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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평점 :
이 난데없는 책을 읽고 나니,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작품이 남았다. 비록 맛보기에 불과할 테지만 도스토옙스키에 흥미가 생긴 것은 사실이니.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의 문호다. 세계문학전집에 꼭 들어가는, '죄와 벌'을 쓴 작가라고 하면 그리 낯설지 않으려나. 그래도 난데없긴 하다. 전해 듣기로는, 적지 않은 두께에 상당한 독해력을 요구하는 소설이다 보니 이해하기 쉽지 않다던데, 그 난해한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읽으며 써 내려간 저자의 글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저자가 고백하듯 "문학 전문가도 아닌 순수한 독자로서"(284쪽) 이 글을 썼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제법 잘 쓴 글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른 후반, 저자는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탐독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왜 하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었을까? 저자는 부촌의 아이들을 과외하던 대학생 시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었다고 한다. 현실 도피하듯.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과외를 그만두는데... 자신의 일이 떳떳하게 느껴지지 않았단다. 이 또한 난데없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떳떳한 삶을 살고 싶었던 저자의 선택을 지지해 주지 않았을까. 상사와의 마찰로 회사를 박차고 나온 저자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 줄 사람을 찾듯 도스토옙스키를 찾았던 것이 아닐까. 잘했다고 자신을 토닥여줄 게 뻔하니까.
"다만, 저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 터인데, 나에게는 그것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는 시간이었고, 꽤나 효과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285쪽)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읽기'는 불안정한 시기마다 자신을 위로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저자만의 방법이었다. 소설처럼,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는 오늘날의 청장년들에게 '떳떳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하다. 저자의 소신 발언에 동의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떳떳함이 보기 좋았다.
이 책에 인용된 구절만 보더라도,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데 탁월했던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편향적으로 설정한 것도 모자라 등장인물들을 막장으로 몰아넣기까지 한다. "비록 치정도, 도박 중독도, 출생의 비밀도 아닌 흔한 퇴사에 불과했지만 그 사건엔 삶의 부조리함이 응축돼 있었고, 나는 남루해진 감정을 가눌 길이 없어서 이 모든 감정보다 훨씬 큰 분노와 좌절과 절망으로 꿈틀거리는 도스토옙스키를 읽기 시작했다."(283쪽) 저자는 그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만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구나', '나만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구나'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위로를 받았으리라.
다만, 여전히 현실도피용이 아니었나 싶다. 소설을 매개로 자신을 되돌아보기는 했으나 깊이 들여다보지는 못한 것 같다. 소설에 과도하게 몰입해서일까. 글이 겉도는 느낌이다. 자기 얘기를 남 얘기하듯 하고. 아무래도 합리화하며 서둘러 수습하려다 문제의 본질을 놓쳐버린 듯하다. 미해결된 문제는 반복되기 마련이지만 어찌 됐든, 저자는 위로가 필요했던 거니. 그저 삶에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이들이 읽기에는 괜찮지 않을까. 가볍게.
저자가 소설 속 인물들 중, 하층민임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제 일을 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물에 특히 주목한 것을 보면, 앞으로도 저자는 기생충과 같은 삶을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또다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게 되겠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당장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언젠가 난데없이 그의 책에 손이 갈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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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m.blog.naver.com/counselor_woo/221850991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