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밤나무 엄마와 함께 읽는 그림동화 시리즈 2
이순원 지음, 원정민 그림 / 책모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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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름, 길가에 어지럽게 떨어진 갈색빛 밤꽃이 햇살과 비, 사람들의 발에 버무려져 여기저기 나뒹군다.

밤꽃이 떨어진 자리 그 위를 올려다보니 초록 초록한 아기 밤송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아이도 자라고 밤송이도 자라는 시간을 거슬러 오래전 아버지께서 장독간 장독대에 모래를 가득 채워서 밤톨을 넣어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겨울이면 그 알밤을 꺼내어 아궁이에 군밤을 만들어 먹었었는데 그때의 아궁이에서 밤이 '펑'하고 터지는 소리와 뜨거운 밤을 꺼내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까먹던 달콤한 밤 맛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장독 모래 속에 묻은 밤을 찾기 위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여기저기 모래를 파헤치며 손끝에서 느껴지는 모래알의 서릿발 같은 한기, 아궁이가 있는 부엌 정지문을 지키는 누렁이와 함께 토실토실 구운 알밤을 나눠 먹었던 기억, 그때의 아련한 추억이 무르익는 여름에 만난 <할아버지의 밤나무> 책을 보며 떠오른다.

이 책은 책모종에서 펴낸 엄마와 함께 읽는 그림동화 시리즈이다. 작가 이순원은 1957년 생으로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은비령>, <아비의 잠> 등 여러 작품을 썼으며 많은 작품이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작품이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고 하니 나중에 읽어 보아도 좋겠다.

산골 마을 마음씨 좋은 부부가 살았다. 부부는 마을 뒷산 주인 없는 밤나무 숲에서 알밤을 주워 모았다. 주운 알밤의 양이 꽤 많아서 이웃과 콩, 보리, 옥수수로 바꿔 먹고 남은 건 집 마당 한편에 묻어 두었다. 아내는 겨울을 보내면서 먹을 게 부족할 때마다 마당에 묻어 놓은 알밤을 생각했다. 허기진 배를 붙잡고 그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뎠을까, 나라면 그 알밤을 수십 번은 더 꺼내 먹었을 것 같은데 부부는 허기진 배를 참으며 이듬해 봄을 맞이했다. 남편은 마당에 묻어 두었던 알밤을 꺼내 함지박에 나누어 담아 물을 붓고 며칠을 기다렸다. 밤에서 싹이 나더니 부부는 그 알밤을 동네 민둥산에다 정성껏 심었다. 그런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밤이 다 썩어 버릴 거라며 비웃었다. 부부는 마을 사람들의 비아냥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밤이 큰 나무로 자라 있을 풍성한 미래를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일 년, 이 년, 오 년이 지나면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땅에 심은 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밤 수확을 할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의 비아냥을 받으며 부부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언젠가는 딸 날이 있을 거라 말한다. 엄청난 인고의 시간에 부부의 속은 뭉그러지지 않았을까? 그 까마득한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생각하며 동화 속 부부가 마치 석가모니같이 느껴졌다.

눈앞의 배고픔을 이겨낸 지 어느덧 십 년,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달리더니 이내 민둥산이 울창한 밤나무 숲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가 이루어낸 커다란 밤나무 숲에 깜짝 놀랐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부부를 손가락질할 수는 없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당장의 허기짐을 채우기보다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알밤에 인생을 함께 묻었던 부부를 보면서 큰일은 눈앞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는 데서부터 시작됨을 느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눈앞의 이익을 보고 인내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내가 걷는 오늘의 한 걸음이 훗날,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거란 걸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가져봐야겠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란 말을 끝으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울림을 주는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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