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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기의 기적 - 생각을 멈추고 여유를 찾는 뇌의 비밀
스리니바산 필레이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멍 때리기의 기적> '쉼'이 있기에, '일'이 있다.
우리 신체 전체몸무게에서 2%밖에 차지하지 않으면서,
나머지 98%를 지배하는 신경구조의 집합체이자, 우리 인간의 진정한 죽음의 기준이 되는
'뇌'는 알면알수록 신기하고, 밝혀지지 않은 우리 몸속의 '우주'와도 같다.
우리 신경망을 어떤 과학자가 비추어보았을때에 그 모습은, 망원경으로본 우주의 모습과도 같다고 했으니
광활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우주의 형태가 우리 머릿속에 하나씩 달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신비한 뇌에 대해서
보통, 출처를 알 수 없는 속설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머리를 많이 때리면 뇌세포가 죽는다던가' '아인슈타인은 뇌를 20% 사용했을 뿐이라던가'
등등 근거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우리 입에서 전해졌다.
알다시피, 아인슈타인은 천재이지만, 그가 뇌 전체를 사용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위의 속설은 '뇌=지식'으로 생각하여, '아인슈타인같은 천재들도
뇌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얼마나 사용하냐'라고 반문함으로서
뇌를 많이 사용하라고 이야기하는 것같다.
하지만, 우리인간은 뇌의 모든 부분을 사용한다. 비록 천재가 아닐지라도
뇌의 일부만 사용하면, 우리 인간은 '죽거나 장애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뇌마다 담당하는 부분과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뇌의 일부만 사용한다=뇌의 일부기능이 정지되었다.
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뇌는 우리의 죽음의 기준이 되기도한다.
오래전 , 우리는 죽음의 기준을 '심장이 멎을때'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제세동기'도 없었고 '심폐소생술'과도 같은 응급대처법도 없었다.
심장이 멎으면, 그것이 죽음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의료과학이 발전하면서 심장이 일시적으로 멎더라도, 전력이나 사람의 압박을 통하여
다시 뛰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죽음의 기준은 어디로 갔는가?
바로 '뇌'로 갔다. 우리는 흔히 '식물인간'이라 함은 '심장을 포함한 신체는 살아있지만, 뇌가 죽은 인간'을 말한다.
뇌가 죽거나, 정지되면 그 인간은 아무리 몸이 건강하더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의식이 그대로 닫혀진 방에서 잠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뇌'의 우수성을 입증하는데 상당한 내용을 서술한 이유는,
신기하게도 우리 뇌는 심지어 잠들때나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을 때에도
'항시 가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만히 있는 뇌는 무려 20%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오히려,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할때에는 5%밖에 사용하지 않으면서
멍때리는 시간에는 20%의 에너지를 사용할까?
보통, 집중할때에 뇌가 더 활성화되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일텐데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뇌의 일반적인 행동과 실제 뇌의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뇌는 '리듬'을 타며 움직인다. 끊임없이 가동된 '기계'가 '과부화'에 걸려 퍼지듯이
뇌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독창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평상시에는 떠올리지 않으면서,
샤워를 하거나, 애완견과 산책을 하거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불현듯,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휴식을 취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활동을 위해 기운을 차리는것
이것에서 뇌는 더 큰 힘을 얻는다.
한 마디로, 쉼이 있기에 일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 인기 만화인 '데스노트'에서는 L이라는 천재 세계탐정이 떠올렸다.
이 탐정의 기행은 '단 것만 먹는 것'이라는 점인데, 어느 누군가
'단것만 먹는데 어떻게 살이 찌지않았느냐'라고 물으니
'단것을 먹어도 뇌를 사용하면 살이 찌지 않는다'며 반문한 적이 있다.
어찌보면, 우리 인간에게 항상 활동하는 뇌에게서
'쉼'은 '새로운 원동력' 인것처럼 이 탐정에게는 '단것'이 '뇌'를 '휴식'시켜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