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설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둠에서 어둠으로, 그 속에서 빛을

『러시아 소설』 [엠마뉘엘 카레르 저/열린책들/2017]

실종된 헝가리인

 주인공은 실종됐다가 56년 만에 돌아온 헝가리인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헝가리인의 자취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 자취를 따라라기 보다는 자취를 찾아서가 더 옳은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헝가리인이 입원해 있었다던 정신병원을 찾기 위해 러시아의 코텔니치를 방문한 주인공을 포함한 제작팀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코텔니치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소설의 시작은 이 헝가리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헝가리인이 가지고 있을 의미에 대해 추측하고 예상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소설이 전개되어 나가는 내내 헝가리인의 등장은 크게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되고, 그때서야 독자는 일종의 맥거핀 효과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게 쉬운 소설이 아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또 그 헝가리인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헝가리인이 아니었다면 주인공이 외조부의 망령을 쫓아내려 다시 코텔니치를 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헝가리인의 이야기가 내게 그렇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이것이 이 어머니의 꿈에 실체를 부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조부의 망령

 주인공에게는 한 번도 보지못한, 어느 날 실종된 외조부가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외조부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머니와 외삼촌이 해주는 이야기, 그리고 외조부가 썼다던 편지들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외조부를 알면 알수록 어머니와 외삼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까지 외조부의 망령이, 저주가 손을 뻗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주인공은 실종된 외조부의 삶을, 죽음을 알게 된다면 외조부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실종됐던 헝가리인이 있었다던 코텔니치로 다시 향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코텔니치라는 곳에서 돌아왔고, 나는 그곳에 갔으며, 또 한 번 가야 할 거라고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 코텔니치는 사라진 누군가가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외조부의 망령이라고 지칭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어머니를 불안에 떨게 하는 그 무언가. 주인공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모는 것만 같은 그 무언가. 주인공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있는 어떤 불안감이 외조부로부터 시작되었고, 외조부의 실종과 함께 해소할 수 없는 불안으로 남겨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조부의 죽음을, 비석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불안을 없앨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코텔니치로의 여행은 주인공 자신을 위한 여행길이며 자신의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주인공의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를 소설로 남김으로써 어머니도 외조부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불안한 사랑

 처음 코텔니치로 떠나는 기차 안에서 주인공은 소피와 섹스하는 꿈을 꾼다. 그만큼 주인공은 소피에게 빠져 있었다. 자신이 이제껏 만난 여자들 중에서 소피만한 여자가 없었으며 비록 자신과는 다른 계층의 사람이라고는 해도, 자신이 꿈꾸던 무언가,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외조부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생각하는 주인공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과 불신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조차도 온전히 믿고 사랑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소피와의 다툼을 반복한다.

다시 코텔니치로 떠나면서 주인공은 외조부의 망령을 내몰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겠다는 기대감을 가진다. 왠지 새로운 자신이 될 것만 같다는 기대감에, 자신이 달라질 것이라 확신하며 주인공은 소피와의 관계도 변화시키기 위해 르 몽드에 소피를 위한 글을 싣게 된다. 왠지 새로운 자신이 될 것만 같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소피와의 관계 개선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과 소피와의 관계를 더 나락으로 내몰게 된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소설은 어둠에서 시작해서 어둠으로 끝이 난다고 할 수 있다. 외조부의 망령과, 찾지 못한 정체감, 소피와의 불완전한 관계의 탈피를 위해 주인공은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남아있던 것은 없애지 못한 외조부의 망령과, 찾지 못한 자신의 뿌리, 그리고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소피와의 관계였다.

난 내 삶 가운데의 2년과 코텔니치와 내 할아버지와 러시아어와 소피에 대해 서술하면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지만 내 속을 갉아먹고 있는 무언가를 포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 정체를 모르고, 그것은 여전히 내 속을 갉아먹고 있다.

 하지만 어둠에서 어둠으로의 수평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둠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분명 빛은 있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같은 어둠이되 다른 어둠이 되었다. 비록 외조부의 망령을 쫓아내지 못했지만 이유모를 공포로서만 다가오지 않게 되었고, 자신을 정확히 명명할 수는 없어도 좀 더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게 되고 이로 인해 엄마를 구제해 줄 기회가 되었다. 소피와의 관계는 끝이 났지만, 비극적기 보다는 헤어짐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비록 여행 전 후에 얻고자 하는 것들은 얻지 못했지만 다른 것들을 얻었고, 주인공에게는 원했던 혹은 원치 않았던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 방향의 변화이든 이는 주인공에게 새롭게 삶을 살아가고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삶을 전환시킬 터닝포인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