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설은아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3월
평점 :

이 책의 제목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2018년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첫 발을 뗀 관객 참여형 전시다. 전시장안에 여래 대의 다이얼 전화기가 놓여 있고 수화기를 들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전시장 한쪽에는 공중전화 부스가 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 녹음된 목소리가 부스 밖 다이얼 전화기에 전달되어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닿는다.
미사여구 하나 없는 이야기들. 숨소리, 머뭇거림, 떨림, 가슴속에 묻혀 있던 한 사람의 깊은 고백에 사람들은 서서히 집중한다.

진정한 소통 한 조각이 이 세상 혹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러 설은 아는 국내 웹아트 1세대 작가다. 20년간 재직했던 일을 떠나 그녀는 2018년 12월부터 소외된 소통을 주제로 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를 선보였다. 3년 동안 약 10만 통의 목소리를 모았고 전시가 없는 날도 1522-2290을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남겨지고 있다.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 언제나 그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p7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세상에 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가고 끝내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생로병사의 수많은 순간순간 우리는 무엇을 품고 가는 걸까. 내 삶은
10대의 어정쩡한 방황: 분노에 가득 찬 하루를 살았던 거 같다. 그러나 그 감정이 이제는 희미해서 이것이었나, 저것이었나 헷갈린다. 심지어 내 감정이 맞았던 걸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20대 고삐 풀린 방황: 집에서 나와 타지에서 맞은 20대의 청춘은 10대의 분노를 원 없이 표출했던 때이다. 가슴속 답답함을 술과 관계로 풀었다. 그런데 첫사랑도 그 이후의 연애 상대의 감정도 희미하다.
30대 침잠하는 방황: 그동안의 방황을 접고 이제 어른이 되었나?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겪게 되는 우울감이 나를 가격한다. 가장 최근인데 가장 내 머릿속의 지우개인 시절이다.
40대 방황 끝: 이제야 정신 차리고 나의 모습에 조금씩 눈을 떠가고 있다. 나의 상처와 주변의 상처 그리고 화해와 사과의 시간들이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진정 위로가 되었던 건 "괜찮아, 힘내."라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p347
10만 통의 부재중 통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단 단어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사랑, 행복, 엄마, 사람, 미안, 아빠, 힘듦, 생각, 친구, 고마움이란다. 그리고 의외로 불특정 다수에게 남길 말이 가장 많았고, 혼잣말과 스스로에게 하는 독백이 그다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람, 슬픔, 괴로움, 안타까움, 미안함, 싫음 등의 부정적 감정이 사랑, 고마움의 긍정적인 감정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알지 못하는 타인이 남긴 말들에 어는 순간 집중하며 듣고, 자신 또한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메시지를 남긴다. 그들이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한 말들이 삶을 살면서 한 번쯤은 나도 스쳐가며 겪었던 것들이라 그때의 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내 삶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것이다. 왜냐 남의 것이 아무리 무거워도 그건 내가 들고 있지 않기에 나의 무게만 내가 직접 들고 있기에 그 무게의 짓눌림은 본인에게 가장 무거운 것이 되는 것이다.

나를 한 걸음 멈추게 한 곳은 침묵 후 통화가 종료된 다수의 부재중 통화였다. 그들이 끝내 입 밖으로 꺼낸 그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을 아직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상처를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일까.
2019.02.22.~2019.02.27.
세상의 끝,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
첫해에 모인 부재중 통화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p256
'이곳에 내 목소리가 놓아지면 좋겠다'라는 장소가 나타날 때마다 잠시 멈춰서 그곳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세상 끝의 바람 속으로...
평범하다는 것이 그렇게 나는 부럽더라.
61,235번째 통화
나는 여전히 당신이 그리워. 돌아가지 못하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인지 넌 몰라.
25,933번째 통화
딱 1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자.
13,702번째 통화
쓸데없는 인연에 집착하지 말자.
나 자신을 더 사랑해 주자.
17,675번째 통화
늘 불안한 내 삶이라 여기고 버텨왔으나, 정작 그 불안함의 출구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불안할래요.
72,801번째 통화
포토에세이 #세상의끝과부재중통화 #설은아 #수오서재 #리뷰어스클럽
#10만통의부재중통화들 #노희경작가추천에세이 #15222290 #누군가의고백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