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창비청소년문학 14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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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해 보이는 인상, 무르기만 하고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사람을 호구라고 한다. 학교 폭력에서 호구는 너무 순하고 맹해서 가해자에게는 함부로 해도 상관없는 장난감이 되고 방관자에게는 죄책감 없이 자신의 가학적 쾌감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이 된다.
이 소설은 호구의 성장통을 청소년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주인공 윤수가 가해자 이철을 닮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목소리를 크게 내보기도 하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해보기도 하고 개눈깔도 만들어 보면서 겉멋, 허세, 폭력을 배워가는데 즉 '호구보다는 개새끼가 오래 남는다는 철칙'을 호구처럼 믿고 실행에 옮긴다.
무모한 폭력의 모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윤수에게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 작가는 관심이 많은거 같다.
이철의 아빠는 정치인이며 재력가이지만 윤수의 아빠는 다른 여자 때문에 가정을 떠났고 키가 140인 외할아버지가 전단지를 돌리며 용돈을 번다. 정치 경제학적 계급이 폭력을 어떻게 발생시키는지, 즉 누군가는 너무나 쉽게 호구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너무나 쉽게 호구를 조롱하고 이용하고 공격하는 사람이 된다. 평생 그런 사회적 차별로 작아진 존재들의 고통이 이 소설의 가장 슬픈 대목이다. 할아버지가 '윤수야 넌 큰 사람이 될거야' 라는 말을 그토록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구조적 차별의 고통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거라는 예감을 읽는 내내 하게 만든다.
정치적, 경제적 구조로 결정되어 버리는 불공정한 호구 - 가해자 게임과 대비되는 소설 속 게임이 바둑이다. 물론 바둑도 흑돌이 먼저 두므로 유리하지만 백돌에게 어드벤티지를 줘 실력이 비슷하면 공평한 게임이 된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바둑이 소설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 영향을 주며 윤수에게도 삶을 배우는 중요한 소재가 된다. 나는 특히 불계패 부분이 좋았는데 승부의 세계에 집착하지 않게된 주인공이 성숙해졌다고 느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나운 개 뽀삐의 목줄을 잡고 산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신의 날뛰는 본능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어떤 호구는 개새끼보다 오래 남는다. 난 이 소설이 많은 세상의 호구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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