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이어 연초에도 계속 중국사를 읽고 있는데 불쑥 <자치통감>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해당 도서를 검색하면서 그 많은 권 수의 책을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시장에서 번역 출간한 출판사가 있을지 궁금했다. 검색 결과 딱 두 곳의 출판사가 <자치통감>을 출간했다. 그 중 한 곳은 일전 <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를 읽으면서 오탈자 많다고 투덜댔던 '인간사랑'이라는 곳에서 출간한 것인데, 저자는 신동준선생으로 <삼국지 다음 이야기>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나는 저자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전 권 번역이 아닌 5권짜리로 조위(曹魏)의 조비가 황제가 되는 장면에서 끝나는 미완의 번역본이다.
전 권이 번역된 것은 '도서출판 삼화'에서 권중달선생 번역으로 나온 <자치통감>으로 2007년 초판이 나오고 언제 절판되었는지는 몰라도 2021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원래 <자치통감> 자체가 권 수가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번역본 초판본이 32권이었는데 개정판은 무려 49권으로 늘어버렸다. 무엇 때문인지 살펴보니 개정판은 한문 원문을 넣어서 그랬던 것이다. 내 불만 또는 투덜거림의 시작점이 여기다. 원본까지 대조해 가면서 이 책을 볼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된다고 그렇지 않아도 권 수가 많아 구매를 망설이는 일반인들을 더욱 배척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초판본을 중고라도 구매해야겠다 싶어 검색을 하니 전 32권을 구하기가 불가능이다. 아예 중고가 없는 것들도 있지만 8권, 16권은 중고가가 터무니없이 비싸서 그 가격에 중고를 살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개정판은 사려니 어찌된 일인지 다른 48권은 다 있는데 제 1권만 품절이 아닌가. 하 참...뭐 중고로 사서 채워넣고 다른 권을 산다고 해도 인문학 서적은 금방 절판되어 버리는 일이 많아 49권 모두 구매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내가 돈이 많아 한 번에 전 49권을 사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리저리 검색해 보니 2007년판 전32권을 5백만원에 파는 양반도 있던데 과연 그 가격에 누가 사갈 것이라 생각하고 내 놓은 것인지 나 이거 있다고 자랑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 시점 되니 이런 고전들은 국가에서 예산을 투자해서 번역사업을 대대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서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럴 경우도 국가가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진척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대학이야 온통 수익사업에만 정신이 팔려 본업을 망각한 지 오래라 인센티브 없이는 안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학술영역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떨어지는 분야 중의 하나가 번역이다. 해외유학 경험도 없는 순수 일본산 학자가 노벨상을 탄 후 외국 유명교수의 책들이 다 번역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만큼 일본은 번역사업이 활발하다. 우리나라는 정확히 그 반대라고 보면 될 것이다. 예전에 읽은 단대 사학과 심재훈교수의 <상하이에서 고대 중국을 거닐다>라는 책에 보면 인문학 분야에서 SCI급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 영문으로 쓰면 2배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데 중문이나 일문을 번역하는 것은 한글로 논문을 쓰는 경우의 1/4의 가치밖에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글을 보고 아직도 우리나라는 번역을 경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칼라쉽이 어느 경지에 오른 학자는 마음만 먹으면 1년에 대여섯 편의 논문을 생산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학술서 번역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1년 내에 완료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번역은 돈 없는 대학원생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교수들이 많으니 우리같은 일반독자들이 아직도 칸트, 헤겔을 어려워 하고 대체 이것이 한글문장인지 자체도 의심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그런 인식을 지닌 저자들 탓 아니겠는가.
<자치통감>을 무사하게 전 권을 구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잡소리가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