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압축소멸사회
#이관후
#한겨레출판

💡
2025년의 첫 책
여러모로 뒤숭숭한 정세에 딱 맞는 책이었던 것 같다
정치를, 사회를, 국제정세 안에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조망해야 하는지를
시국에 맞게ㅎㅎㅎㅎ 잘 배웠다
단단한 머리와 단단한 마음으로 앞으로를 지켜보고
내가 할 일을 찾는 데에 도움을 받은 것 같다

🔖
절대적 의미의 소멸이란 이 세상에 존재했던 무언가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기억되지도 못한 채 완전한 무존재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설령 그 자취를 발견한다고 해도, 이전에 존재했던 그것의 의미를 전혀 알 길이 없어 발견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태일 것입니다. 있던 것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인 셈입니다.
이런 소멸은 실로 무시무시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소멸할 것입니다. 인류도 마찬가지겠지요. 지구나 태양계, 그리고 이 우주까지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다만 그 시간이 광대해, 잘해야 100년을 사는 인간에게는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이처럼 소멸은 인간에게 대단히 분명한 것이면서 동시에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9~10p

둘째는 우리의 소멸이 실패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공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압축 성장'에 성공했기 때문에 '압축 소멸'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한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스빈다. 그것도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문명적 근대화, 경제적 산업화, 정치적 민주화를 모두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성공했는데 지금의 위기는 그 성공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여이든 산업이든 교육이든 집중과 선택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서 성공했는데, 그 효율성의 극단에서 우리는 갑자기 소멸의 위기를 맞은 것이니다. 한국 사회가 근대 문명의 효율성을 누구보다 빨리 완성한 나머지 더 이상 공동체가 버티기 어려운 지점에 도달한 이 사건은, 인류 역사상으로도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15p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쓴 한 일간지의 기고문에는 그 소멸의 속도가 간명하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압축 성장에서 압축 소멸로 치닫고 있다. 벼략 발전에서 벼락 소멸로 나아가고 있다. (...) 우리는 소멸로 치닫는 이 나라를 과연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경향신문 2024년 6월 15일 자)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처럼 국가도 언제까지나 존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국가가 소멸하는 이유는 전쟁, 기근, 경제 파탄, 자원 고갈, 기후 변화 등 다양합니다. 이 중 어떤 것은 그 나라의 구성원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막아 낼 수 있고, 또 어떤 것은 개별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문제가 없는데도 다음 세대를 낳지 않아 스스로 소멸을 선택한 국가가 과연 역사에 있었던가요?
국가를 함부로 의인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국가를 마치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세뇌시켰던 일본의 제국주의 국가유기체론은 생각만 해도 섬뜩합니다. 그러나 이런 전체주의적 발상을 차치하고라도 한 사회나 국가 공동체가 보여 주는 특성을 비유적으로 조명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굳이 사람에 비유해 본다면 세계 1위의 저출산율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또 빠른 속도로 그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 나라는 지금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습니다.
40~41p

북러 정상 회담에서는 북러 혹은 북중러 합동 군사 훈련 가능성이 언급됐습니다. 실제 훈련 실시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이에 대항하는 한미일 합동 군사 훈련이 동해상에서 동시에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자위대와 이지스함이 독도 앞바다에 진출하는 상황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뉴라이트가 실로 고대해 마지않는 순간일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여섯 개의 군사 강대국이 모인 상황에서 북한 잠수함이 탄도 미사일 발사구를 열고, 한국과 일본의 이지스함이 이를 포착해 대함 미사일 발사 준비를 하고, 이를 다시 러시아의 수호이-35 전투기가 포착하고, 한미의 F-15, F-22 전투기가 수호이를 미 사일 '록 온(조준)'하는 상탵가 된다면... 이는 전쟁의 시작일 것입니다.
백승욱은 <연결된 위기>의 '한반도 핵 위기의 극단적 시나리오'라는 작은 항목에서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남북한 사이 공중전 중심의 국지적 위기가 고조되고, 남북한 중간 지대가 분쟁 지역의 특징을 띠게 되며, 이 과정에서 북한의 전투기가 연이어 격추된다. 북한이 남한의 전투기 발진 기지인 남한의 공군 기지를 대상으로 제한적 전술핵을 발사한다. 동시에 북한은 미국이 공격하면 미국과 서울에 전략핵을 쏘겠다고 위협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합니다. 한반도의 소멸입니다.
127p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유없이싫어하는것들에대하여
#임지은
#한겨레출판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로선 미워하지도 미움받지도 않을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에 차라리 그 안에서 뭐라도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내가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진실, 때로는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진실,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진실, 그럼에도 사람은 마음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진실...
굳이 그런 걸 알기 위해 일부러 무언가를 싫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로 나는 적어도 나에 대해 풍요롭게 알게 되었다. 미움을 가진 나를 잘 견딜 수 있을 만큼, 무엇보다 내게는 무언가를 미워하는 다른 사람을 보면 가장 먼저 이 사람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지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가령, 나를 곤란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어쩌면 미움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애당초 미워하는 일 자체를 금지하려는 셈인지 모른다고 싫어하는 건 나쁘다고 말하는 식으로, 싫음을 싫어함으로써 자신이 좋아하는 걸 지키고 있는지 모른다고. 상대방 역시 나처럼 딱히 좋은 것의 집합은 아닌 모양이라고.
그런 습관은 상대가 나를 곤란하게 해도 그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을 내게 길러준다. 미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할수록 사람을 더 잘 견디게 된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8~9p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막 물 밖으로 고개를 쳐든 사람처럼 크게 숨을 내쉬었다.
'등신들 같으니!'
비죽비죽 새어나오던 웃음과 물결처럼 퍼져오던 안도.
이토록 많은 말이 옹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
25~26p

때로 아름다움이란 좋은 것의 집합이다. 누구나 가지긴 어려울 정도로 비싸고 세련된 우아한 무언가다. 배제하고 엄선해낸 결과다. 그 사실을 수긍하기까지의 고통을 기억하면서. 이제 나는 동거인과 함께 그런 아름다움을 지향점으로 둔다. 거기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래야 나아갈 수 있으니까. 내 할머니의 손녀답게 말해보자면, 어쩌면 아름다움은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아름다움이란 그리움이다. 별 볼이 없는 물건이 풍기는 소중한 사람과의 기억이다. 할머니가 죽은 뒤, 내가 할머니의 탁상 스탠드를 아르떼미데 스탠드보다도 갖고 싶어 하듯이. 그런 개인적인 소중함이 스탠드의 허름함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의미는 허름함과 열악함을 해결해주지 않고 각자가 가진 의미는 충돌하고야 만다. 다만 그 의미들은 세상에 머무를 때만 생겨나는 것을, 의미에 앞서는 살아 있음의 선명함을 알려준다. 고되어도 매일을 이어가는 엄마와, 그 집에서의 낮잠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개처럼. 때로 아름다움은 그저 언제나 살아 있음이 모든 것에 앞선다는 것이다.
그 삶을 이어가고자 나는 계속해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 누구도 나에게 묻지 않았음에도 거듭해서. 그럼에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고 앞으로도 그럴 거란 예감이 들지만, 다행히 아무 성과가 없지는 않다. 적어도 나는 내가 그래온 이유는 아니까.
아름다움에는 더 많은 것이 속해 있다는 것.
언제나, 오직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
74~76p

💡
싫어하는 것을 싫다고 말하고,
싫어하는 나를 싫어하지 않고,
자책하거나 이유를 깊게 고민하지 않고,
온전히 들여다보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나에게도 너무 필요했던 용기라서 소중한 친구의 마음을 살피듯 읽었다
혐오로부터 기인한 감정을 무턱대고 표출하는 폭력이 아니라
나를 찬찬히 살피고 가꾸려는 마음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haniboo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온라인 담론 투쟁까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어들
한국여성학회 기획, 허윤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디지털시대의페미니즘
#한국여성학회
#한겨레출판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온라인 담론 투쟁까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어들

🔖
...발렌시아는 '고어 자본주의'라는 말을 고안한다. 이는 "극단적이고 잔혹한 폭력"을 특징으로 하는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인 '고어'에서 차용해온 말이다. 발렌시아는 이 단어에 일말의 희망을 심어놓는데, 멕시코가 아직 회복 불가능한 아노미 상태인 '스너프'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발렌시아는 제발 스너프 자본주의까지는 가지 말라고 절박하게 제안한다.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단계가 잔혹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어 자본주의에서는 "죽음이야말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고, "몸이 파괴되는 것 자체가 생산물이자 상품"이다. 여기에서 폭력과 살인, 신체 훼손과 시신을 자본축적의 수단으로 삼는 고어 자본주의는 멕시코만의 특수성이나 잔혹성의 결과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어 자본주의는 포스트-포드주의 이후 펼쳐지고 있는 전 지구화, 즉 불균등 지역 발전 및 고도소비사회의 도래와 관계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장르인 '고어'로부터 이 타락과 착취의 생산 양식을 설명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25~26p

디지털 고어 자본주의의 행위자들 사이에는 이처럼 타인을 쉬이 대상화하여 노리개로 삼는 동시에 생산의 수단으로 삼는 남성들이 존재한다. 이런 남성들의 등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바렌시아의 작업에 기대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화 이후로 고도소비사회 속에서 저소비로 버티는 취약 계층이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로 폭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하면서 고어 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체인 '엔드리아고 주체'가 등장한다.

고어 남성성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대상화'다. 내가 주목의 중심이 되고 영웅이 되기 위해서 고어 남성성은 그 어떤 것도 도구화할 수 있다. 존 M. 렉터는 "타인을 주체가 아닌 사물로 바라보고 사물처럼 대하는 심리적 과정"이 바로 대상화라고 설명한다. 렉터에 따르면 "대상화 개념은 어떤 독립적인 변수가 아니라 일종의 오해의 스펙트럼으로 인식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타인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타인을 총체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보다 못한 존재로 오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오해의 스펙트럼은 경미한 수준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다." 마사누스바움은 특히 온라인에서의 폭력이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에 주목하고, 대상화의 성별성을 분삭한다. 남성들은 (1)도구성 (2)자율성 거부 (3)비활성 (4)대체 가능성 (5)가침성 (6)소유권 (7)주체성 거부 (8)신체로의 축소 (9)외모로의 축소 (10)침묵시키기의 열 가지 방식을 통해서 여성을 "한낱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누스바움은 온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대상화가 포르노그래피적 방식을 통해 일어나는 원인을 '원한'과 '경쟁심'에서 찾는다.
40~41p

또한 불법촬영 및 불법유포와 연계되는 유형의 범죄 행위들에 대한 위계적 인식 또한 내포되어 있다. '촬영'이라는 행위에서는 다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인지 이미지인지에 따라 그리고 그분량에 따라 범죄의 중함 정도가 달리 파악되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점은 촬영물과 개인 정보를 포함한 촬영물 관련 정보의 유포, 동영상과 사진 간의 위계적 범죄 인식이 여성들이 겪는 피해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실상 피해 구제에 실효적이지 못하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촬영이라는 가해행위에 맞춰져 있기보다 촬영된 여성이 얼마나 더 성적으로 재현되었는가, 얼마나 성적으로 보이는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가해행위 자체가 아니라 기술매개 성폭력 피해 결과물의 '음란성'의 정도가 피해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성폭력 피해를 보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보여준다.
101~102p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보통 비자발적 독신을 의미하는 '인셀'이라고 불리는데,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케이트 만은 독신에서의 단순한 낙담 상태와 대비되는 '비자발'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소위 알파메일이라 불리는 남성들에 비해 낮은 지위에 있다고 믿음으로써 "스스로를 취약한 존재로 인식한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현실의 남성 특권이 이와 같은 스스로의 고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고통이 사회적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332p

💡
'고어 자본주의'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개념을 통해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학대하고 군림하고 싶어하고 그를 전시하고
조직적으로 소비하고 조롱하고 가해하는 현실이
그들이 재판정에서 변명하듯 '술김에', '본능적으로'가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심지어 꽤 잘 팔리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느꼈다.
더럽고 추악한 사실을 직면하는 것이 힘겹고 슬프지만
절대 외면하지는 않겠다고.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온라인 담론 투쟁까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어들
한국여성학회 기획, 허윤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디지털시대의페미니즘
#한국여성학회
#한겨레출판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온라인 담론 투쟁까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어들

🔖
...발렌시아는 '고어 자본주의'라는 말을 고안한다. 이는 "극단적이고 잔혹한 폭력"을 특징으로 하는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인 '고어'에서 차용해온 말이다. 발렌시아는 이 단어에 일말의 희망을 심어놓는데, 멕시코가 아직 회복 불가능한 아노미 상태인 '스너프'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발렌시아는 제발 스너프 자본주의까지는 가지 말라고 절박하게 제안한다.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단계가 잔혹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어 자본주의에서는 "죽음이야말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고, "몸이 파괴되는 것 자체가 생산물이자 상품"이다. 여기에서 폭력과 살인, 신체 훼손과 시신을 자본축적의 수단으로 삼는 고어 자본주의는 멕시코만의 특수성이나 잔혹성의 결과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어 자본주의는 포스트-포드주의 이후 펼쳐지고 있는 전 지구화, 즉 불균등 지역 발전 및 고도소비사회의 도래와 관계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장르인 '고어'로부터 이 타락과 착취의 생산 양식을 설명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25~26p

디지털 고어 자본주의의 행위자들 사이에는 이처럼 타인을 쉬이 대상화하여 노리개로 삼는 동시에 생산의 수단으로 삼는 남성들이 존재한다. 이런 남성들의 등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바렌시아의 작업에 기대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화 이후로 고도소비사회 속에서 저소비로 버티는 취약 계층이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로 폭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하면서 고어 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체인 '엔드리아고 주체'가 등장한다.

고어 남성성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대상화'다. 내가 주목의 중심이 되고 영웅이 되기 위해서 고어 남성성은 그 어떤 것도 도구화할 수 있다. 존 M. 렉터는 "타인을 주체가 아닌 사물로 바라보고 사물처럼 대하는 심리적 과정"이 바로 대상화라고 설명한다. 렉터에 따르면 "대상화 개념은 어떤 독립적인 변수가 아니라 일종의 오해의 스펙트럼으로 인식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타인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타인을 총체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보다 못한 존재로 오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오해의 스펙트럼은 경미한 수준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다." 마사누스바움은 특히 온라인에서의 폭력이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에 주목하고, 대상화의 성별성을 분삭한다. 남성들은 (1)도구성 (2)자율성 거부 (3)비활성 (4)대체 가능성 (5)가침성 (6)소유권 (7)주체성 거부 (8)신체로의 축소 (9)외모로의 축소 (10)침묵시키기의 열 가지 방식을 통해서 여성을 "한낱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누스바움은 온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대상화가 포르노그래피적 방식을 통해 일어나는 원인을 '원한'과 '경쟁심'에서 찾는다.
40~41p

또한 불법촬영 및 불법유포와 연계되는 유형의 범죄 행위들에 대한 위계적 인식 또한 내포되어 있다. '촬영'이라는 행위에서는 다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인지 이미지인지에 따라 그리고 그분량에 따라 범죄의 중함 정도가 달리 파악되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점은 촬영물과 개인 정보를 포함한 촬영물 관련 정보의 유포, 동영상과 사진 간의 위계적 범죄 인식이 여성들이 겪는 피해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실상 피해 구제에 실효적이지 못하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촬영이라는 가해행위에 맞춰져 있기보다 촬영된 여성이 얼마나 더 성적으로 재현되었는가, 얼마나 성적으로 보이는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가해행위 자체가 아니라 기술매개 성폭력 피해 결과물의 '음란성'의 정도가 피해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성폭력 피해를 보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보여준다.
101~102p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보통 비자발적 독신을 의미하는 '인셀'이라고 불리는데,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케이트 만은 독신에서의 단순한 낙담 상태와 대비되는 '비자발'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소위 알파메일이라 불리는 남성들에 비해 낮은 지위에 있다고 믿음으로써 "스스로를 취약한 존재로 인식한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현실의 남성 특권이 이와 같은 스스로의 고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고통이 사회적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332p

💡
'고어 자본주의'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개념을 통해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학대하고 군림하고 싶어하고 그를 전시하고
조직적으로 소비하고 조롱하고 가해하는 현실이
그들이 재판정에서 변명하듯 '술김에', '본능적으로'가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심지어 꽤 잘 팔리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느꼈다.
더럽고 추악한 사실을 직면하는 것이 힘겹고 슬프지만
절대 외면하지는 않겠다고.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킬러문항킬러킬러
#이기호 #장강명 #이서수 #정아은 #박서련 #서은빈 #정진영 #최영 #주원규 #지영 #염기원 #문경민 #서유미 #김현

2023년 8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작가 10인이 손잡고 〈한겨레〉에 연재한 소설과 이러한 취지에 공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탠 ‘교육 소설 앤솔러지’이다. 첨예한 시선을 지닌 소설가들이 입시 경쟁과 학교폭력, 사교육 열풍, 부모와 자녀 간의 진로 갈등,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등 한국 교육 현장의 이슈들을 폭넓게 조망한다.

🔖
언니의 억측과 달리, 나는 시험에 나온 본문을 볼 때 그에 대한 내 느낌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만들 때 어떤 답을 기대했을까? 출제자의 마음에 이입해 들어가려 최대한 노력한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틀린 문제의 경우, 처음엔 '다정하고 따뜻하게'가 답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두 번째 연에 나온 '견고한'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견고하다는 말이 들어간 시를 다정하고 따뜻하게 낭송해도 될까, 어쩌면 이 시를 진정 어울리게 읽는 방법은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읽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겨났다.
본문을 반복해 읽을수록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 문제는 킬러 문항일 것이다! 하갱 대부분의 판단을 따뜻한 쪽으로 쏠리게 하지만 실은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낭송해야 한다는 것이 진정한 답일 것이다. 깊은 고민 없이 따뜻함을 택하는 다수 학생과,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정답을 골라내는 내 모습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떠올랐다. 답에 포함된 '정확'이라는 두 글자도 내 선택을 확고하게 뒷받침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망설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답을 기재해 넣으려는 순간, 마음에 커다란 파동이 일었다. 진짜? 진짜 이런 시를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낭독해야 한다고 생각해? 다시 읽어보니 시가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정하고 따뜻하게 읽어야만 하는 단 한 편의 시가 있다면 바로 이 시일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펜으로 답 칸을 채우려 하면 '정확'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커다랗게 떠올랐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출제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누구나 그 답을 고르리라는 걸 알 텐데 그런 쉬운 문제를 냈을 리 있게는가. 시험 종료를 3분 남긴 시점, 내 마음속에는 이 문제야말로 변별을 위한 킬러 문항이라는 확신이 밀려왔고, 나는 과감하게 마킹했다.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낭독해야 한다는 3번으로. 그리고 나는 우리 반에서 그 문제를 틀린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59~61p

다섯 달 전 대통령이 갑자기 수능 문제를 비판했다.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께 진짜 많이 배운다"라고 했다. 교육현장에서는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학원장과 상담실장들은 올해 수능에서는 이른바 '킬러 문항'이 나오지 않을 테니 거기에 맞춰 공부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며 학부모들을 꾀었다.
입시 컨설턴트들은 킬러 문항을 죽인 존재라는 의미로 정부를 '킬러 문항 킬러'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바로 그런 정부를 죽이는 존재라며 '킬러 문항 킬러 킬러'라고 소개했다. 사교육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다고 했다. 소년은 대통령 지시 전까지 어려운 문제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법을 배웠다. 대통령 지시 이후 소년은 다섯 달 동안 덜 어려운 문제들을 빠른 시간 내에 많이 푸는 법을 훈련했다. 소년의 친구들도 그렇게 훈련했다. 학원에서는 어려운 문제가 나오지 않을 테니 깊게 고민하지 말고 문제 풀이 기계가 되라고 했다. 실수를 덜 저지르는 것이 올해 수능의 성공 전략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차세대 집중력 강화제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올해 시험의 실패는 실수를 하지 않는 데 달려 있는데, 그 약을 먹으면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대치동에선 그 약을 구하지 못한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라는 농담이 돌았다. ...
32~34p

💡
작가진 저마다의 개성이 짧은 글에서 요동을 쳐서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이제 중고등입시교육과정에서는 한참이나 멀어졌는데도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정아은, 서윤빈, 정진영, 문경민 작가의 다른 글도 찾아 읽으려고 따로 메모해두었다
떠나온지도 한참이고 가족구성원의 일원이 겪게 할 계획도 없는 문제이지만
늘 잘되었으면 손꼽는 문제인만큼
더 많은 글을 더 많은 독자가 읽고 반성하고 회자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