행동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피부색이 다른 캐릭터가 낯설지만, 인종, 국적, 연령, 성별에 상관없이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코트디부아르', 처음 들어본 나라지만 찾아보니 우리나라와 닮은 구석이 많다.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 놀라운 경제적 성장 뒤 IMF를 겪은 나라, 수차례 내전을 겪은 나라.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는 멀지만 가까운 나라다.

​그곳에 살고 있는 아키시는 범상치 않은 소녀다. 아키시의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은 곧 현실이 된다. '삐삐'와 '짱구'의 대를 잇는 캐릭터이지 않을까. 분명, 아이들에게 유쾌+상쾌+통쾌, 3단콤보를 선사할 것이다. 아키시는 어른은 물론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꼬집기도 한다. 특히, 코트디부아르인들을 야만인 취급을 한 프랑스인들을 오히려 야만인으로 묘사하고, 조롱함으로써 인종차별을 풍자한다. 다문화 교육자료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아무도 못 말리는 아키시지만, 이번 편에서 아키시는 추운(?) 프랑스에 갈 위기에 처하는데...

아키시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바로 가출!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꿨을 가출! 가지고 갈 물건들을 하나둘 챙기고는 친구들과 길을 나서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멈출 수 없었던 아키시는 숯 장수 아저씨한테 아빠가 되어 달라고 하기도 하고, 단식투쟁을 하기도 하고, 밤마다 악몽을 꾸는데도 프랑스에 보내려는 부모가 친부모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진짜 부모를 찾기도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열두 살 때 파리로 와 오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는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시리즈라 하니, 아키시는 프랑스행이 확실하고, 앞으로는 프랑스에서의 유쾌한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벌써 궁금하다. 이번 편은 특히 떠나고 싶지 않았던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문제에 대한 아키시의 태도다. 아키시는 문제 앞에서 일단 생각을 한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긴다. 엉뚱하긴 하지만 충동적인 것은 아니다. 난처한 상황에서는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어쩌면 삐딱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우리 어른의 눈이 아닐까? 부모가 된 지금의 나는 아키시의 부모와 같지는 않은지, 아이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무엇보다 아이는 아이답게, 아키시답게 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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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용준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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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인가. 책을 읽을 때면, '책' 보다 '책을 쓴 사람'에 주목하게 된다. 보이는 그의 모습보다 은연중에 내비치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 사람의 내면에 가닿을 때, 거기서 재미를 느낀다. 작정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에세이'는 한 사람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은 도구다. 자기 인식이 어느 정도 되는 내담자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한 인간의 무르익은 스토리를 읽고 있자면 왠지 내가 다 뿌듯하다. 그러다 보면 내 삶도 깊어지는 듯하다. 그 맛에 책을 읽나 보다. 삶을 우려낸 깊은 맛을 음미하고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도 그 깊은 맛이 느껴진다.

이 책은 저자 소개도 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없다. 목차는 있으나 어떠한 짜임도 없이 제목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요즘 너무 친절한 책들만 읽어서일까. 유독 불친절해 보인다. 물론 저자의 정체를 알아가는 재미는 있다. 어느 블로거의 글을 눈팅하듯 가볍게 읽을 만하다. 사색을 즐기는 사람의 연륜 있는 글이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으나, 떫기도 하다. 새삼스런 시각이긴 하지만, 삶에 대한 통찰이라기보다 자기에 대한 나름의 성찰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현란하고 모호하면서 직설적이다. 딱 그 사람 같다. 허풍 같은 글도, 시적인 글도, 지나치게 솔직한 글도 딱 그 사람 같다. 자칫 가벼운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으나 단지 그렇지마는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 이런 생각도 하는 사람이야.'라고 증명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자신의 하루, 그날의 순간들을 끄집어내 한참을 이야기하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끝을 맺는다. 아이러니하다. 돌아보니 시간의 부재와 부질없음을 깨달은 것일까. 주관적인 시간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역설한 것일까. 아무래도 중년 남성의 색이 강한 글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까. 독자가 중년 남성이라면 공감 거리가 많으려나.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일탈과 같은 여행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지만, 이 책 속의 여행은 청춘의 패기 넘치는 여행과 사뭇 다르다. KBS의 <인간극장> 보다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에 가까운 이야기들. 지난날의 아픔은 하나의 무용담 같고, 신랄하게 비난하면서도 친구라 말하고. 쓸쓸하고 칙칙한 그의 글에 '공감'을 누르지는 못할 것 같다. 이 낯선 시간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한 층 깊어지긴 했겠지만, 남성 또는 젊은 여성이 중년 여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듯 나도 그러한 것이리라.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아빠도 그럴 테니.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년 남성들을 위로하는 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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