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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해적의 세계사
다케다 이사미 지음, 이정아 옮김 / 생각의길 / 2023년 2월
평점 :

나는 역사서나 교과서에서 배우는 이야기보다 야사에서 더 재미를 느낀다. 야사는 실제 있었던 사건에 이런저런 양념이 가미되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험을 위해 무조건 암기했던 하나의 사건은 많은 인과관계, 이해관계 등이 섞인 조합이다. 역사적 의미로만 전달되는 사건들의 그 뒷이야기는 매우 구미가 당긴다.
영국이 약소국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는 과정에서 무역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는데 이것은 해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해적 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였다는 사실에 나는 2023년 3월에 이 책을 읽고 놀랐다. 나의 소견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끼며 눈과 귀를 확장하고자 다짐한다.
실제로 졸업하고 전공을 살리지 못했지만 나는 항해 전공자이다. 학과 과정으로 학교 실습선을 타거나 상선을 타거나 선택하여 1년은 승선 생활을 해야 한다. 나의 경우 1학기는 학교 실습선, 2학기는 지금은 없어진 회사의 상선을 탔다. 광탄선 이었던 배는 길이가 300미터가 넘고 폭이 55미터의 크기로 파나마운하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 광양에서 동남아와 인도를 돌아 희망봉을 돌아서 브라질에 도착하는 항로였다. 당시는 동남아 쪽에 해적 출몰 보고가 드물지 않게 있었다. 해적 출몰 지역을 지날 때 주의 사항, 준수 사항 등이 수시로 문서로 내려왔다. 실제로 해적을 만난 적은 없지만 배를 타면서 해적 당직을 서고 해적들이 배에 올라오지 못하게 선수, 선미등 배의 곳곳에 바다를 향해 물을 틀어 놓고 그것을 점검하는 일도 했었다. 해적선은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배가 크지 않아 일단 상선과 같은 큰 배를 약탈하기 위해서 배에 오르는 것을 강한 물을 쏘아 막는 것이었다. 최첨단 장비와 성냥 개비의 싸움이다. 사실 해적의 표적이 되면 살아남기 힘들다가 정설이다. 사람들은 살해되고 배에 있는 고가의 항해 장비는 암시장에서 매매된다고 했다. 그게 내가 듣고 경험한 해적이다.

영화나 책에서 그려지는 해적의 이미지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이건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영역이다. 영국 여왕 그러니까 영국이 부국강병을 이루는 발판이 된 것이 해적 머니란다. 당시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강국에 힘이 밀린 영국은 무역으로 성장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해적을 이용한 약탈로 고가의 은, 금, 향신료들을 얻어 여왕에게 헌납했다. 그들의 주요 약탈 상대는 스페인 범선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드레이크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여왕에게 기사 작위도 받고 플리머스 시의 시장이 되었다.
해적은 보통 약탈과 동의어로 통한다. 그런데 한 나라의 여왕이 해적 활동의 수장이었고 실제 해적 작전으로 강적 스페인에 대적했다. 15년간의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지만 영국의 약전체 작전이라고 불리는 해적을 통한 약탈과 정보전은 생각보다 강했다. 영국은 개신교 국가로서 가톨릭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이용해 개신교 약소국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스페인이 영국을 공격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그보다 이른 시점에 오히려 선공을 날린다. 어찌 보면 기사도 정신과 어긋나는 듯한 그들의 전쟁 방법으로 많은 해적들은 승리를 이루었고 실질적으로 영국의 정규군은 해적의 전법과 경험에 편승한 것이다.
영국이 동인도를 통해 실질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해적들의 건의 때문이었다. 사실 여왕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및 네덜란드가 선점한 무역 시장에서 영국의 장래를 밝게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적 머니가 동인도의 향신료, 커피 등에 눈을 돌리면서 해적 머니는 무역 시장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영국에 감자와 담뱃잎을 처음 들여온 사람도 해적이다. 롤리라는 해적은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엘리트 해적이었다.
유럽에 설탕이 의약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사탕수수 열풍이 분다. 노동집약적 작물의 재배를 위한 노동력은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였다. 당시 노예무역은 포르투갈의 독점이었다. 여기 대외적으로 밀수를 강력히 금지한 영국 여왕은 노예 밀수를 위한 최대 투자자이자 지휘자였다. 그러나 18세기 무렵부터 영국 정부에게 해적은 이전의 존재와는 다른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이제 영국 정부의 정면에 해적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자로 전락한다.
책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해적 이야기 중심에서 동인도 회사로 시작해 영국의 클럽 부흥에 대한 다양한 비즈니스 이야기는 100년 동안 영국을 홀렸던 커피의 시대가 저물고 홍차의 나라로 탈바꿈하게 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실 해적이 궁금해서 이 책을 펼친 사람으로 다른 이야기로 전도되는 느낌이 좀 아쉽기는 하다.
책을 덮으며 문득 드는 생각이다. 제국주의가 시작되면서 세계 곳곳에 식민지 쟁탈전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의 출발은 신 앞에 평등을 외치는 종교인들이었다. 박애를 주장하는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잔인함과 탐욕, 그리고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탁월한 외교력과 빠른 정보력 뒤로 만들어내는 거대한 자금력의 실체를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에 옳고 그름을 갖다 댈 수 있을까? 모든 역사의 진실은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정의는 없다. 모든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결국 내가 갖지 않으면 빼앗긴다.
스페인 선박을 습격하고 재화와 보물을 약탈하려는 경제적 목적 외에 해적들을 해군으로 편입하는 등 전쟁 기계로까지 활용했던 배경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정적인 로마 가톨릭 세력에 포위되었다는 가혹한 정치 상황 때문이었다.
p77
실제로는 스페인 식민지 각지를 습격하고 보물선을 약탈하는 데에 가담한, 역사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모를 해적들도 존재했다.
p96
해적과 무역 상인, 성질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을 겸업하는 사람들이 '모험 상인'의 정체다.
p110
원래 동인도 회사는 동남아시아 지역,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육두구나 정향 같은 향신료를 독점 수입하기 위해 설립한 단순한 무역 회사일뿐이었다. 그러나 대영제국 발전의 역사와 함께 이 무역 회사는 정부의 권한을 대행하는 강력한 행정 기관으로 탈바꿈했다.
p146-147
영국이 노예무역에 관여한 때는 1560년대이고 영국 의회가 노예 무역을 폐지한 때는 1807년이다. 하지만 폐지 이후에도 노예 밀수는 한동안 계속되었고 최종적으로 노예 제도가 폐지된 때는 1833년이다. 다시 말해 영국은 16~19세기에 걸쳐 약 270년간 노예무역을 쉴 새 없이 이어왔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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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