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에디터스 컬렉션 1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독자에 따라 각기 다른 책이 된다. 특히나 소설이 더 그런 느낌이다. 논리적인 글쓰기와 다르게 삶이 녹아있고 그 안에 비유를 섞은 문장 그리고 관계의 상대성으로 인해 읽는 이에게 각각 다르게 전달되지 싶다. 특히나 삶에 대한 무게가 남다른 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다른 책보다 더 다양하게 읽히지 않을까 싶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에 내가 읽은 두 번째 책이다. 그의 자전적 소설인 <인간 실격>을 읽고 일반인의 평범함과 다른 삶을 사는 그를 향한 삶의 무게가 궁금했다.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다자이 오사무란 이름이 다시 눈에 띄었다. 이번에도 궁금했다. 그의 내면이...


일본의 전쟁으로 몰락한 귀족 집안은 결국 가난으로 내몰린다. 평민과 차별되는 귀족의 품위와 고귀함이 경제적 무능으로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준다.

사랑스럽고 기품이 느껴지는 어머니와 그의 이혼 한 딸 가즈코 그리고 아편에 중독된 아들 나오지의 이야기다. 단란한 가족을 이야기인듯하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몫으로 스스로 해결한다. 그게 해결이든 도피든 포기든 말이다.

점점 힘을 잃어가다가 결국 병으로 돌아가시는 엄마의 마지막 그리고 엄마의 죽음 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동생 나오지와 아무 생각 없이 한 키스 후에 사랑에 빠져 우에하라의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한 가즈코의 삶의 방식은 독특하다.


귀족의 삶을 살다가 가장의 죽음으로 냉정한 세상에 던져진 가족은 결국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점점 힘을 잃어간다.

돈이 부족하면 어떻게든 벌 생각을 해야 하는데 가진 물건과 옷을 팔아 귀족 생활을 유지하려 한다. 망가진 귀족이더라도 품위와 기품을 유지하려는 나오지는 결국 세상으로부터 도망간다. 그에게 최고의 방법은 약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사랑에서도 도덕이 아닌 자신의 비겁함에 진다. 나에게 가장 특이하게 다가오는 인물은 화자인 가즈코이다.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이를 사산한다. 그리고 동생 나오지가 말한 돈을 전달하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우헤하라와 키스를 하고 6년 동안 그를 짝사랑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후에 결국 그를 찾아 떠난다. 그녀의 사랑의 최종 목표는 우헤하라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가즈코는 우헤하라의 아이를 임신한다. 책의 마지막은 가즈코가 우헤하라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로 마무리된다. 그녀는 말한다. 그에게 어떠한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다만 그녀는 아이가 태어나면 우헤하라의 부인에게 아이를 안기면서 동생 나오지가 어떤 내연녀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라고 말하겠다고 한다.

같은 사람 아니 여자로서, 아니 엄마로서 나는 그녀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지만 끝까지 가즈코와 나오지를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했던 엄마의 간절함이 더 와닿는다. 그 간절함을 뱀이 물고 가버린 듯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뱀이 태어나지 않게 뱀의 알을 태우려 했던 가즈코의 행동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어미 뱀 말이다.


나에게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다자이 오사무의 느낌은 퇴폐이다. 이 책에서는 화자인 가즈코의 열렬히 사랑하지만 무언가 특이한 마음과 무심한 듯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우에하라의 일방통행인지 쌍방통행인지 헷갈리는 그들의 사랑이 그렇다. 또한 유부녀를 사랑하지만 결국 도덕이 아닌 용기에 진 나오지의 절절한 사랑도 그 시절의 우울을 담았다. 전쟁으로 인해 혼란한 그 시절에 혁명이든 사랑이든 그게 무엇이든 사양스럽다.


어머니의 얼굴은 조금 전 그 쓸쓸하고 슬퍼 보였던 뱀과 닮았다. 그리고 내 가슴속에 있는 살무사처럼 꿈틀거리는 흉측한 뱀이, 이 슬픔에 사무쳐 차라리 아름다운 어미 뱀을 언젠가 잡아먹어버리지는 않을까, 왠지, 무엇 때문인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p21

타 죽을 상념. 괴로워도 괴롭다는 한마디, 아니 일언반구 입 밖에 낼 수 없는 고래의 미증유, 사상 유례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지옥의 육감을 가장하지 말라.

p73


기다림. 아아, 인간이 삶에는 기뻐하고 화내다가 슬퍼하고 증오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지만, 그래도 인생의 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감정들이고 나머지 99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사는 것 아닐까요.

p111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만 하는 존재라면, 이 사람들의 이런 삶의 모습도 원망만 할 건 아닐지도 몰라.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숨 쉰다는 것. 아아, 그건 무슨, 고역을 감내하며 치러내야 할 대과제란 말인가.

p159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내 도덕적 혁명의 완성입니다.

p188



#일본소설 #사양 #다자이오사무 #문예출판사 #일본베스트셀러 #리뷰어스클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