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불시착
박소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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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의 능력은?

그리고 이십 중후반 후에 들어간 회사에서의 나의 능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능력자이기 보다 어쩌면 스스로가 가끔 나 고무관 아닐까 의심하는 평범을 위해 죽어라 달리지만 그 평범 아래 어딘가를 맴도는 그저 존재감 없는 평범한 회사원.

걷는 자 위에 뛰는 자 그리고 그 위에 나는 자.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에 사는 사람은 제쳐두고라도 난 걷는 자 무리 중에 과연 어디일까? 어정쩡한 능력을 가지고 무한 경쟁의 바닥에 던져진 나는 재능을 탓하고 있는가? 시대를 탓하고 있는가?

 

회사형 인간에서 커리어의 방향을 전환하고 글을 쓰고 강연하는 삶을 사는 중이라는 작가님. 직장인만이 느낄 수 있는 순간의 희로애락을 아주 자세히 그려서 참으로 놀랐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 나의 신입시절에 나의 무능함에 뒷목 잡았을 사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8개의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다.

막내가 사라졌다.

어느 날 회사 막둥이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퇴사하겠다는 문자를 띠링 날려주시는 신박한 황당함이란. 그리고 대리인에게 퇴사 관련 절차를 맡기도 본인은 여행 중. 남겨진 자들의 황당함을 수습하기도 전에 그에게 갑질을 했던 선배 직장인들의 두려움? 나도 신입 시절이 고단했지만 그 고단함을 시간과 함께 묻어두고 어느 신입에게 업무 연찬이라는 이름하에 갑질과 횡포를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쪽에서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끊어졌다. 가장 연결하기 편하고 만만했던 막내가 일 년에 한 번 들르는 본사 회장님보다도 만날 방도가 없어지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막내가 말한 대리인을 얌전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p17


가슴 뛰는 일을 찾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아빠, 치과 의사인 엄마를 따라 꼬맹이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러 다닌 혜진. 해외 봉사 중 대규모 지진으로 엄마를 잃는다. 봉사하는 것은 운명으로 여기고 NGO에서 일을 시작하지만 정작 돈에 가장 민감한 이 구역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낀다. 남자친구의 부탁에 한번 인사나 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난 남친의 엄마의 주제넘은 관심과 지적질 그리고 혜진 집의 배경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 쿨한 한방을 날리며 관계를 정리한다. 우리는 모두 속물이다. 그 속물근성을 어떻게 표현하는 강에서 우린 쓰레기도 될 수 있고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

나는 아주 일부분을 좋아하는 것뿐이면서 안 맞는 일로 가득 찬 일을 직업으로 골랐다. 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

p73-74

 

전설의 앤드류 선배

입사 연차로 치자면 임원급인 선배. 그의 무능함과 뻔뻔함 그리고 뺀질함 사이에서 지연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결국 선배는 큰 사고를 치고 대표이사의 조치로 자문 위원으로 대전사무실로 발령이 나지만. 그건 해고나 다름없다. 지연은 출중한 외국어 능력자에 밀려 본인 프로젝트 담당자에서 밀려나게 되면서, 그 선배와 자기의 모습이 겹쳐짐을 애써 외면한다. 결국 선배를 회사에서 잘리게 되고 끝까지 식사를 거절했던 지연에게 차를 마시면서 선배로서 미안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연은 진심으로 잘 지내라고 인사를 건넨다. 내가 못마땅해하는 누구의 무능력이 어쩌면 내가 가진 능력과 비슷할지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무능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쁜 의도는 없지만 내 생활을 엉망으로 만드는 무능함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말이다.

p113-114

 

재능의 불시착

방향 감지 능력이 뛰어나고 무게 측정 감각이 좋은 준. 그러나 그 능력은 현대 사회 아니 직장에서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3년 동안 근무한 게임회사에 구조조정으로 이직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같이 면접을 본 진수를 따라 봉사활동을 가게 된다. 거기서 만난 약골처럼 보이는 40중반의 아저씨와 한 팀으로 작업을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게임계의 레전드였다.

그리고 포도를 박스 키로에 맞게 담은 준은 유명 인사가 되고 뒤풀이 자리에서 방향을 맞추면서 여기저기 명함을 받게 된다. 그의 나이 32. 불시착을 운운하기에 아직 너무 창창하잖아?

공간이 널찍 할 때는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었지만, 공간이 좁아지자 준의 발밑부터 가장 먼저 위태해진 것이다.

p131


누가 육아휴직의 권리를 가졌는가

지금 현재 육아 휴직자로서 아빠의 휴직에 박수를 ㅋㅋ 아직도 육아는 공동의 일이 아니라 남자가 도와준다는 생각이 조금 더 강하다. 왜 여자가 하는 육아 휴직은 당연하고 아빠가 하는 육아 휴직에는 대단한 아빠 남편이라는 호평을 받아야 하는가? 저출산 시대에 출산은 애국이라지만 현실은 애국이고 나발이고 먹고살기 바쁜 직장에서 민폐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누구는 권리인데 당연히 눈치 보지 말고 써야지라고 말하지만 나의 당연한 권리로 인해 누군가는 나의 몫을 감당해야 하니까. 그래서 한편이 자꾸 불편하다. 아내와 같이 공동육아를 할 생각에 희망(?)에 부풀었던 하대리. 그러나 부푼 꿈은 아내의 복직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가장이었을 때 자신의 과거 태도와 현재 가장인 아내의 지금 태도가 하대리를 반성(?) 하게 한다. 어찌 보면 이 시대 모든 부부의 고민거리 이지 싶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해결이 없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 애들이 자라야 끝나는 전쟁이다.

오늘은 나 홀로 육아 64일째, 육아는 예측값이 제멋대로인 빌어먹을 분야였다. 나는 삼십사 년 인생 동안 알지 못했던 이 사실을 매일같이 깨닫는 중이었다.

p183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

생각지도 않게 순간의 어리바리함으로 민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이불킥 하며 잠 못 드는 밤이 되지. 그 순간 당황하여 나의 어리바리함이 아니고 너의 실수라는 확신에 찬 한마디를 날릴 수 없는 나란 자의 어리숙함이 참으로도 싫었다. 하지만 나만의 소심한 복수를 나는 던진다. 받는 자는 절대 모르고 나만 아는 그 소심하고도 소심한 복수 한방!!

세상은 지뢰 투성으로 어디서나 미친 진상이 존재할 수 있음을 명심할 것. 어린이집 선생님인 재영은 A 부모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공공기관에 일한다는 A의 아버지와 A의 엄마의 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느 날 재영은 차에 치이는데 그 차 운전자가 A의 아버지다. 뺑소니와 명예훼손과 협박에 그리고 성희롱에 대한 고소로 A의 부모의 태도는 안하무인에서 급 공손해지는데 이는 과연 진정한 사과일까 순간의 위기 모면을 위한 방법일까?

뭐래, 이 미친놈 새끼가.

p226

 

노령 반려견 코코

결혼 전에 남편이 키우던 반려견이 있었다. 세리라는 이름의 요크셔테리어. 내가 봤을 때도 이미 중년을 넘겨 할머니의 자태를 뽐내고 있던 그녀. 남편과 둘이 지냈던 세리는 결혼 후 신랑보다 나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신랑이 많이 서운해했지. 그렇게 세리는 우리 옆에서 하루하루 늙어 갔다. 어느 날 가족 여행을 가는데 평소에는 세리를 애견 호텔에 맡기고 갔었는데 그때는 세리를 집에 둬야 할거 같다는 느낌에 집에 남겨두고 우린 떠났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온 날 세리는 우리에게 와서 덜덜 떨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둔 잠든 밤에 자기 침대에서 조용히 이 세상과 이별했다. 나보다 신랑에게 상실감이 컸으리라. 아버지 돌아가시고 신랑이 유일하게 의지한 존재가 세리였으니까. 반려견은 생가보다 큰 자리를 차지한다. 반은 여우고 반은 아기고 그렇게 애교를 부리며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하지. 17년을 으르렁대고 싸우면서 정이 든 몰티즈 믹스견 코코. 선우의 인생 가장 중요한 순간 코코는 늘 선우를 위로했다. 그리고 17년 생의 마감을 앞두고 발작을 하는 코코를 위해 가족 돌봄 휴가를 신청하는 선우. 다행히 경아의 도움으로 휴가를 신청받아 코코아 함께 있게 된다. 반려견과 이별은 사람의 이별과도 비슷할 것이다. 어느 누가 내가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문 앞까지 나와서 좋다고 반겨줄까?

"아뇨, 다시는 안 키워요. 너무 후회해요. 그렇게 금방 죽는 존재에게 말도 안 되는 사랑을 받고, 마음을 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거든요. 알았으면 시작도 안 했을 텐데."

p283


언성 히어로즈

인생 선배랍시고 남자는 남자가 안다고 진국인 남자 갖다 붙이지 마라. 그런 거 안 해줘도 청춘들은 알아서 연애한다. 신입 시절에 그 막막함 그리고 무안함의 연속인 일상에서 자존감 바닥 뚫고 내려가며 정말 내가 하찮은 인간 싶은 그 기분!!! 누구에게나 신입 시절 흑역사는 있다. 그걸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보이는 차별이 명절 선물이다. 사람이 참 그런 거에 기분 상하지. SNS 달리는 달랑 몇 줄의 글이 머라고 사람을 울리고 화나게 하고 글은 칼보다 강하다 강해. 맞벌이 부모님 대신 내 졸업식에 오신 학교 앞 분식집 사장 할머니.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최애템은 트로트 방송. 교통사고로 왼쪽 팔을 잃은 준우에게 의수를 붙여준 벤처연구원들. 우리는 '세렌디피티'처럼 뜻하지 않게 나를 구해주는 무명의 영웅을 인생에 반드시 한 번은 만나게 되어있다.

내가 만난 많은 그들이, 삶에 잡아먹히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p334

 

각자의 길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불시착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들은 응원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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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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