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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 뇌과학이 밝힌 인간 자아의 8가지 그림자
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 변지영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3월
평점 :
: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시작된 건, 아홉 살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일기를 검사받던 시절이었는데 숙제로 제출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어 두 권의 일기장이 필요한 아이였거든요. ‘자아’에 대한 호기심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하고, 보다 전문적인 지식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심리학, 신경과학, 정신의학, 철학, 그리고 때로는 문학을 넘나들며 ‘자아’라는 궁금증을 풀어줄 뇌과학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자아가 있다, 없다 하는 논쟁의 중심에 이 ‘나’가 놓여 있다. 주체로서의 자아, 아는 자로서의 자아, 주체성이라는 경험을 만드는 자아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아는 있는가 없는가?❜ 359p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2016년 발표된 저서로, 국내 번역 초판본인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 자아의 8가지 그림자(2017)>의 개정판입니다. 원제는 <The man who wasn’t there>로 내용이 다른 동명의 영화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로 번역된 전례로 볼 때, 초판본 제목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스테디셀러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맞췄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에 소개된 주인공들의 사례를 보면, ‘나를 잃어버린’으로 함축해 표현한 개정판 제목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자신을 ‘죽었다, 없다, 사라졌다’라고 느끼는 인물 간의 공통점과 함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무게중심을 두고 풀어가는 서사가 적절히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연구 결과들은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것이지,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가 서로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하나를 원인으로, 다른 하나를 결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주의사항이 바로 이것이다.❜ 122p
저자 아닐 아난타스와미는 과학기술 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의 전 부편집장이자 현 고문인 저널리스트로, 영국 물리학회와 과학저술가연합에서 수여하는 물리학저널리즘상과 최우수탐사저널리즘상을 수상한 칼럼니스트입니다.
서술은 깔끔하지만, 띠지에 소개된 문구(“올리버 색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도 푹 빠질 것이다”)를 보고 저자의 시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스함을 기대하셨다면 조금 내려놓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올리버 색스의 서술(<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대표로)이 독자에게 매력적인 것은 의학적 관점을 넘어 존재를 마주하는 따스한 시선(문체에 배어 나오는 온기)에 있을 테니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감상입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적 상호작용뿐이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변화된 자아를 경험하고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을 힘들어한다. 하지만 신경전형인도 자폐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소통이란 그 정의대로 쌍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때때로 어쩌면 다른 정신세계 사이에서 일어난다 하더라도.❜ 275p
그러나 뇌과학적 관점에서 이뤄진 유의미한 발견을 이어본다면, 짜릿한 즐거움을 안겨줄 만남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출간된 1980년대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신경과학적 원인들이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출간된 2010년대에는 어디까지 연결되는지 견주어 볼 수 있거든요!
35년여의 시간을 건너 열린 비밀의 문이 독자를 끌어당깁니다. 예를 들어,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알츠하이머병(자기 이야기를 잊은 사람)을 다룬 2장과 신체감각부조화(한쪽 다리를 자르고 싶은 남자) 3장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길 잃은 뱃사람, 침대에서 떨어진 남자’ 이야기와 함께 보시면 더욱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나’와 ‘나의 것’의 경험을 뒷받침하는 자아를 찾으려 한다면, 아마도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영속적인 자아라는 허구의 개념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고통의 원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 책의 여정을 시작했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 나는 누구인가?❜ 351p
하지만 이 책에서 독자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저자의 의도 또한 그에 부합하지 않고요. 다만 ‘나’와 ‘자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고의 재료를 풍성하게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감상적이지 않은 담백한 서술로 자아를 탐구할 퍼즐 조각을 한 아름 안겨주는 책,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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