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듣는 법 - 분별과 은혜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김형익, <설교 듣는 법>, 두란노 2020



  매주일이면 예배를 위해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어떤 면에서는 예배 자체에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한 행렬로 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분석이 아닐까 싶다. ‘예배=설교’라는 등식이 결코 옳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특성상 교회와 예배의 중심에 ‘설교’가 있다는 현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목회자의 능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능력을 꼽으라면 ‘설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설교자)의 권위는 자신의 설교역량에서 비롯된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설교를 잘하지 못하는 목사에게 권위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이 짚고 있는 문제의식은 설교자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목회자들은 후보생 때부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설교하는 법을 배우는 만큼, 설교를 듣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울 일이 잘 없다. 설교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한 바른 가르침에 무게가 실리는 반면, 성도들의 설교 듣기에 관해서는 ‘그냥 잘 들어야 함’을 강제에 가깝도록 강요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설교에 있어서 좋은 설교자만큼이나 좋은 청중도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균형을 말한다.


  신앙생활을 평균적으로 60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매주 1회씩만 설교를 들어도 죽기까지 약 3,000회 이상의 설교를 듣게 된다. 듣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또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믿음을 배양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듣기인 것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 듯이 ‘들음’ 자체를 방해하는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설교 듣는 법’을 배워야 하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잘 듣는 것이 신자의 구원과 밀접한 연관되기 때문이다.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오늘 내 영혼의 상태는 설교를 들으면서 일어난 반응이 축적된 결과다” p.53


  인생이라는 것도 수많은 말들의 축적의 결과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신앙의 상태가 설교 듣기의 축적된 결과라고 한다면, 인생은 내 삶에 스쳐간 수많은 말들의 축적이 빚어낸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들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 나아가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이해하는 일은 내 삶과 신앙을 결정짓는 극적인 요소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듣기로 작정한 자들이며,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다. 듣는다는 것은 순종하겠다는 말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임무는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바르게 전달하는 일이며, 청중(설교자를 포함한)에게 주어진 임무는 선포된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들은 대로 바로 살아가는 데 전심전력하는 일이다. 좋은 설교자는 좋은 청중들이 만들어 가며, 좋은 설교자가 세워질 때에 청중들이 유익을 누릴 수 있다. 한국교회에 이러한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전하는 이나, 듣는 이나 겸손한 심정으로 ‘듣는 일’이 먼저 될 때 가능한 일이라 믿는다. 바른 설교자 김형익 목사의 진심어린 조언을 귀담아 듣는다면 ‘듣는 자’로서의 바른 자세를 배우게 될 것이며, 신앙생활의 큰 유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설교듣는법 #김형식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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