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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의 상상극장 ㅣ 걷는사람 에세이 26
오세혁 지음 / 걷는사람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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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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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 극작가의 첫 에세이. 201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아빠들의 소꿉놀이」가,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크리스마스에 30만원을 만날 확률」이 동시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오세혁의 유머러스한 산문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연극이라는 꿈을 가지게 된 과정부터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친 이들과 나눈 다정하고 애틋한 감정까지. 그의 궤적을 따라 평화롭고 때로는 치열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없이 아름답고 몽글몽글한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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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 입 안에서 기분 좋게 터지는 식감처럼
머리에서 토독토독 터지는 기분 좋은 얘기들로 가득하다.
특히 살갑지 않은 사이인 아버지와 설렁탕 먹는 소리로 대화를 했던 일,
숨이 잘 안 쉬어져 의사에게 찾아갔더니 쉴새없이 말하게 해 숨을 잘 쉬게 해준 경험을
친구한테 쉴새없이 말하며 자랑하려다 역으로 당해버린 일ㅋㅋㅋ,
신랑 어머님과 신부 어머님이 스포트라이트 받는 결혼식을 만들어준 일 등
아래에 책갈피로 넣기에는 길어서 함께 올릴 수 없지만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고 마음은 뭉클해지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어떻게 극작가가 되었고 그 일을 어떻게 수행했는지를 자세히 쓰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더 기분좋은 자극을 받아서
'이런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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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날, 아이들은 누구 이야기가 진실인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 이야기가 더 재밌는지 투표를 했고, 내가 졌던 것 같다. 더 재밌는 건 그날 이후 극장에 새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영화를 봤다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아이들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었다는 것이다. 같은 제목이었지만 아이들마다 주인공과 장르와 주제가 달랐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나면 꼭 투표를 해서 누가 승자인지 가렸다. 모두가 관객인 동시에 창작자였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오히려 무엇이건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우리만의 상상의 극장이었다.
22~23p
친구들을 정기적으로 초대해서 술을 마셨다. 친구들이 떠날 때 부탁을 했다. 십 분의 시간을 줄테니 내 방 책장에서 갖고 싶은 책을 딱 세 권씩만 가져가라고. 친구들은 반색을 하며 책을 골랐다. 친구끼리는 닮아 가는 것인지, 정말 좋은 책들만 챙겨 갔다. ㅇㅇㅇ의 소설집이 사라지고, ㅇㅇㅇ의 시집이 사라지고, ㅇㅇㅇ의 에세이가 사라졌다.
친구들이 떠나고 책장의 텅 빈 칸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더 많은 책이 사라질 것이고, 내 많은 기억이 홀가분해질 거라고. 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 나는 계속해서 책장의 텅 빈 칸만 바라보고 있엇다. 텅 빈 칸을 바라보면 사라진 책이 떠올랐고, 사라진 책을 떠올리면 사라진 기억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몇 해가 지난 후,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책을 주문했다. 새로운 책이 아닌 ㅇㅇㅇ의 소설집을, ㅇㅇㅇ의 시집을, ㅇㅇㅇ의 에세이를 주문했다. 사라진 기억을 딱 한 번만 다시 읽어 보고 싶어서.
48p
음악 얘긴지 인생 얘긴지 모를 말을 취기 삼아 던지면, 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답변인지 물음인지 모를 그 말이 왜 이렇게 위안이 되었는지. 난 그 변함없는 답을 듣기 위해 쉼 없이 연락해서 그를 괴롭힌 것 같다. 그게 참 미안해서 어느 날은 술 한잔을 앞에 놓고 그의 얘기만을 계속 들었다. 오랜만에 취한다며 온갖 얘기를 쏟아내던 그는, 마지막 잔을 마시며 이런 이야길 했다.
"오랜 옛날에, 세상을 알 수 없어서 두려웠던 사람들은, 세상의 답을 알려 줄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대요. 얼마나 멀리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죠. 그곳까지 닿을 소리를 위해서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음을 찾으려고 노력했대요. 아마도 그게 음악인 것 같아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가 왜 그렇게 말과 음악 사이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찾으려고 했는지.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해 두 개의 언어를 오가는 그가 오래오래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136~137p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geodneunsa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